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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르르 Brr Mar 27. 2020

"꼰"이 싫을 때

상서는 타이탄의 도구

숨 쉬는 것만 봐도 싫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의 인사고과를 결정하는 권한 자라면 난감합니다.

웃기 싫어도 웃어야 하는 가혹한 운명에 볼 살이 파르르 떨립니다.

 

 

중이 절을 떠나야 하는데, 몇 십 몇 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직장이 아깝습니다.

몇 년 버틴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눈을 질끈 감을 땐 물까지 흐릅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그(녀)가 보기 싫은 우린 어찌할까요.

 

사업을 진행하다 보면 부서 간 협업이 9할입니다.

특히 큰 예산을 써야 하는 경우는 예산팀과의 조율이 불가피하죠. 그 돈이 1, 2천만 원이라면 모를까 억 단위면 예민해져 종종 견적을 뽑고 산출 근기를 달아도 공감을 못 얻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회사의 돈을 아끼는 것에 베이스를 둔 예산팀은 가급적이면 절감하려는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충돌 지점에서 만나죠. 답답하고 환장할 노릇이지만 돈을 주지 않으면 준비한 모든 작업들이 수포로 돌아가기에 설득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둘 다 회사를 위한 일이지만 서로의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면 아쉬운 것은 돈을 받는 쪽입니다. 예산팀의 저항에 부딪히면 머리가 아프죠. 실적은 평판과 함께 승진의 2대 요소로 절대적입니다. 관철을 시키고 진행하지 못하면 저는 1년 내내 손가락을 빨고 있었던 걸로 비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구원의 손길을 뻗은 사람이 누굴까요. 맞습니다. <꼰>입니다.

 

그는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이상의 특징을 모두 갖춘 <지금까지 이런 팀장은 없었다> 급이었습니다.

게다가 일까지 잘해버려 본인이 맞다 싶으면 굽히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평생 썩을 속의 절반은 다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런 그가 예산팀의 절대 권력자와 친했던 것이죠.

나의 상사와 예산팀의 절대 권력자 둘 다 모두가 고개를 흔드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경우 있지 않습니까. 같은 종으로 엮이거나 혹은 안 어울릴 것 같은 짝꿍, 뭐 그런 것 말입니다. 결국 예산은 통과됐고 사업은 순항했습니다.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것 같던 사람이 뭐에 써먹나 싶던 저의 생각을 단숨에 날려버렸습니다.

 

그렇다고 꼰과 굉장한 친분을 쌓았냐 또 그건 아닙니다. 다만, 저의 생각이 달라지니 전보다는 여러 가지로 부드러운 교감이 이뤄진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은 그대로면서 달라진 것은 '생각'인데 그 한 끗 차이가 결정적이었습니다. 바로 보기 싫은 꼰도 생각하지 못한 무기가 있더란 겁니다. 그의 무기는 의외성 '인맥'이었고 난관에 봉착한 문제를 해결해 준 솔루션이 된 셈이죠.

 

이제 해야 할 일은 생각의 전환입니다. 그 전환의 목적은 꼰의 <무기>를 찾는 것이고요(아무리 찾아도 없고 찾았어도 도저히 좋게 보이질 않는다면 이 글은 그만 패스하셔도...). 꼰도 인간이기에 살아온 시간만큼 나보다 뛰어난 내공과 노하우가 분명 있기 마련입니다. 그게 무엇일까를 찾아보는 것부터 시작하면 보기 싫었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입니다. 피할 수 없다고 어찌 즐길 수 있겠냐만은 어차피 봐야 할 시간이 지난하게 남았다면, 날 위해 '활용'할 구석은 없는지 찾아보는 게 훨씬 득이지요.

 

돈과 꿈을 찾아 모인 곳에서 맘에 안 드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숱하게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느 곳에 가든 있죠. 아무리 노력해도 그 사람이 맘에 들지 않을 땐 혹시 모를 '무기'를 찾아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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