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할 줄 모르는 애가 이렇게 저렇게 팔다리를 휘저어 헤엄치는 시늉을 한다. 심지어 샤워부스에서 저렇게 배를 깔고 있다니. 어느덧 욕조도 작아지고 아이를 이대로 둬선 안 되겠다 싶었다.
태권도 학원 건물 4층에 수영 학원이 있다.
우린 그냥 수영장이라 불렀는데 어린이 전용 수영 학원이었다. 어두침침한 외관과 달리 안에 들어가니 깨끗하고 모던했다. 엄마가 음악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통유리로 수영 강습 현장을 지켜볼 수 있게 해 놨다. 아이 맡겨 놓고 얘가 잘하고 있나 노심초사하지 않고 앉아서 편하게 참관할 수 있겠다. 안내데스크도 친절했다. 락스를 풀지 않고 해수를 정화해서 쓰며, 아이들 신장에 맞춘 샤워시설과 친환경 연수기를 갖추고, 호텔급 세정제를 구비하는 등 아이들을 세심하게 신경 쓰는 인상이었다. 강습하는 모습도 무난하고 오며 가며 마주치는 강사들도 깍듯. 비용은 주 1회 15만 원. 태권도가 주 5회 17만 원인 걸 감안하면 수강료가 결코 저렴하지 않지만, 등록하고 나니 뿌듯했다. 드디어 푸우가 원하는 수영을 할 수 있게 해 줘서 기뻤다.
'어머님, 이따 수업 마치고 상담드리겠습니다.'
내게 눈꼬리를 내리고 선량하게 웃어 보이던 강사는 시간이 되자 아이를 불렀다.
"김푸우, 들어가자."
조금 이상했다. 같은 사람 맞나? 웃음기 없는 냉정한 얼굴이다.
잠시 후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이 수영장에 나타났다.
같은 반 아이는 아홉 살 형이 유일한데 푸우보다 키가 작다.
강사는 한 명씩 물장구치는 동작을 시켰다.
형과 하이파이브하는 걸 보고, 푸우도 손을 내미니 강사가 거절한다. 뭐지 싶다.
이후 물에 뜨는 스펀지를 몸통에 달고 이동하는 훈련을 했다.
발등을 쭉 펴고 물을 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거였다. 이때 중요한 건 무릎을 구부리지 않아야 한다는 걸 강사 표정을 보고 알았다. 푸우가 무릎을 들 때마다 일그러졌기 때문이다.
유리창 너머로 음성까지 또렷하게 들리진 않았지만 애들 다루는 게 꼭 군대 조교 같았다. 그 강사. 커피는커녕 난 아이 군대 보낸 엄마 심정으로 두 손 꼭 모으고 수업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푸우는 좀처럼 무릎을 펴지 못했다. 아이 발을 잡고 움직이던 강사는 얼굴에 튀는 물을 훔치며 자주 눈을 깜박였는데 한숨을 쉬는 것 같았다.
그는 푸우를 데려다 물 밖에 앉혀놓고 발등을 잡아 사정없이 흔들었다. 푸우 얼굴에 물이 퍽퍽 튀자 아이가 눈을 찌푸린다.
푸우는 다시 혼자 물을 치며 나아가야 했다. 푸우가 시종일관 눈썹을 추켜올리고 있다. 매우 긴장하고 집중할 때 나오는 표정이다. 열심히 발버둥을 쳐보지만 몸이 앞으로 잘 나아가지 않는다. 안쓰럽기만 하다.
수업 말미, 지난번 참관 왔을 때 봤듯, 강사가 아이들에게 물총과 공을 주어 놀도록 했다.
하지만 곧 아홉 살 아이만 부둥켜안고 배영 자세를 잡아줬다. 푸우는 아무렇지 않은 듯 혼자 물총으로 공을 맞추고 있었지만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수업을 마치고
푸우가 말했다. '엄마, 나 하는 거 봤지?' 자랑스러운 얼굴이다. 측은하다. 엄마에게 자랑하려고 얼마나 애썼을지 알기에.
'그래. 잘했어.' 하는 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 강사가 다시 선량한 눈꼬리를 하고 다가와 대뜸 '어머님, 아이가 의지가 없어 보여요.' 한다.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무슨 의지?
'여기 데려 올 때 아이한테 뭐라고 하셨나요?' 책망하듯 묻기에 조금 당황하며
'그냥 물놀이하라고..' 말끝을 흐렸다. 강사는 기다렸다는 듯 내게 과제를 부여했다.
