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하이민

‘옷을 단단히 여며야 해. 섶 사이로 밤이 드니까.’


가느다란 손가락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강한 힘이었다. 억센 손아귀로 붙잡은 옷깃이 이내 빳빳하게 펴졌다.

‘섶을 깨우면 안 돼.’

음영이 짙게 드리운 얼굴은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깜빡이는 형광등 불빛 아래 그을음처럼 진득하게 들러붙은 그림자가 일렁였다. 어깨까지 닿은 검은 머리칼은 그보다 더 어두운 검정 옷에 덧대어져 바닥까지 이어진 것처럼 보였다. 여인의 왼쪽 손목에 헐렁하게 걸쳐진 검은 묵주는 금방이라도 손에서 쑥 빠질 듯했다. 그녀가 손을 들어 올리자 묵주가 손목을 미끄러지듯 한 바퀴 돌았다. 까드득. 묵주 알들이 서로 부딪치다 천장 불빛을 반사했다. 시계 초침이 덜컥 멈췄다. 탁. 귀가 아플 정도로 고막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떨림이 물결치며 퍼져나갔다. 밤이 내려오는 소리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헉. 도윤은 화들짝 놀라 몸을 떨며 잠에서 깨어났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주룩 흘러내렸다. 잠시 머리를 헤집던 그는 거친 손길로 침대 맡에 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05:00 A.M. 창밖으로 어스레한 새벽빛이 슬며시 고개를 들이밀고 있었다. 한동안 이런 꿈은 꾸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꿈에 나온 얼굴을 떠올리던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입고 있던 셔츠를 들춰보자 명치끝에 엄지손톱만 한 검은 반점이 박혀 있었다. 쿵쿵 울리는 맥박을 따라 들썩이는 까만 점은 그녀를 뒤덮은 음울한 어둠을 닮아 있었다. 까맣게 덧칠해진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던 도윤은 눈을 부릅떴다. 그는 왼쪽 손목에 찬 검은 묵주를 뚫어지게 쳐다보다 다시 눈을 감았다.



도윤이 어렸을 때부터 현수는 유독 그의 옷매무새에 집착했다. 그가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끊임없는 잔소리가 이어졌다. 자식을 향한 어미의 걱정이라기엔 강박적인 면이 있었다. 집에는 단추나 지퍼가 달린 옷을 아예 찾아볼 수가 없었다. 점퍼나 코트 같은 겉옷을 걸쳐야 할 추운 계절이 오면 그녀는 말없이 목 끝까지 단추를 잠그고 지퍼를 올렸다. 그는 옷을 입을 때마다 답답하다고 칭얼대다가도 무섭게 가라앉은 표정을 마주하고선 입을 꾹 닫아버리곤 했다.


“섶을 여는 바람에 네 아빠가 죽었어.”

그녀는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되었다. 평소의 단단하고 또렷한 눈빛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먼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흐려졌다.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해 보이기도 했다. 그 꿈은 소중한 이를 잃어버리는 결말뿐인 지독한 악몽이었다.

“그들이 손을 거들어주기만 했어도...”


그녀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했다. 쓴웃음과 함께 감쳐문 입술 끝으로 차마 털어내지 못한 감정이 돌이킬 수 없는 후회인지, 누군가를 향한 원망인지 알 수 없었다. 도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옆을 조용히 지키는 것뿐이었다.

도윤의 몸이 자랄수록 현수는 버석하게 말라갔다. 생기를 잃은 얼굴은 허여멀겋게 떠서 볼이 움푹 파여 병색이 완연했다. 병원에 가자는 말에도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의 아비가 마지막으로 남긴 물건이라는 검은 묵주를 손에 꽉 쥐고서 이를 악물뿐이었다. 그것은 광기에 가까운 의지였다.

“내가 어떻게 버텨왔는데! 끝까지 버텨야지. 버텨서...”

고통에 몸부림치며 읊조리는 문장은 발음이 뭉개져 끝내 마지막엔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땀에 젖은 티셔츠가 몸에 달라붙어 잔뜩 수그린 왜소한 상체가 드러났다. 뒤돌아 누운 등은 날개 뼈가 움푹 파여 들어가 앙상했다.

늦여름이 기승을 부리던 8월 말, 도윤이 대학 입학 후 처음 맞이했던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그날은 약속이 조금 일찍 파했다. 뜨끈하게 달궈진 공기는 그늘에 몸을 숨기면 나른한 온기가 됐다. 이런 날에는 집에 돌아가 늘어지게 누워 있기에 딱 좋았다.

