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다시 아래로 내려주세요.”
직원의 말에 하영은 기계적으로 손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겹겹이 광이 나는 젤 네일에 화려한 파츠를 덕지덕지 올린 손톱 덩어리를 LED 네일 램프 안으로 밀어 넣었다. 번뜩이는 퍼런 불빛이 손끝 유리 알갱이에 부딪치며 파리한 불꽃을 피워 올렸다. 튀어 오르는 몸짓 한 번에 불티가 너울너울 춤을 추며 무자비하게 갉아낸 손톱을 할퀴어댔다. 움찔대며 오그라든 손을 가닥가닥 펴내던 그녀는 문득 어쩌다가 이렇게 값비싼 고통을 자처하게 됐는가 싶어 쓴웃음이 나왔다.
하영은 원체 목소리가 작았다. 작은 일에도 깜짝 놀라 움찔하는 좁은 어깨는 그녀가 주변을 대하는 태도만큼이나 어정쩡하게 굽어 있었다. 염색조차 해보지 않았던 긴 생머리는 바닷물에 축 늘어진 미역처럼 힘없이 쳐져 160이 될까 말까 한 작은 몸집이 더욱 왜소해 보였다. 대학교에서도 자발적 아웃사이더 생활에 익숙해져 대외활동이라곤 참여한 적이 없었다. 어떻게 사람들과 부대껴야 하는 경영학을 전공으로 선택했는지 스스로도 의아할 정도였다. 그렇게 어영부영 학교를 다니다 겨우 졸업장을 받고 취업 시장에 덩그러니 내쳐졌을 때 그녀는 자신의 성격이 끔찍이도 싫어졌다. 운 좋게 서류와 필기를 합격해도 면접만 가면 온몸을 떨어대는 통에 무슨 말을 하고 나왔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발표라도 할라치면 염소 울음소리를 내며 울먹이니 무슨 내용이든 전달이 될 리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 합격한 게 기적에 가깝다는 걸 알았다. 당시 면접관이 면접 프레젠테이션에서 하영이 발표 전 제출한 자료를 인상 깊게 본 덕분이었다. 그랬기에 이곳에서 엄청난 성과를 내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큰 문제없이 가늘고 긴 직장생활을 이어나가고 싶었다.
“하영 씨, 입사한 지가 언젠데 아직까지 숫자 단위를 헷갈려? 수익 보고 잘못 처리되면 어떻게 책임지려고?”
유난히 뾰족한 팀장의 말에 하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평소 그녀를 탐탁케 생각지 않아 책잡힐 일이 없도록 조심했는데 하필 분기 말이라 일이 몰렸다. 정신없이 야근을 하다가 중요한 자료에 실수를 하고 말았다.
“하... 이대론 결제 못해줘요. 전체적으로 자료 수정해서 늦어도 모레까지 다시 올리세요.”
하영은 땀이 뚝뚝 흘러내리는 손을 연신 옷소매로 닦아내며 자리로 돌아갔다. 비척비척 걸어가는 뒷모습은 잔뜩 주눅이 든 채였다.
“아, 이 대리. 저번에 올린 기획안 좋았어요. 부장님도 마음에 들어 하시니까 그대로 한번 진행해 봐요.”
“어머, 정말요? 역시 팀장님이 조언해주셨던 방향이 맞았네요. 정말 감사해요. 팀장님 덕분인데 커피라도 사드려야지 안 되겠네요. 오늘 당 충전 제대로 하게 오후 티타임으로 캐러멜 마끼아또랑 스콘 어떠세요?”
“이 대리가 열심히 하니까 결과도 잘 나왔지. 업무랑 병행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커피는 내가 살게요. 고생했어, 민아 씨.”
하영을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그런 팀장을 보며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조용히 숨을 죽였다.
이민아 대리는 자신의 직급 이상의 성과를 올리며 인정받는 인재였다. 사실 민아와 하영은 동기였다. 같은 날 회사에 들어와 같은 팀에 배정받은 후 지금까지 함께 해왔다. 민아는 커리어 우먼의 표본이라 불릴 정도로 어떤 일이든 똑 부러지게 해냈다. 성격도 밝아 주변 사람들에게 평판도 좋았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깔끔한 패션은 센스 있는 직원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하영에게 민아는 누구보다도 화려한 손을 가진 사람이었다. 입사 후 첫 회의 시간, 산뜻한 핑크색 네일이 빛나는 손을 번쩍 들고 자신 있게 의견을 말하는 민아의 모습은 하영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았다. 이후로도 그녀의 손은 각양각색의 네일을 쉬지 않고 뽐냈다. 대리로 진급한 날, 기분을 내봤다며 펼쳐 보인 손끝에 검붉은 버건디색을 캔버스 삼아 화사한 금빛이 수놓아진 순간을 하영은 아직까지도 잊지 못한다.
하영은 그날 도저히 자료를 수정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숫자가 잘못 표기된 부분을 볼 때마다 팀장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따라왔다. 다음날 밤새 야근을 할지언정 더 이상 팀장과 민아가 있는 공간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녀는 퇴근 시간에 맞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해가 저물어 가는 시간에 터덜터덜 힘없이 옮기는 발걸음을 따라 골목마다 거무튀튀한 얼룩이 울룩불룩 솟아올라 그녀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골목길을 꺾어 나와 큰길로 들어서자 어두워진 하늘을 대신해 온갖 빛들이 길가를 밝히고 있었다. 깜빡이는 불빛 사이 네일숍이라 쓰인 글자가 하영의 눈에 들어왔다. 순간, 하영은 충동적으로 네일숍 문을 붙잡았다. 투명한 유리문으로 알록달록한 네일 샘플이 비치자 그녀는 힘을 주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저... 지금 네일을 할 수 있나요?”
