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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Newyorker Dec 15. 2020

코로나 19가 불러온 소통의 목마름

소통 방식의 변화가 몰고 온 새로운 문화 향유 방식 

코로나 19가 세계적인 팬데믹을 만들어낸지 불과 몇 주 뒤면 일 년이 된다. 지난 3월 WHO의 전 세계 팬데믹 선언 이전부터 우리를 괴롭히던 바이러스는 이제 남반구를 거치고 북반구로 돌아오면서 다시 한번 맹위를 떨치고 있다. 이미 유럽은 재감염 징조를 넘어서 1차 때 보다 더욱 가파른 속도로 감염자가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2차 팬데믹이라는 용어가 더 이상 낯설지가 않은 하루 확진자 1만 명 시대가 다시 시작되었다. 일부 국가에서는 다시 한번 봉쇄 정책을 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의견 역시 빠르게 대두되고 있다. 

내가 지내고 있는 미국은 이러한 변화의 정점에서 온전히 코로나 19에 정복된 상황이다. 초기에는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확산세를 이어가던 모습에서, 지금은 서부, 남부 중부 지역을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일일 확진자 수만 명 시대를 매일 지나고 있다. 다행히 가장 큰 사망자 피해를 겪었던 동부 지역은 강력한 방역의 결과로 하루 확진자 5백 명 이하를 유지하는 지역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다행인 결과이다. 

초기 방역에 봉쇄를 강하게 한 결과일까? 지금 사람들은 코로나가 이제 완전히 사라진 것처럼 행동한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는 여름의 끝자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괜찮다는 말을 되뇌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마스크를 벗고 그리고 누군가와 소통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있는 지금의 현실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공룡들의 후손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곁에는 소통의 갈마름을 어떤 것으로 채울지 고민하고 있는 신인류가 있다. 그 신인류의 상당수는 소통을 위해 지금껏 유지했던 모든 사회적인 관심을 떼어 놓고 완전히 새로운 방식을 배워야 하는 노비스(Novice)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일까? 오랫동안 은둔자의 모습으로 그려졌던 특정인들의 생활 방식이 우리의 전형적인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생활방식이 되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 사이의 관계 변화는 사실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호혜의 법칙에 의해서 유지되어 왔다.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방식을 많이 유지하는 인간형은 사회성이 좋은 인간으로 분류된다면, 그렇지 못하는 인간들은 사회적으로 격리되거나 사회 부적응자로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코로나 이전 시대에는 '대면'이라는 방식을 통해 인간은 신뢰와 정보를 쌓아 왔다. 그러한 노력은 디지털 문명의 발달로 그 확장성을 넓히면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지구촌이라는 이름의 세계가 하나가 되는 마을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들 거대 통신 체계는 다극화 사회라는 사회 구조적인 변화와는 달리 획일적인 정보 전달의 속도전쟁을 강화하는데 주력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사는 이곳의 뉴스가 로컬 뉴스가 아닌 글로벌 뉴스의 일환이 되는 사회가 가속화되었다. 동시에 그러한 속도의 무한 경쟁은 소수에 의해 조정이 가능한 정보 불균형을 강화하는 중요한 변화점을 만들어 냈다. 

이제 내가 어떤 통신 미디엄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나의 로컬은 전혀 다른 형상을 나타낼 수 있다. 내가 구독한 유튜브 채널과, 페이스북 친구, 트위터 팔로어와 인스타 그램의 DM은 내가 어떤 그룹에 속한 경계인 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중요한 매개가 되었다. 

이렇게 소통의 마름에 스스로를 내몬 인류는 이제 소통의 자유가 가져다준 아이러니 같은 감옥에 살고 있다. 내가 지금 향유하는 문화가 당장 지리적인 유대성을 완전히 상실한 채, 모니터 화면 속 어딘가에 존재하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그들과 하나가 되는 문화를 향유하는 것은 이제 사회 부적응자 정도로 취급했던 디지털 노매드들의 생활양식이 가장 일상적인 패턴이 되어 버린 지금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Among US라는 간단한 게임을 통해 누군가와 소통을 하고 싶고, 그 방식은 게임이라는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것과 같이 전혀 낯선 이들과의 만남과 내가 만들어 놓은 사회적은 규약과 같은 이들과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 버리는 것으로 전환되었다. 

동시에 Fall Guys는 60여 명이라는 전혀 낯선 누군가가 디지털 공간에 모여 함께 뛰고 잡고 구르는 가장 일상적인 행위를 같이 공유하는 새로운 커뮤니티로 떠오르고 있다. Just dance는 전 세계 수백 명이 컴퓨터 화면에서 같은 노래를 틀고 춤을 추면서 경쟁을 하는 방식으로 발전한 것은, 더 이상 소통을 위한 물리적인 경계를 넘어선 결과뿐만 아니라 소통이라는 방식의 긍국적인 목표 자체를 바꾸는 중요한 사건이 되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류는 소통의 부재에 목마름을 보이면서도 다른 방식으로의 소통을 통해 스스로 정신적 고통의 자위를 잊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그 자체로 우리는 잊지 못할 만큼의 경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100년간 인류 문명 가운데 2019년과 2020년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코로나 19라는 바이러스를 통해 대동 단결된 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집단 경험은 앞으로 다음 세계의 소통의 과정에 중요한 전환점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지금 전 인류는 소통의 갈마름을 온라인이라는 공간에 집중하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다. 인스타그램과 트위터, 그리고 페이스북으로 나타나는 나와 디지털 자아의 분리를 경험했던 이들은, 더 이상 여행이나 맛집을 찾아다니는 방식으로 자신을 과시하기 어려워지자 분리불안 증세를 보이고 있다. 동시에 소통을 위한 방식으로서의 게임은 닌텐도의 동물의 숲이 코로나 초반 전 세계 품절을 경험할 정도로 퍼져 나갔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면 얼마나 소통의 목마름을 갈구했는지 알 수 있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지금과 같은 일률적인 보조제 역할로서의 소통이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인정하고 있다. 여전히 임상 3단계에서 멈춰 있는 백신 개발이나,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들의 감염은 바이러스의 역습이 얼마나 우리 곁에 와 있는지 실감하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동시에, 내 주변에서 쉽게 잃어 가고 있는 이웃이라는 접촉에 의한 소통을 다시금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들은, 겨울이 달갑지 않다. 다시 한번 긴 겨울잠을 자야 할지 모르는 전 세계인들은 과연 이번 겨울을 어떻게 나게 될까? 결국 그것이 우리의 뉴 노멀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기폭제가 될 것이다. 슬프게도 75억의 우리는 그 현실이 어떨지 지금 두렵게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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