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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민트 May 24. 2022

벼락이 떨어졌다 2

벌 받은 거 같아

며칠 전

축구 모임 따라갔다가

낭군이 소통에 어려움 겪는 모습을 목격했다.


'설명해 줄 일이지 왜 다짜고짜 짜증이람.'

내게 한 번도 이러쿵저러쿵 얘기한 적 없지만 그의 일상이 결코 녹록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은 외국인이 길을 물으면 친절하다. 그러나 그가 내 생활 반경에 들어오면 낯빛이 변한다. 이때 외국인은 업무 효율과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해악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니까, 관광객이 아닌 거주자로서 낭군에게 한국은 상냥하지 않다.


나라도 부드러워야겠다고,   

나만은 부드러운 사람이 되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낭군의 서툰 한국어 이해로 말미암아

예기치 않은 난감한 상황에 봉착하자

얼마나 분했던지 그만 불같이 화를 내고 말았다.  


지난 며칠간의 노력이 일순간 물거품으로 변했다. 루나가 며칠 새 휴지조각이 된 것처럼, 나의 가장 조용하고도 아름다운 다짐은 분노의 화염 속에 하릴없이 타버렸다.




화는 자꾸 나보다 약한 존재에게 흐른다.

가깝다고 익숙하다고 편안하다고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 그런 관성에 저항해야 한다. 요추가 중력을 누르듯이. 아래로 떨어지려는 인성을 꼿꼿이 세워야 한다.


정 화낼 거면 푸우와 낭군이 아니라

나보다 강한 존재에게 향해야 한다.


세상 가장 못난이가

자기 가족한테 못하면서 만인에게 친절한 이다. 강자에게 절절매는 것은 울트라 메가 슈퍼 못난이고.


이번에도 아파서 그런 건지

약 기운 때문인지 정확히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작은 일에 분한 마음을 여러 번 다스려야 했다. 그냥 좋지 못한 버릇이 든 거 같다.


성내는 것도, 성을 다스리는 것도 결국 길들임의 문제다. 내가 어떤 방향으로 길을 낼지, 어느 쪽에 밥을 주고 발달시킬지 결정해야 다.




허리가 무너졌다. 혹여 벼락 치듯 성낸 게 내 허리에 꽂힌 거면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이게 낭군의 가슴에, 푸우의 영혼에 닿았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어쨌건 번개처럼 내리친 요통 덕분에 끝 간 데 없이 거만하게 치어들던 내 성질 머리에 제동이 걸린 건 확실하다.


건강하다 자만 말기, 끝까지 들어주기, 여러 번 설명하기, 부드럽게 말하기..


디스크가 기회를 줬으니

이제 그만 화마로 잿더미가 된 자리에서 일어나

가장 조용하고도 아름다운 다짐을 하루하루 돌담 쌓듯

다시 차근차근 올려봐야겠다. 허리 세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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