학교 후문에서 오른쪽으로 꺾으면 골목길 사이로 구불구불한 샛길이 나 있었다. 그 길을 따라 30분 정도 쭉 걸어가면 붉은 벽돌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주택가가 나왔다. 초록과 파란 지붕 사이로 빨간 지붕을 씌운 집이 보였다. 그가 태어났을 때부터 살았던 집은 아래위가 온통 붉어 동네에서 빨간 집이라 불렸다. 대문을 열고 6칸짜리 계단을 올라가면 녹이 슬어 검붉은 기가 도는 현관문이 있었다. 살짝 수평이 맞지 않아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팔에 힘을 줘야 했다.


현관문을 힘껏 열어젖히고 걸음을 떼는 순간, 이상한 위화감에 도윤은 몸을 움찔댔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맺히는 바깥과 달리 집안이 냉골이었다. 한겨울에도 느끼지 못했던 스산한 한기가 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너무나 조용했다. 평소 그녀는 거실에 앉아 쉬고 있다가 그가 돌아오면 비척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잘 다녀왔니 하고 인사를 건네곤 했다. 집 안은 익숙한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공기 중에 얇게 흩어져버리는 쉰 목소리, 부스럭대며 구겨지는 옷자락과 바닥을 조용히 누르는 발소리까지도. 소름 돋는 정적이었다.

현수는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가끔은 걷는 것조차 힘들어했기 때문에 이 시간에 집에 없을 리가 없었다. 어쩌면 방에 쓰러져 있을지도 몰랐다. 머리칼이 쭈뼛 솟아오르는 감각을 애써 억누르며 그는 급히 안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안방은 커다란 창문 덕분에 채광이 잘 됐다. 그녀는 햇빛이 비치면 옅은 색감이 번지는 방의 풍경을 좋아했다. 도윤 또한 그녀가 따스한 분위기 속에서 편안한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시간이 소중했다. 그런 공간이 어둑했다. 심지어 지금은 햇볕이 길게 남아있는 오후였다. 이렇게 어두운 건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사악.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귀를 기울여야 겨우 들을 수 있는 작은 소리였다.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것 같기도 했고,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도 같았다. 삭, 사악. 또 그 소리였다. 이내 어둠이 한 발자국 물러났다.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온 빛이 내부를 어렴풋이 비췄다. 어둠에 어느 정도 눈이 익숙해졌는데도 희미한 윤곽은 도통 뚜렷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도윤은 눈을 잔뜩 찌푸린 채 다시 안을 들여다보았다. 자세히 살펴보자 중심부에 기다랗게 굴곡진 무언가가 꿈틀대고 있었다. 숨이 턱 막혔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사이 가려졌던 창문이 완전히 드러나며 샛노란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렸다. 방에는 현수가 있었다.


그녀의 몸은 가슴부터 배까지 길게 찢어져 있었다. 뱃속은 시꺼멓게 물이 든 채였다. 갈라진 틈으로 까만 연기가 하염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뱃속에서는 끈적끈적하게 뭉친 검은 액체가 흘러나와 바닥에 고였다. 육체는 검은 것을 토해내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들썩였다. 그 반동으로 팔과 다리가 허공에서 허우적댔다. 바람을 불어넣은 풍선인형처럼 맥없이 흔들리는 몸뚱이는 현실성이 없었다. 창백하게 질린 피부는 탄력을 잃고 축 늘어진 고무 같았다. 그 위를 기어 다니는 검댕이 대비되며 방 안은 선뜩한 무채색으로 가득 찼다.


그는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순간, 그녀의 몸을 비집고 나온 어둠과 눈이 마주쳤다. 분명 형체 없는 검은 덩어리인데도 그것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섶을 가두어 놓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것을 어디에 가두었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어둠이 서서히 몸을 일으키자 밤이 내렸다. 섶이 깨어났다.

털썩. 뱃속이 텅 비어버린 육체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가만히 그를 바라보던 시선이 아래를 향했다. 안 돼, 안 된다고. 엄마는 안 돼. 도윤은 말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꺽꺽대며 목을 부여잡았다. 차마 단어가 되지 못한 절규가 입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도대체 왜? 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과 안 된다는 절박한 외침이 뒤엉켜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안 돼? 무엇이?


