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지기의 첫 번째: 호르몬 단백질의 깜냥을 이해하자
매달 그날이 다가오면 나는 가슴이 부서지는 답답함과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함에 사로 잡힌다. 그리고 넘치는 스트레스로 이러다 죽겠지 싶을 때 불쑥 머릿속을 스치는 단백질의 역습은 결국 내가 한 달을 살아남는구나라는 생각에 사로 잡히게 된다. 물론 모든 여성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인류의 자생적인 흐름의 결과로 만들어진 수도의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오롯이 내 것으로 지내야 하는 남성의 입장에서는 과연 우리가 단백질의 노예로 살아야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호르몬은 과학적으로 입증된 단백질로 구성된 전달 신호로 우리의 몸속 구석구석에 신진대사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동과 감정을 전달하고 중재하는 신호체계이다. 우리는 이 단백질 신호에 의해 내적 균형을 이루고 항상성을 유지해 생명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유지하지만 이를 통해 불안, 스트레스 등 인간으로서는 대처하기 어려운 감정의 기복을 느끼기도 한다.
이러한 호르몬 가운데 6가지 우리의 감정을 다스리는 호르몬은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이어나갈 때 빼놓지 않아야 하는 중요한 설명 기제이다. 먼저 불안과 스트레스를 중재하는 코티솔은 분비되는 양에 따라서 통제를 잃는 경우가 많다. 더욱이 뇌의 위험 신호로 인식되는 이 단백질은 우울증 등 현대인들의 다양한 정신 질환의 원인이 된다.
이와는 반대되는 옥시토신은 사회적인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긍정적 행동을 유발하는데 인간의 다양한 긍정적인 감정에 쓰인다. 물론 옥시토신의 부족은 코티솔과 같은 상태로 이끌 수 있다는 점 역시 반드시 숙지해야 할 사실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멜라토닌을 통해 기억을 저장하고 하루 동안 지쳐있는 신체의 노화를 막기 위한 작용을 하게 되는데 잠이라는 방어기제를 통해 생물학적인 변화를 최소화하도록 돕고 기억의 다양한 저장을 통해 뇌의 용적을 늘리는 데에도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와는 다르게 아드레날린은 양면을 가지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불안을 통해 스스로의 능력을 배가하는 기능을 가지고도 있지만, 이를 통해 불안이나 우울증 뿐만 아니라 무관심 우유부단까지 부를 수 있는 변화무쌍한 호르몬이다. 마지막으로 엔도르핀은 20여 개 이상의 변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아드레날린이나 코티솔이 불러올 수 있는 부정적인 변화에 대해서 생물학적인 고통을 막는 역할을 하게 된다. 결국 고통의 수용을 용이하게 하는 엔도르핀은 마약처럼 우리의 몸속에서 고통을 참고 인내하는데 중요한 방어 기제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사랑을 할 때 주로 사용하는 도파민과 옥시토신 등은 결국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단백질의 군락 가운데 우리를 비 사회적인 인간으로 몰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들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주의해야 한다.
나는 지금도 나의 단짝의 급성 짜증과 만성 생리 증상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다행히 연예 초기에는 그녀 역시 나에게 도파민과 옥시토신 등이 남아 있어 스스로 사회적으로 부당하다 느끼는 처사에 대해서는 조심했지만, 결혼 이후 나는 그녀의 고통에 중요한 참가자로 인식이 되면서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내부자가 되어 버린 것이다.
