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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핑크림의 함정

스피치 거품을 제거하는 법

by lqpa


휘핑크림은 달콤합니다. 과하면 탈이 나죠.

언행에 잔뜩 낀 크림은 느끼한 거품입니다.

걷어내지 않으면 거북하고 불편하죠.

정보의 시대답게 지식이 넘칩니다.

요즘은 손에 든 스마트폰 하나면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많이 아는 것보다 편집하고 섞어서 새로운 관점으로 통찰할 수 있는 인사이트력에 후한 점수를 줍니다. 쉽지 않죠. 노력을 많이 해야 얻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업무에 적용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종종 그 시간을 못 견디고 탄탄한 통찰력을 오마주 하며 아직 덜 익은 정보와 지식의 용어들만 크림처럼 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찌어찌 알아는 듣겠는데 이야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현란한 외래어와 전문(?) 용어가 까슬까슬합니다.

잠시 스쳤지만 기억에 남는 직장 동료가 있습니다.

회의에 필요한 간단한 현황 설명에 논문급 발표가 시작됩니다. 아직 들어가지 않은 본론의 결과는 이미 '리즈너블(합리적)'하고 개선 방향은 '개런티(장담)' 할 수 없지만 '점선면 기법(처음 들어보는 기법)'이라면 '클레임(민원)'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그.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좀 개그스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화기애애한 회의 분위기는 좋았지만 열심히 준비했을 그의 언변에 그다지 집중되지 않았죠.

텁텁한 건빵을 끝까지 먹을 수 있는 것은 물과 별사탕이 있기 때문이듯, 외래어와 전문용어가 건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많을수록 어려울 뿐 듣는 이가 '유식하다' 생각할 리 만무합니다. 느끼한 거품 때문에 맛있던 커피가 맛의 본질을 잃어버립니다. 그에게 돌아오는 주요 질문은 발표 내용보다는 화려한 프레젠테이션 애니메이션 효과와 예쁜 프레임 제작방법이 뭐냐였습니다. 정작 그 친구의 인사이트는 PPT 파일을 쓸 수 있게 보내달라 쇄도하는 요청 속으로 사라지고, 실망한 그의 입꼬리만 분주했습니다.

허리가 아파 정형외과를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엑스레이를 보며 그 어렵다는 의학용어 한 번 안 쓰고 아주 쉽게 설명했습니다.

수년간 몸에 박혔을 전문적인 단어를 비전문가를 위해 일부러 다시 정제해 쓴다는 것은 배려로 볼 수 있습니다. '존경'은 그럴 때 나오죠.

물리치료실로 들어가니 치료사가 어떤 치료를 할 것인지 스파인(척추)부터 시작해 알아듣지 못할 말로 나의 귀를 발라주었습니다. 요약하면 찜질이랑 전기 초음파를 하겠다, 끝. 딴에는 상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려 한 것일 테지만 어느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여야 할지, 중반부터는 눈을 감았고 그 뒤로 이어진 말들은 좀 피곤했습니다.

두 가지 부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있어 보이는 것과 없어 보이는 것.

과하면 있어 보일 법한 것도 없어지는 역효과가 납니다. 조금 더 얹어 보려다 설탕물을 만드는 휘핑크림의 함정. 한 숟가락 더 먹고 싶을 때 내려 놓으라셨던 조상님은 지혜롭습니다. 뇌를 연구하고 마음을 공부한 학자가 아니라 조심스럽지만, 경험에 근거할 때 언행의 습관이라 결론 내렸습니다. '나다움'을 공고히 하고 스스로 만족하기 위한 일종의 약속 같은 말버릇.

습관은 성공과 실패의 경계선에 있습니다.

나의 의식과 몸을 지배할 정도면 만만한 상대가 아닙니다. 매 순간 평가와 평판이 승진과 월급으로 연결되는 직장 안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중요하기 때문에 모른 척 하기도 찜찜합니다. 발전하고 좋아질 수 있다면 수정할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자신이 모르는 습관은 주변이 도와야겠지만 자각만 한다면 의외로 쉽게 고칠 수 있기에. 똑같이 주어진 시간과 분량에서 좀 더 담백한 스피치를 하는 사람으로 말이죠.

먼저 자신이 했던 말을 찬찬히 떠올려 노트에 그대로 적어봅니다. 굳이 길게 쓸 필요는 없습니다. 그 안에 외래어와 전문용어 등 이해를 방해한다고 생각하는 단어는 모두 밑줄 칩니다. 그것을 내가 생각할 때 더욱 쉬운 표현으로 바꿔 봅니다. 그 작업을 주변 사람에게 의뢰해 내 것과 비교합니다. 둘을 조합해 고친 뒤 다시 읽어봅니다. 한 번만 시도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산뜻하고 쉽게 읽힌다면 방법을 찾은 겁니다. 반갑습니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는 사람이 진짜 실력자입니다. 완전히 간파해 자기의 것으로 소화한 결과이니까요. 어쩌면 화자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태도. 나의 이야기를 시간 내어 소비해주고 경청해주는 것에 대한 예의겠죠.

달달한 휘핑크림 넣은 커피 한 잔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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