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쓰레기통을 내놓으려 나갔다가 밤공기를 맡았다. 한동안 푹해서 비가 계속 내려 축축했던 공기가 이번주부터 카랑카랑하고 쌀쌀한 바람 부는 겨울공기로 바뀌어 있음을 알고는 있었다. 몸을 움츠리고 큰 숨을 몰아쉬는데, 갑자기 기억 속의 겨울냄새가 훅 불어 들어왔다.
난 어린 시절 시골, 그것도 벽지라 불리던 깡시골에서 자랐다. 내 유년기의 감성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던 요인들 중 8,9할은 이 산골환경이었다. 생각만으로도 미소가 절로 배어 나오던 어린 시절은 참으로 촉촉하고 말랑거렸는데, 중학생이 될 즈음 도회지로 나오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인생이 참 쓸쓸하고 고단하단 걸 깨닫게 되었다고나 할까?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 각기 다른 색채와 냄새와 촉감들을 다 기억한다. 이것들은 아마 앞으로 내가 쓰는 글들의 소재로 자주 소환될 것이다.
어젯밤에 들이마신 공기는 그 어린 시절 겨울날 맡았던 그 냄새였다. 나무 태우는 냄새가 쌀쌀한 저녁공기에 배어있는 , 가슴 저릿하게 하는 그 냄새. 그 시절 우리 동네는 모두들 아궁이에 불을 때고 있었다. 그 동네 유일한 양옥집 세 채가 학교 사택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우리집이었건만, 그 집들도 모두 아궁이에 불을 땠었다. 겨울철 그 굴뚝냄새가 온 마을에 퍼지면 볼때기와 귓불이 빨갛게 얼어터지게 놀던 우리들은 곧 각자 엄마들이 우리를 부르리란 걸 알아서 초조해지는 맘으로 더욱 가열차게 하던 놀이를 몰아쳤었다. 그러나 기어코 밥 먹으러 들어오란 엄마들의 우렁찬 호령소리를 듣고야 마는데, 엄마가 제일 무서운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면 우리들은 맥이 빠져 다 같이 내일을 약속하며 집으로 들어갔었다.
그 굴뚝 냄새는 하루를 마감하고 귀가를 알리는 신호였으며 따뜻한 저녁 반찬을 궁금해하던 마음이었다. 겨울철 반찬이 거의 한결같이 김치찜이었건만 그래도 가끔 동태탕인 날도 있었고, 소시지 부침이 있는 날도 있었기에 집으로 돌아가며 우리들은 한껏 콧구멍을 벌름거렸었다.
여기 독일 사람들은 거의 모든 집에 벽난로가 있고 따라서 굴뚝도 있다. 구축건물은 물론이고 신축건물도 거의 대부분 굴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집은 없다. 가진 자산이 거의 없었고 대출도 간신히(운좋게) 받았던 터라, 남들 다 하는 벽난로와 굴뚝 예산이 감당하기 어려웠고, 나는 그동안도 벽난로 없이 잘 살았으니 그냥 없어도 되는 데에 돈 쓰지 말자고 강한 미련을 갖는 남편을 설득해 굴뚝설치를 포기시켰다. 나라고 낭만을 모르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냉정하다.
동네산책을 하다 보면 언제나 아쉽다. 우리도 하나 있었으면 하고... 벽난로야 이제라도 구입할 수는 있다. 벽 뚫어 은색 연통 하나 빼면 되긴 하다. 그러나 근사한 붉은 벽돌 굴뚝은 이제는 가질 수 없는 것이다.
요즘 에너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나무들을 많이 태우나 보다. 그래서 나무가격도 오르고 나무도둑들도 극성이라 한다. 올 겨울 시작 즈음 내가 남편에게 벽난로 설치 의향을 비추었긴 하다. 하지만 집에 뭐 하나 구입하고 설치하는 데에는 오랜 궁리가 필요한 법이다. 경제사정도 살펴보고 실익과 낭만 사이의 대차대조도 예측해봐야 하고, 설치 후 관리비용까지 계산해봐야 한다.
한국에서 살 때는 정신없어서 겨울철 냄새도 잊었었는데, 여기로 이사한 후로는 겨울철만 되면 온 동네 살풋 깔리는 굴뚝연기가 내 마음을, 내 기억을 움켜쥐어서 가슴을 움찔움찔하게 한다. 처음엔 행복한 기억에서 시작해 결국에는 인생사 허무함과 서글픔으로 마치고야 마는.
그래서 이런 감정들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과 그러면서도 나무 타는 불멍을 즐기고픈 낭만이 섞여 내 마음은 뒤죽박죽이다. 물론 새로 집을 얻는다면 어떤 결정을 할 거냐고 묻는다면 무조건 굴뚝과 벽난로는 선택사항이다. 그렇다. 나도 불멍 좋아한다. 이래 봬도 어릴 때 아궁이에 불 때던 경력도 있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