“원래는 예약을 하고 오셔야 돼요. 그래도 이 시간 후로는 예약이 없어서 괜찮을 것 같네요. 어떻게 할지 생각해온 게 있으세요?”
“어... 음, 핑크색이요. 연한 핑크색으로 하려고요.”
딸랑. 네일숍을 나서는 하영의 얼굴이 손끝을 따라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갑자기 하게 된 네일이지만 깨끗하게 정리된 손톱을 매끈하게 덮은 옅은 빛깔을 보자 기분도 훨씬 나아졌다.
다음날 아침 그녀는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드는 손을 계속 만지작대며 전날 외면했던 일을 시작했다. 다행히 오전 내내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없어 자료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수정한 내용 전체를 서너 번 꼼꼼하게 확인한 뒤 하영은 두 눈을 질끈 감고 결제 버튼을 눌렀다. 떨리는 마음을 애써 다독인 지 얼마 되지 않아 팀장이 그녀를 불렀다.
“결제 올린 거 확인했어요. 자료 깔끔하게 수정 잘했고, 바꾼 양식도 한눈에 보기 좋아졌네요. 바로 승인할게요. 앞으로도 이렇게만 하면 문제없겠어, 하영 대리.”
하영은 깜짝 놀라 말을 더듬다 허둥지둥 자리로 돌아갔다. 팀장이 우호적인 모습을 보인 것도, 누구누구 씨가 아니라 이름 뒤에 대리라는 직급을 붙여 제대로 불린 것도 처음이었다. 그날의 얼떨떨한 칭찬을 시작으로 그녀는 최종 보고까지 실수 없이 마무리 지으며 또다시 칭찬을 받았고, 보고서와 분석 자료를 마음에 들어 한 차장의 추천으로 정기 실적보고 회의에서 발표까지 맡게 되었다.
이제는 다른 의미로 가슴이 떨려왔다. 드디어 그녀에게도 기회가 찾아온 거였다. 몰아치는 일에 정신없이 휩쓸리다 하영은 순간 자신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새 손톱이 자라나 있었다. 문득 예쁜 핑크색이 못생긴 손톱을 덮어버렸듯 자신의 못난 부분을 가려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중얼거리면서도 그녀는 다시 네일숍을 예약했다.
그 뒤로 하영의 손은 쉴 틈 없이 젤 네일로 반짝였다. 손톱이 자라나는 걸 견딜 수가 없었다. 네일이 밀려나는 만큼 그녀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훌쩍 밀려나 버릴 것만 같았다. 2 주일에 한 번씩 네일 색이 바뀔 때마다 갈려나가는 손톱이 쓰라렸다. 중간에 한번 네일이 떨어져 나간 걸 그냥 놔둔 적이 있었는데, 그날 중요한 회의 내용을 놓쳐 팀장에게 된통 깨진 후로 하영은 더욱 네일에 집착하게 되었다. 바보 같은 짓임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이따금 민아가 다가와 새로 한 네일을 비교하며 대화를 나눌 때면 그녀와 가장 친밀한 직장동료로 자리매김했다는 뿌듯함마저 느꼈다. 무엇보다 네일을 하면 할수록 하영은 자신이 민아가 된 것만 같았다. 민아처럼 무슨 일이든 잘 해내며 회사에 꼭 필요한 직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점점 더 깊숙이 뿌리를 내렸다.
네일은 날이 갈수록 화려해졌다. 이제 손톱은 얇아질 대로 얇아져 찢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하영은 이번에도 네일숍 예약시간을 고민할 뿐이었다. 인터넷으로 최신 유행 네일을 검색하다 고개를 들자 옆자리에 직원 서넛이 모여 있었다. 그중엔 민아도 있었다. 알은 체하며 대화에 껴볼까 잠시 망설이는 사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이제 네일 그만하려고요. 어제 다 제거하고 손톱 정리만 했는데 깔끔하고 괜찮죠?”
“어머, 예뻤는데 갑자기 왜?”
“계속하다 보니까 자꾸 손톱만 상하는데 굳이 돈 써가며 이럴 필요 있나 싶지 뭐예요? 네일숍 갈 때마다 쓰는 돈도 아깝고요. 차라리 그 돈으로 주식을 하든지, 아님 취미생활에 투자를 하는 게 남는 장사겠더라고요. 그리고 이게 더 단정해 보이잖아요.”
해맑게 웃으며 머리를 넘기는 손끝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곳에 다른 무언가를 덧씌운 적이 있었냐는 듯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뭉툭한 모양새로 짧게 깎여 있었다. 그들은 대화를 마치곤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하영은 도통 움직일 줄을 몰랐다. 대낮에 귀신이라도 본 것 마냥 파리하게 질린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팀장이 손뼉을 치며 회의 시작을 알렸다. 하영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민트색 유광 네일로 빈틈없이 채워진 손톱은 여기저기 진주 장식과 크리스털을 붙여놓았다. 그녀는 순간 손끝에 더해지는 무게를 느꼈다. 오래된 퇴적층 안에 묻혀있던 육중한 돌덩이를 손톱 위에 통째로 올린 것만 같았다. 울퉁불퉁하게 튀어나온 파츠의 존재감이 너무나 불편하고 답답했다.
하영은 애꿎은 손을 하염없이 문질러본다.
영롱하게 반짝이는 에나멜 빛깔은 덩어리째로 진득하게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