¿Dónde estoy en este mapa?
28/04/jueves
4월 28일 목요일
desde Puente Villarente hasta León
푸엔테 비야렌떼에서 레온까지
여행한 지 25일, 걸은 지 22일
오래도록 언덕을 올랐다. 서늘한 아침 바람에 땀은 덜한데 쉼터는 간절히 고팠다. 이따금씩 내리는 부슬비도 피할 겸 돌 의자에 몸을 맡겼다. 아구아 씬 가란띠아 사니따리아 (Agua sin garantía sanitaria, 위생상 보증이 없는 물) 과거 순례자들에겐 깨끗한 물을 건넸는지 몰라도 이제는 책임질 수 없는 물을 뿜어내는 샘터의 표지석이 산티아고까지 307km가량 남았다고 일렀다. 돌 의자가 차갑게 느껴졌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다시 언덕을 오르는데 얼마 멀지 않은 곳에 놀이터가 보였다. 307km…… 배낭을 내려놓고 마냥 놀고 싶었다.
레온에 거의 도착 해갈 무렵 어느 여자를 만났다. 사실 이 아시아 여자를 만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사아군 숙소에서 이른 아침, 신발끈을 고쳐 매는 그녀와 마주했는데 얼굴을 가리고 입을 꾹 다물고 있길래 어떤 말도 붙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아시아 여자는 은배가 한국인이냐고 묻는 순간, 자신을 지수라고 소개하곤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낯을 많이 가리는 타입인가? 한국인을 너무 오랜만에 만났다고 했다. 모국어로 긴 대화를 하게 된 셋은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어느새 은숙 아줌마가 보내줬던 사진 속 화려한 레온의 표지판 앞이었다. 나는 은숙 아줌마가 보내준 것과 같은 구도로 사진을 찍었다. ‘저 레온에 도착했어요 아줌마는 어디 세요?’ 함께 했던 사람과 연락을 하는데 매번 내가 너무 뒤처져 있었다.
레온은 지금껏 보아 온 마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정돈된 느낌의 새파랗고 긴 다리 앞 마을 지도를 나눠주는 경찰관들이 보였다. 언젠가부터 하루 이틀 치 거리를 앞서 걷는 유빈과 윤승이 레온에서 본인들이 묵었던 곳보다 더 좋은 알베르게가 있다며 알려줬었는데, 경찰관에게 그 숙소와 대형 마트 까르푸의 위치를 물었다. 둘의 거리는 꽤 되었다.
- 어디부터 가는 게 좋을까요?
숙소에서 짐을 내려놓고 다시 오려면 적어도 수만 번은 고민할 텐데, 과연 또 마을 외곽으로 나오게 될까?
- 힘들 것 같아.
셋은 땀에 절은 모습 그대로 마트로 갔다. 그리고 도시 문명은 정겨운 시골과는 다를 것이라, 최대한 그럴듯하게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얼굴에 땀을 닦아냈다. 그러나 우리의 행색을 책잡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큰 배낭이 마트 안에서 괜한 오해를 사지 않을까 안내소에 맡기려 했더니 되려 그냥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실내로 들어서자 신세계에 별천지가 펼쳐졌다. 한껏 들뜬 맘으로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아침은 이걸로 먹을까요? 종류가 생각보다 많네요, 이 맛은 처음 봐요. 과일도 신선하고…… 여기 전화 카드도 파네? 오, 옷은 저쪽이네요!
손의 한쪽 날은 이마에, 다른 한쪽은 통유리에 붙여 알베르게 안을 둘러보았다. 오스피탈레로가 자리를 비운 탓이었다. 그러나 그는 금세 본인의 업무 위치로 돌아왔고 우리에게 필요한 시설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향우회라도 할 것인 냥 세 명이 4인실을 잡아 쓰기로 했다.
- 와이파이는 이걸로 잡아서 쓰시고, 빨래는 공짜예요.
와아-! 나는 후한 인심에 격렬하게 반응했다.
지수, 은배, 나는 순서를 정해 방에 딸린 작은 화장실에서 깨끗이 씻었다. 오늘도 역시 빨랫감은 나왔고 도시의 감격스러운 호의에 여적 밀린 빨래도 마저 돌릴 참이었다. 지하로 내려갔다. 일본인 아저씨 둘이 한아름 옷가지를 들고 온 우리를 보곤 세탁실을 가리켰다. 세탁실 세탁기가 빙그르르 소란스럽게 돌았다. 우리는 그 세탁기 앞에 놓인 테이블에 걸터앉아 오늘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공유했다. 이 마저 다하고 나면 오늘 저녁은 어디서 먹을까 현지 맛집을 찾아 댔다. 특히 나는 새로 산 점퍼를 입고 포즈를 취했다. 오늘 두툼한 옷을 사 입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가족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때 프랑스 중년의 두 부부가 들어왔다. 그들은 건조를 한 지 족히 한 시간은 넘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달깍. 안 그래도 다 끝냈다고요. 건조기는 임무를 마치고 옷가지들을 내놓았다.