사실 초반에는 그 내부자로서의 지위 역시 너무나 행복했다. 나 역시 강력한 아드레날린의 도움으로 그녀에게 다양한 방식의 적응 노력을 보여왔다. 허리를 두드리거나 다디단 초콜릿으로 도파민을 더욱 강하게 분비하도록 도와주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이성적인 해결 방법이었다. 이외에도 그녀의 비 이성적인 행동에 대해서 나 스스로에게 책임을 돌리며 멜라토닌을 사용해 일부 기억을 지우는 것도 중요한 해결책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나 역시 다양한 호르몬의 도움이 없어진 시점을 통해 이성적인 해결 방법에 침착하기 시작했다. 비이성적일 수밖에 없는 그녀의 행동에 이성적인 답을 구하거나, 이해할 수 없다는 믿음을 주입하면서 그녀가 하는 행동에는 원하지 않는 결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의견을 통해 그녀가 이성적인 인간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더욱이 시간이 지나고 그녀 역시 호르몬의 영향력이 줄어들게 된 다음에는 피폐해진 나를 보면서 미안함을 호소한 적도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우리는 호르몬이라는 단백질의 노예가 되어서 살아야 한다는 결론만이 최선의 결론 일까?
우리는 스스로 의심하지 않은 진리가 있다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 신념은 결국 불합리한 상황에서 별반 다를 바 없는 이해라는 것을 만들어내고 그 이해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구조화 르 통해 요새를 만들어내곤 한다. 그리고 그 요새가 부당한 순간이 되었을 때 혹은 타자로부터 더 이상 가치를 인정받지 않으면서 스스로 체계가 무너졌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고정관념이라고 한다.
어쩌면 나는 스스로 그녀의 단백질 정치를 고정 관념화했는지 모른다. 물론 여전히 그녀의 불합리한 단백질 정치에서 나는 불합리라는 이름을 가지고 지금까지 스스로의 정당성을 주장해 왔다. 나 역시 결국 아드레날린과 도파민을 통해 얻어진 요새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부정당하는 순간에 나는 가장 인간적인 이성이라는 새로운 근거지를 찾아 정치를 시작했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이 순간에도 다양한 단백질 정치 속에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고 사랑하기도 하며 순간순간 변화하는 다양한 상황에 대해서 스스로 이성적인 방법으로 강구한 다양한 요새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전세가 불리해지면 어김없이 그 요새를 버리고 새로운 은신처를 찾아 떠나면서 예전 요새는 낡고 필요 없는 존재라는 이성적인 인식 만을 남긴 채 말이다.
결국 우리는 스스로 단백질 정치에서 항상 패배하면서도 스스로 진일보한 결론을 내렸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진일보한 정치를 결국 그 어떤 사회적인 환경에서도 만들어내지 못하면서 스스로에게 다시 한번 엔도르핀을 주입하면서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연습을 할 뿐이다. 나는 이제 그 단백질 정치에 대한 반복되는 구성을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
우선 나는 이성적인 인간이라는 허구를 벗어야 한다. 나 역시 가장 성실한 단백질을 사용하고 있는 동물로서 스스로 한계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녀의 불합리성은 결국 나 스스로 이겨내지 못하는 고통의 무게를 합리화하는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단백질을 통한 해결 방법이 있다는 것과 단백질의 구성에 따라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 역시 숙지할 필요가 있다.
반면에 그녀는 지금까지 스스로 용인되었던 단백질에 대한 피해가 나와 뉴런을 공유하지 않는 유기체한테는 전혀 적용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사회적인 커넥션이 질적으로 양적으로 풍부하던지 간에 결국 나와 뉴런을 나누지 못하는 개체 에게는 지금 스스로가 참전하고 있는 단백질 전쟁의 승전보나 패전보 모두 절대 공유될 수 없는 객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더욱이 사회적으로도 그 객체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동물이라는 점에서 전혀 다른 단백질 전쟁을 하고 있는 개체로서 스스로 동질감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결국 우리는 개체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나타난 변화 과정을 인지할 수 있는 진행형 인간으로서의 전환이 필요하다.
