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서도 늘 일해왔다. 요즘에는 '재택근무'의 대중화로 집안일, 바깥일 개념이 애매해졌지만.
집에 있으면서 논 적이 있었으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집에서 노는 애가...'란 말을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는 거 같았다.
고혈압도 아닌데 오른손으로 뒷목을 쓰다듬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보험, 세금, 계약 건으로 약속 잡고 만나고 서류 제출하고
물품 구매하고 청소하고 요리하는 것도
어느 하나 일 아닌 건 없었다.
'아이 낳고 두 돌, 2년도 키워보지 않고 엄마 소리 들을 생각 마라'는 어느 스님- 어느 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댓글에서 우연히 접한 내용으로 미처 성함까지 챙기지 못했습니다.-의 말씀을 되새기며. 할 수 있는 한 아이를 끝까지 끼고 있었다. 경제 사정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나가기 전까지, 모유 수유는 돌 넘어서까지 하고, 이유식은 가장 좋은 재료로 정성껏 만들어 먹였다. 내 욕구. 성향. 생체 리듬과 상관없이, 세상 가장 약하고 작은 존재를 위해 내 모든 것을 쏟아부은 매우 특별한 시간이었다.
아이 낳고부터 지금까지 낮잠 한 번 푸지게 자본 일이 없다.
아이는 일찍이 통잠을 자서 낮잠 없이 말똥말똥했다.
'시댁 찬스''엄마 찬스'없는 독박 육아라 화장실 다녀오는 것도 여의치 않았다. 어떻게 밥을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했는지 모르겠다. 하여간 다 했다. 잘 챙겨 먹지 못하고, 운동도 하지 못해 근육이 싹 빠졌다. 늘 기운이 없었지만, 출산 사고 후유증으로 조금만 무리했다 싶으면 바로 옆구리가 저렸지만 '닥일'했다.
아이가 뒤집었을 때, 상체를 세우고 앉았을 때, 기어 다니다 걷기 시작하고, 또 뛸 때까지 어느 한순간 눈길을 뗄 수 없었다. 긴장을 놓지 않고 조그만 아이 곁을 엉거주춤 따르다 보니 어느새 어깨가 안쪽으로 말리고 등이 구부정해졌다.
뭐, 근데 내가 일을 안 해?
내가 집에서 놀았다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그 무지몽매함을. 집에서 육아하고 살림하는 사람이 얼마나 바쁜지 모르거나, 알고도 그 노고를 평가절하하는 무식함에 치가 떨린다.
워킹맘에서 '워킹'이 경제 활동만을 함의한다는 게 씁쓸하다.
엄마 지위에 있는 여성의 육아와 살림이 무상이라고 해서 무가치하지 않다.
보육, 청소, 세탁, 조리, 급식, 가정 경영상 필요한 각종 세무, 행정, 총무, 회계 등 업무를 당장 경제적 가치로 환산해보라. 요금을 청구하지 않는 희생이 당연할 뿐 아니라 심지어 비천하다고 보는 시각은 얼마나 후안무치한가.
요리로 치면, 대중식당 요리가 아닌 소수를 위한 맞춤 요리. 교육으로 치면, 학원 단과반이 아닌 소수정예 과외 교습이다. 돈을 받아도 더 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엄마라는 여성은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정에 헌신하는 동안 사회에서 도태되는 피해를 겪는다. 심지어 '집에서 논다'는 말을 듣는 추가 피해도 입는다.
엄마의 무상 노동은 숭고하다. 그 시간 낭비와 희생은 보통 사랑에서 기인한다.
사랑을 이유로 그 모든 수고가 무효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 일의 결과를 누리면서 '일하지 않는다'라고 하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집에서 육아와 가사를 담당하는 엄마의 '워킹'은 워킹이 아니라는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이미 바닥을 찍은 출산율은 지하를 파고 들어갈 것이다.
육아와 가사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형편없는데 누가 애 낳고 살림하려 할까.
이런 상황에서 '임신하라'는 말은 여자에게 진절머리 나게 끔찍한 얘기 아닌가.
'애나 보러 가'
'집에서 애나 봐' 흔히 듣는, 육아의 가치와 엄마의 역할을 심각하게 낮잡아 보는 말이다.
이런 말을 일상적으로 듣다 보면
출산하고 엄마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게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정말
아이 낳아 기르는 게 그렇게 우스운 일인가?
엄마 역할이 막 비하해도 될 만큼 하찮은 일이냔 말이다.
육아는 사람을 키우는 일이다.
가사는 가정을 돌보는 활동이다.
사람이, 가정이 중요하지 않은가?
정녕 그렇게 생각한다면 당신 부모가 당신에게, 그리고 가정에 소홀했던 것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자녀가 '육아와 살림은 천한 일'이라고 인식할 만큼 부모 역할을 잘하지 못한 것이다.
아니면, 그냥 사회적 질환이다. 여성 특히 '애엄마'를 혐오하고 차별하는 집단 병리 현상.
새벽 동트기 전 나가 해 떨어지고 저녁 늦게 들어오는 생활을 몇 달 했다.
사회적 약자인 '애엄마'로 전락한 처지라 임시직이라도 거절할 수 없었다.
그 유명한 경기버스를 기다리며 놓치고 또 기다리고 지하철 타고. 날씨와 교통 체증 등 변수를 포함하여 출퇴근 시간은 왕복 5시간이었다. 수도권에서 동떨어진 섬 동네로 이사하면서 그마저도 곤란해져 그만뒀지만.
난 분명 그때도 일했고
지금도 일하고 있다.
일의 종류와 시간 배분이 달라졌을 뿐
여전히 엄마인 난 돈 벌고 공부하고 육아하고 살림하느라 24시간이 모자라다.
그러니 '워킹맘'은 풀타임 경제 활동하는 여성만을 위한 용어인 것처럼 얘기하는 건 좀 듣기 거슬린다.
집에서 일해도 워킹이니, 돈 받지 않고 가정에서 일하는 엄마를 '전업맘'이라는 분류에 집어넣는 것도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