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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 Jan 20. 2023

무생채

모두들 그러하듯 나 역시 몇 가지 음식들을 대할 때면 연상되는 사건이나 사람들이 있다.

오늘은 그중 하나인 무생채를 해 먹다가 또다시 아버지를 떠올렸다.

 여기는 한국무를 찾으려면 한인마트를 찾아가야 가끔이나마 통통한 무를 만날 수 있다. 일반 상점엔 기다랗게 쭉 뻗은 단무지용 무가 있는데 몇 번 사 먹고는 잘 구매하질 않는다. 바람 들고 맛없기가... 그 대신 콜라비가 참으로 아삭하고 맛나서 나는 장 볼 때마다 사서 국에 넣고 생채로 버무리고 나물처럼 볶아 먹는다. 쌉싸름한 맛이 없는 게 아쉽지만 아삭거리고 시원한 맛만으로도 길쭉한 무모단 훨씬 맛나다.

 어릴 적 어느 날인가 어머니가 무생채를 해놓으셨는데 그때 아부지는(나는 실제로 아부지라 부른다)  평소와는 다른 활기찬 목소리로

 "느이 엄마 무생채는 고추장 넣고 비벼 먹는 게 최고지. 여보 고추장하고 챔지름 좀 줘봐. 거 큰 그릇도 가져오고."

엄마는 참기름 아껴 드시라는 잔소리를 곁들여 재료를 챙겨주셨고, 아부지는 아주 신이 나신 표정으로 무생채 비빔밥을 만드셨다. 한 번 먹을 때 맛나게 먹는 게 남는 거라며 엄마가 귀히 여기시는 참기름을 한 술 듬뿍 따라 넣으셨고 그에 따라 엄마의 작은 비명소리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날 공기가 맑았던 걸까? 햇살이 밝았건 걸까? 그 한 장면이 내 기억 속에 밝고 맑은 수채화처럼 각인된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내게 아부지는 참으로 엄한 분이셨다. 사춘기를 어렵게 넘어가게 한 분이기도 하고, 유년기의 어두운 부분을 대부분 담당하고 계신 분이기도 하다. 물론 난 아부지의 인정을 받고자 부단히 노력했고 그에 못 미치는 내가 힘들어 아부지를 원망했기 때문이란 걸 나이가 들어 깨닫게 되었지만, 아부지에게도 내가 너무 이른 나이에 얻은 딸이라 아버지로서 매우 서툰 아버지였음을 이젠 이해하고도 남지만, 어쨌든 내 어릴 적 아부지는  참으로 어렵고 두렵고 무거운 존재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날 신이 나서 무생채 비빔밥을 만드시던 기분 좋은 아부지의 생경한 모습은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듯하다.

무생채 비빔밥에 청국장을 좋아하시는 울 아부지. 어린 시절 너무 굶고 허기질 때  남의 밭 무를 뽑아 먹으며 학교를 다니셨다던 아부지. 삼 남매 다들 각자 가정 다복하게 사는 게 최고 효도라며, 우리들 보고 효도하고 있다고 위로해  주시는 아부지. 이제는 그 날카로움이 거의 무뎌지시고, 손주들에게는  한없이 내어주시는 허허할아버지가 되신 아부지.

아부지. 잘 키워주셔서 감사해요. 가끔 못마땅한 표정 나오시면 가슴이 뜨끔해지는 건 여전하지만, 이젠 그런 카랑카랑한 모습조차 오래오래 뵙고 싶어요.

나는 무생채비빔밥을 무척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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