즉 지금까지 단백질 전쟁에서 우리가 패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단백질로 구성된 호르몬들의 정치적인 측면 에서의 이용한도를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던 측면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 이들의 정치 구성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는 토대 위에서 스스로 맞서게 될 부정확한 정보에 좀 더 과감하게 접근하고 이를 통해 해결을 해 나가는 폭넓은 변화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은 결국 단백질 정치에서 중요한 기억이라는 무기를 통해 앞으로 어떤 변화를 맞이할 것인지 대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스스로 기억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어 버릴 수 있는 단백질들의 공격에서 자꾸 실천하고 물질적인 기록을 남기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단백질과의 정치에서 이길 수 있는 무기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속성과 동시에 발생할 수 있는 반 사회적인 인식 역시도 결국은 우리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나의 또 다른 자아라는 점을 깨닫고 문제를 문제로 바라보고 직시하는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동시에 문제를 인지 하면서 결국 주어진 관점의 고정된 형태의 환경과 시각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적인 인지구조 다변화를 통해 우리 스스로가 단백질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결국 이번 달에도 극심한 고통과 불합리 그리고 비이성적인 그녀의 모습을 보고 말았지만, 스스로 인정하는 법을 배웠으며, 다행히도 그 고통의 시간을 줄이는 방법에 대해서 자그마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이것은 스스로 단백질과의 정치에서 진일보한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 만으로도 승리라 자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려운 다음 달, 그리고 언젠가 벌어질 단백질의 무한 확장에 대해서도 대비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대비책은 결국 도파민으로 시작된 사랑에 대한 다양한 기억을 통해 그녀 스스로가 안정적인 옥시토신을 공급받도록 노력하며 그녀가 주어진 단백질 전쟁 기간 중에 해결 가능한 부분에 있어서의 부당성을 적극 엄호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나는 오늘도 그녀가 불합리한 단백질 정치에서 스스로 승리하기를 갈망하면서 Ladurée의 달달한 마카롱과 그녀가 마시고 싶은 랄프 커피의 아이스 라테를 사러 갔다. 비록 나 스스로도 허리가 너무 아프고 쉬고 싶은 순간이었지만, 지금 이 글을 비롯한 내가 죽기 전에 더욱 많은 것을 남기고 싶다는 순간의 갈망이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바로 어제 아이들을 돌보면서 그녀가 나에게 제공한 휴식권이 나에게 있었지만, 나와 다른 개체와 벌이는 단백질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녀는 스스로 불합리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 비 이성적이면서 다분히 단백질 전쟁에서 패배한 모습으로 나에게 무한의 스트레스와 압박을 가할 뻔했지만, 나는 지금 그녀가 내부 총질에 고통받고 있는 부상자의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간절하게 했다. 그래서 그 시간을 보냈으며 저녁을 먹는 순간에도 그녀가 좋아할 수 있는 떡볶이를 추가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물론 잊지 않고 그녀에게 과일 빙수를 먹게 함으로써 오늘 하루가 무난하게 지나갈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와 같은 많은 남성들은 지금도 이 전쟁에서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고 있다. 나 역시 지금의 짧은 승리가 어쩌면 결국 다음의 대패의 원흉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늘 달고 살아간다면 그녀들 역시 우리의 고통을 이해해 주길 바랄 뿐이다. 결국 나 역시 단백질들의 정치 구조 속에서 나와 다른 객체에 보이지 않는 뉴런을 연결해 인연을 만든 그녀를 오랜 기간 동안 사랑하고 돌보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순간순간이 항상 기억에 남기를 바랄 뿐이다.
오늘은 어제와는 다르게 뉴욕의 하늘이 참 맑았고,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기 좋았으며, 쉽 메도우는 한결같은 다양한 군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센트럴 파크의 늦여름은 그렇게 우리에게 또 다른 기억을 선사했다. 나는 오늘 모은 기억의 조각이 나에게 또 다른 요새가 될 것이며 그것은 적어도 한 1밀리의 전선을 앞서 구축할 수 있는 중요한 버팀목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결국 나는 백년전쟁의 서막을 이제 지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잊지말자 내가 바로 이 자리를 선택한 주체라는 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