- 네 거, 내 거. 내 거, 네 거.
그들은 뒤섞인 옷가지를 하나하나 나누었다. 그리고 그게 서로 웃겼는지 배꼽을 잡았다.
30분 아니면 한 시간 정도? 순례길을 걷는 이에게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나는 대학인 순례자 여권(Credencial Universitaria, 대학인 순례자 여권으로 일반 순례자 여권처럼 사용하되 추가로 지정된 대학에서 세요를 받아야 한다. 대학인 순례자 여권을 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자격도 필요하지 않지만, 순례 완주 후 콤포스텔라 대학의 학위로 인정받는 관련 증명서는 대학 재학생과 졸업생, 교수, 퇴직 교수에게만 발급된다. 대학인 순례자 여권에는 자신이 신청한 까미노 루트에 있는 대학들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 등 정보들이 담겨있다.)이 있는 은배와 레온 대학으로 가기로 했다. 대학인 순례자 여권에 대해 어떤 정보도 없던 나로서는 굉장히 새로운 일이었다. 샌들을 직직 끌며 도로를 건넜다. 행진이나 순례가 아닌 산책으로 걷는 길, 레온 대학을 찾기까지는 매우 순조로웠다. 그러나 대학 안에 들어서면서부터 세요를 찾기란 지도 없이 보물을 찾으러 가는 것과 다름없었다. 학교는 생각보다 규모가 컸고, 학생들은 세요에 대해 전혀 들은 바 없었다. 더군다나 아는 것 같아 물어보면 그곳은 가르쳐준 사람마다 매번 달랐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잔디에 누워 늦은 점심을 즐기고 있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이곳에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중 긴 파마머리를 한 학생은 아마도 여기쯤 일 거라며 지도에 위치를 잡아주었다.
- 아뇨 걸어서 못 가요, 버스 타고 가세요. 3번이요. 여기서 내리면 될 거예요.
- 저희가 거기서부터 걸어온 건데요?
이젠 포기하고 가야 하나보다 생각하면서도 이곳이 아니라는 말은 믿고 싶지 않았나 보다. 은배와 나는 버스 정류소 앞에서 한 번 더 확인했다. 교정기 낀 채 여학생이 더듬더듬 영어와 스페인어를 섞어가며 길을 알려주었다. 우린 그 배려심 덕분에 또 다른 장소를 알게 되었다. 마침 아까 갔던 카페테리아와 멀지 않은 곳이었다. 굳게 닫힌 유리문과 그 옆 환한 불빛에 활짝 열린 작은 문이 보였다. 우리는 열린 문을 선택해 들어갔다. 복사기가 돌아가고 온갖 필기도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곳도 아니었다. 그러나 주인 여자는 최선을 다해 우리에게 아는 바를 알려주었다. 그 과정에서 번역기를 사용했고 눈에 잘 띄는 형광색의 펜으론 지도에 가는 길을 표시받았다. 시간이 오래 걸리자 지선이 연락을 해왔다. ‘세요는 잘 받았어요?’ 본인이 있는 곳 근처에 대학 세요를 받는 곳이 있다며 레온 성당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광장에서 니콜라를 만났다. 그녀는 벤치에 앉아 성당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답지 않게 그녀를 절로 포옹했다. (정말 반가웠으니까!) 그리고 벤치에서 기념엽서에 편지를 쓰고 있는 지수에게 아는 체를 했다. 나와 은배는 지수의 안내로 성당으로부터 공원을 가로질러 있는 건물에서 드디어 대학 세요를 받았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 레온의 번화가. 그러나 당장은 식당보다 약국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약국이 보이는 족족 모조리 들어갔다. 더 강력한 보호대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미 약값으로 많이 지출한 탓에 맘껏 좋은 걸로만 고를 순 없고, 싸고 좋은 것……
- 한국인 만난 기념으로 제가 한 턱 쏠게요.
나는 보호대 찾는 것을 그만두고 지수가 고른 식당에 들어갔다. 적갈색 와인과 애피타이저로 나온 올리브 얹은 크래커, 짭짤한 깔라마리와 매콤 시큼한 뽈뽀 요리 그리고 각종 리조또까지. 졸지에 관광지 한복판에서 비싼 식사를! 그것도 든든하게! 하게 된 셈이었다. 나는 기분 좋게 와인을 홀짝이며, 늦게까지 여행에 일가견이 있는 지수에게 그녀의 순례길에 대한 정보를 수없이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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