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많이 사라진 걸로 알지만, 예전 결혼 선언문에 흔히 등장하는 문구로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어도 서로 변함없이 사랑하고 아껴주며..."라는 게 있었다.
어릴 땐 "왜 머리카락이 파뿌리가 되지?"라며 파뿌리 머리가 어떤 머리일지 상상해 보았지만 도통 알 수 없었다. 나이 들며 자연스레 그 의미를 알게 되긴 했지만, 한동안 왜 하필이면 파뿌리에 빗댔을까 싶었던 적도 있지만, 이제는 이만한 비유가 또 없겠다 싶게 깊은 이해와 공감을 하는 나이에 이르렀다. 나이 들어 윤기 없이 말라비틀어지고 숱이 빠져 여기저기 성긴, 하얗게 빛바랜 볼품 없어지는 내 머리카락을 보니 파뿌리가 되어가는 머리라 아니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난 어른들은 어른으로 태어나 사는 줄 여겼던 것 같다. 우리 엄마 아빠는 처음부터 엄마 아빠로만 살았고, 머리 하얗던 외할머니는 처음부터 머리 하얀 외할머니로만 산 줄 여겼던 것 같다. 물론 이성적으로야 당연히 그분들에게도 유아기, 유년기, 청년기가 있었다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내 인식 속에서 그분들은 언제나 항상 어른이었고, 폭풍우 몰아치는 마음속 번뇌는 나만 싸안고 사는 줄 알았다. 내가 보기엔 그분들은 한결같이 사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2학년 토요일 오후였다. 반나절 수업을 마치고 신나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일찍 퇴근해 다시 외출하시는 아빠를 마주쳤다. 사춘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아빠가 어려운 시기였다. 밖에서 만난 아빠와 서먹한 몇 마디를 주고 받았는데, 그 순간 아빠의 귀밑머리가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그동안 아빠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까? 그날 처음 아빠의 새치를 보았다. 돌아서 집으로 걸어가는데 심장이 쿵쿵대고 있었다. 아빠가 나이 들어가고 있음을 처음 실감한 날이었다.
지금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백발이시다. 유전 때문인지 나 역시 흰머리의 공격을 일찍부터 받았다. 염색도 해보았다. 그러나 할 때마다 두피가 따끔거려 그나마 숱 없는 머리털 다 뽑힐까 무서워 지금은 염색을 포기했다. 남편은 아직 검은 머리인데, 더 어린 나는 이제 곧 백발을 코앞에 두고 있다. 남편은 내가 흰머리 투정을 하면,
"강경화 장관 봤잖아. 멋지던데. 왜 걱정을 해?" 란다. 아니 내가 그 급이 되냐고요? 차라리 말을 말자. 하긴 그분 덕에 백발 공포는 덜긴 했다. 정말 멋있었다.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지적인 "포오스"는 백발로 더 강력한 느낌이었으니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하찮은 인간의 힘으로 세월과 맞짱을 뜨겠는가? 나 역시 나의 늙음을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다. 백발이 되는 것이 두렵다기보다 백발에 어울리지 못하게 제대로 나이먹지 못한 맘가짐과 행실을 할까 두렵다. 마음은 청춘이지만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아는 분별이 있어야 할 텐데 싶고. 더 나이 들기 전에 마음에 빚진 이들에게 빚갚음을 해야 할 텐데 싶고.
그렇지만 이미 백발인 부모님께 내 백발은 보이고 싶지 않다. 한국 들어갈 때엔 꼭 염색을 하고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