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 스위티

Choco Sweety

by 하이민

“어서 오세요.”


시계 초침이 정확히 자정을 가리키자 가게에 불이 켜지며 문이 열렸다. 정면에는 ‘초코 스위티’란 간판이 큼지막하게 걸렸다. 캄캄한 어둠 속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작게 울려 퍼지며 흔적을 남겼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 끝자락, 달빛과 별빛 부스러기조차 흩어져버린 어둑한 밤길을 거슬러 도달한 곳에는 가게 하나가 덩그러니 서있었다. 희미하게 점멸하는 가로등 등불만이 한밤중에 문을 연 자그마한 가게 윤곽을 흐릿하게 비출 뿐이었다.


가게 입구에는 나무껍질을 엮어 만든 투박한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손님들은 가져온 물건을 조심스레 내려놓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저기 구멍이 난 누런 양말 한 짝, 다 헤져 솜이 삐쭉 터져 나온 곰 인형, 반짝반짝 빛나는 유리 조각, 동글동글 예쁘게 깎인 오색 돌멩이, 노랗고 하얀 꽃과 새파란 들풀까지. 바구니 안에는 세월을 품은 온갖 것들이 가득했다. 그들은 먼 곳에서 밤길을 헤쳐와 소중하게 간직해온 물건을 꺼내 그리운 이를 만날 값을 치렀다.




내부로 들어가면 넓적한 바위 테이블과 드문드문 배치한 나무 그루터기 의자가 보였다. 덩굴식물이 벽과 기둥을 타고 올라가 자리를 잡고선 이따금 새들이 재잘대는 소리에 맞춰 잎사귀를 흔들며 춤을 췄다. 구석 자리에선 참새 둘과 까마귀 한 마리가 반짝이는 유리구슬을 가운데 두고 말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까마귀는 참새 무리에게 미적 감각을 키워보라며 목소리를 높였고, 참새들은 예쁜 것만 찾다가 굶어 죽기 십상이라며 성을 냈다. 참새 한 마리가 말을 쏟아내면 다른 한 마리는 옆에서 짹짹 울음소리를 내며 열렬히 맞장구를 치는 모양새였다. 중간에 껴 있던 비둘기는 예쁜 것도 모으고 먹이도 많이 먹으면 안 되냐고 되물었다가 양쪽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받곤 조용히 초코 아몬드를 쪼아 먹었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잔뜩 신이 나 푸드덕거리는 날갯짓과 평소보다 높은 새소리가 어우러져 즐거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새 무리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있던 검은 고양이가 눈을 흘기며 혀를 찼다. 길고양이로 거칠게 버텨온 시간을 보여주듯 조금 마른 모습이었지만, 길쭉하고 커다란 몸을 날렵하게 움직여 가게 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벌레를 잡아채곤 씩 웃어 보이는 얼굴에 자신감이 넘쳤다. 맞은편에는 작달막한 검은 고양이가 하얀 발로 초콜릿 우유를 콕 찍어 킁킁 냄새를 맡아보다 할짝댔다. 큰 고양이의 절반도 안 되는 작은 몸집은 군데군데 울긋불긋한 상처로 덮여 있었고 왼쪽 눈가에 길게 그어진 상흔이 보였다.


“새 녀석들 시끄러워 죽겠네. 확 물어버릴 까보다.”


“에이, 괜히 또 그런다. 자동차 소리처럼 무섭지도 않고 듣기 좋은데 뭐.”


큰 고양이가 새 무리를 향해 이를 드러내며 하악질을 하자 작은 고양이가 앞발을 흔들며 큰 고양이를 달랬다. 큰 고양이는 자동차 이야기가 나오자 코앞에서 굉음을 내지르는 쇳덩어리가 달려드는 것 마냥 꼬리털을 바짝 세우며 번뜩이는 두 눈을 치떴다.


“흥, 자동차 따위 하나도 무섭지 않아. 그때처럼 형이 지켜주지 않아도 돼. 이제 그놈이랑 싸우면 내가 이긴다고!”


“우와, 진짜 강해졌구나.”


“저번에 노란 점박이도 이겼지. 지금은 내가 우리 동네를 지키는 대장이야.”


큰 고양이는 자랑하듯 허리를 쭉 늘리며 가슴을 폈다. 작은 고양이는 눈을 반짝이며 기뻐했다. 더 이상 걱정할 게 없다는 듯이.


고양이 형제 옆에는 나이가 지긋한 몰티즈와 골든 레트리버가 나란히 앉았다. 둘은 같은 집에서 함께 지냈다. 서로를 처음 만났을 때 골든 레트리버는 이미 12살의 노견이었다. 같이 보낸 시간은 3년 남짓에 불과했지만 그는 어린 몰티즈가 새 집에 적응하기까지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 가족이자 친구였다.


“여기는 다들 참 활발하고 좋구먼.”


골든 레트리버는 주위를 둘러보며 초코 고구마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 말을 들은 몰티즈는 힐끗 옆을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처음 만났을 때 나도 저랬었지. 우리 말곤 다 어린 친구들인가. 기운이 넘쳐.”


“그럼, 그럼. 자네도 어렸을 적엔 저들 못지않게 뛰어다녔지. 내가 도통 따라잡질 못했으니.”


허허허. 가벼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과거를 회상하는 골든 레트리버의 느긋한 목소리에 몰티즈가 푸석해진 털을 쓰다듬었다.


“나도 이제 곧 갈 걸세. 그땐 하루 종일 꼬리잡기를 하는 거야. 내가 집에서 꼬리잡기 놀이를 실컷 못한 게 아직까지도 아쉽거든.”


“그러자고. 하루 종일이 뭔가. 몇 날 며칠이고 같이 여기저기 뛰어다녀 보자고.”




딸랑딸랑.

창문틀에 달린 작은 종이 바람결에 흔들리며 시간을 알렸다.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대화를 이어나가던 이들은 순간 서로를 가만히 마주 보았다. 곧이어 잔잔한 웃음소리가 터지며 잠깐의 침묵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새들은 날개를 부딪쳐 다음 만남을 기약했고, 고양이 형제는 서로의 등을 조용히 토닥였으며, 노견 친구들은 꼬리를 흔들어 인사말을 대신했다.


손님들은 가게를 나서며 바구니에 넣은 물건들을 다시금 보았다.


“봐봐, 반짝이는 돌을 잔뜩 모아 오길 잘했지?”


“다음에는 더 예쁜 꽃을 가져와야겠어.”


“어렸을 때부터 안고 자던 양말이지만 여기에 오면 볼 수 있으니 괜찮을 테지.”


어느덧 어지럽게 깜빡이던 가로등도 수명이 다한 듯 불빛을 꺼트리곤 푹 고개를 수그렸다. 모두가 떠나자 이내 가게 불이 꺼지며 까만 정적이 찾아왔다. 다시 길을 떠나야 하는 이들을 위로하듯 나지막한 인사가 바람소리에 실려왔다.


“안녕히 가세요.”


고요해진 골목길에 새벽빛이 밝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