쇳소리가 섞인 듯 낮고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음울하게 가라앉았지만 광포한 기색이 서려 있었다. 섶이 내뱉은 소리는 물결치는 검은 파동이 되어 순식간에 그를 강타했다. 커헉.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몸이 꺾여 주저앉는 와중에 무릎이 바닥에 세게 부딪혔지만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았다.

뭉쳐있던 검은 덩어리에서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나더니 길어 늘어나 코앞까지 다가왔다. 얼굴 주변을 배회하며 그를 관찰하는 듯했다.

그릇은 깨졌다. 제 몫의 역할조차 하지 못했으니 대가를 치러야 하지.

섶이 바닥으로 기어 내려갔다. 갑자기 검은 덩이가 쫙 펴지더니 움푹 들어간 구덩이가 파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구덩이는 그녀의 머리를 덥석 물어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으적, 으적. 살을 짓이기는 소리가 났다. 섶이 어깨와 가슴, 허리까지 집어삼키고 상반신이 사라진 몸은 다리만 공중에서 덜렁거렸다.

현수의 몸이 섶에게 먹혀 들어갈 때마다 도윤의 눈앞이 시뻘게졌다가 새까매지기를 반복했다. 움직여야 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숨을 들이켰다. 목에 핏대를 세우며 힘을 주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같은 행동을 서너 번 반복한 끝에 겨우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엄마를 놔줘. 이 미친 괴물 새끼야!”

목구멍을 바늘로 벅벅 긁어대는 것만 같았다. 피가 섞인 기침을 토해내면서도 섶을 노려보는 그의 주변을 섶이 빙그르르 돌았다. 그녀는 서서히 발끝까지 어둠에 삼켜져 버렸다. 도윤은 무기력한 스스로에 대한 분노가 차올랐다. 그와 동시에 섶을 향한 증오와 절망으로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어느 순간 검은 연기는 사라져 있었다.


내가 삼킨 것은 육체와 혼 전부다. 잘근잘근 씹어 잘게 찢어놓았지. 나에게 먹힌 것들은 모두 끝없는 어둠 속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가 울분에 차서 입을 열려 하자 방해하지 말라는 듯이 검은 연기가 하관을 둘러쌌다. 아무리 긁어대고 할퀴어도 떨어져 나가지 않자 도윤은 기운이 빠져 씩씩대는 숨만 몰아쉬었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 섶이 말을 이어갔다.


괴(怪) 100마리. 나는 아무거나 먹지 않아. 내가 선택한 먹이어야만 하지.

괴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위를 올려다보자 섶은 그의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자적하게 방 안을 떠돌아다녔다.

그 숫자를 다 채우면 그때는 네 어미의 혼을 너에게 내어주마.


“그 말을 지킨다는 보장이 어디 있지? 믿을 수 없어.”

이건 계약이다. 계약은 반드시 따른다.

계약이라고. 섶이 한 말을 따라 중얼거리자 명치 쪽이 따끔했다. 셔츠를 벗어보니 갈비뼈 아래 쑥 들어간 자리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한번 계약이 성사되면 무를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괴가 먹이라 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인간은 아닐 테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섶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검은 덩어리는 연기 뭉치가 되어 소용돌이치며 몸속으로 빨려 들어왔다. 붉었던 자리는 검은 반점이 되어 가라앉았다.


텅 빈 방에는 검은 묵주만이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묵주를 들어 손에 꽉 움켜쥐었다. 섶이 대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는 몰랐다. 그것과 맺은 계약이 어떤 의미인지도. 그게 무엇이든 그녀의 혼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상관없었다. 그런 끔찍한 죽음을 겪은 것도 모자라 영혼마저 저 깊은 어둠 속에 파묻힌 채로 둘 순 없었다. 먹이 100마리. 섶이 원하는 먹이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찾아내야 했다. 이 세상을 다 뒤져서라도.




도윤은 티셔츠에 팔을 집어넣으며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에 맞춰 가려면 조금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신발장에서 운동화를 꺼내며 서랍 위에 올려둔 검은 묵주를 집어 들었다. 몇 년 전만 해도 딱 맞게 들어갔던 묵주는 이젠 손에 꽉 끼어 저녁이 되면 손목에 진한 자국이 남곤 했다. 까맣게 빛나는 묵주를 만져보다 꿈에 나왔던 얼굴을 떠올렸다. 고개를 든 얼굴에 망설임은 없었다.


달칵. 문이 닫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