'어머님이 도와주셔야 의지가 생깁니다. 유튜브로 배영, 접영 등 수영 동영상 많이 보여주시고 코어 근육 강화 훈련을 해주세요. 수영장 와서 기본자세 훈련하는 건 시간 낭비하는 겁니다.'
갑작스러운 세계관의 충돌에 무슨 말을 할지 잠시 길을 잃었다.
그는 내가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무릎을 자꾸 접는 건 근육이 흐물거려 그런 겁니다. 코어가 전혀 잡혀 있지 않아요. 반드시 근육을 키워오셔야 합니다.' 덧붙였다.
아니, 7세, 그러니까 만 5세 아이에게 어떤 의지가 필요하단 거지?
그리고 근육이 일주일새 그렇게 훈련한다고 막 잡히는 건가. 유아인데?
강사는 푸우가 물총 놀이할 때 딱 한 번 겨우 웃었다고 했다. 수업 소화하는 게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수영 선수를 만들려는 사람 같았다. 그러나 이제 수영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유아에게 뜨겁게 사랑하라 요구하는 건 좀 지나치지 않은가.
수영장에서 푸우의 잔뜩 긴장한 얼굴이 집중하는 눈썹과 함께 아른거렸다. 잘하고 싶어도 아직 유아라 근육이 잡히지 않은 걸, 그래서 무릎이 자꾸 접히는 걸 큰 하자인 것처럼 얘기하면 어쩌라는 거지. 모르겠다.
푸우가 사라져서 찾아보니 평소 잘 찾지 않는 침대 텐트 안에 들어가 울고 있다.
'엄마, 나 수영 못할 것 같아.'
혹시나 했는데 아까 그 강사 말을 들었던 것이다.
푸우는 오늘 태어나서 세 번째로 수영장에 들어갔다. 코로나로 두 번의 여름을 워터파크나 공공시설 없이 보냈다. 마침내 그토록 원하던 수영을 배우면서 제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선생님이 '의지가 없어 보인다.' 부정적인 코멘트를 날렸으니 '엄마, 나 하는 거 봤어?' 의기양양했던 푸우가 얼마나 엄마에게 창피하고 속상했을까.
'의지가 없어 보인다. ' 그 말자체는 큰 문제가 아닐 런지 모른다.
푸우가 자신감을 잃은 게 문제다. 푸우는 분명 내게 수영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서 수영장에 데려온 거다. 화장실 바닥에 배를 붙이고 있었다. 선생님이 아무리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어도 중간에 뛰쳐나오지 않고, 한 시간 수업을 눈썹 추켜올리고 오롯이 소화했다. 유아가 이보다 더 큰 의지를 어떻게 보이라는 말인가. 도무지 감이 오지 않는다. 강사 눈에는 푸우가 사랑을 먹고 자라는 유아가 아닌, 그냥 수영 못하는 못난이로 밖에 안 보이는 걸까. 이제 막 생겨난, 어린 푸우의 의지를 꺾은 건 강사다.
수영 학원 대표와 통화를 마쳤다. 곧 강사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죄송하다면서도 '아이가 많이 순한 것 같아요.'라며, 마치 이 사건을 본인 태도보다는 아이 성격에서 비롯된 문제인양 말했다.
교육자로서 강사의 열정을 존중한다. 다만, 유아의 특성에 대한 고려나 기질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유아 수업을 맡는 건 무리다. 수영 배우러 갔다가 영혼을 다치게 생겼다. 그러면 평생 수영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당장 푸우가 첫 수업을 잘 마치고도 '수영 못할 것 같다.'라고 한 것처럼.
그러고 보니 그 핫한 어린이 전문 수영 학원에는 유아반을 운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아체육을 전공한 인력이 전혀 없었다. 관련 협회의 생존 수영 지도자 자격증과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 소지자가 전부였다.
푸우야, 엄마가 미안하다. 어젯밤 푸우 재워놓고 마음이 좋지 않아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걱정스럽긴 하지만 강사가 다음 주에 유아에 맞게 수업 운영을 달리 해보겠다 했으니 잘 다독여서 보내기로 했다. 악한 사람은 아니고 모르는 사람이었으니까. 한 번은 기회를 줘야 하는 거니까. 도끼눈을 뜨고 지켜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