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궁한 자는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자주 노출된다.
준법하고 싶어도
특유의 불리한 여건으로 인해 불법하라는 압박에 너무나 쉽게 직면한다.
한 점 부끄럽고 싶지 않지만
누구나에게 있는 그 처음을 시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찝찝하고도 깔끔하지 않은
불법과 준법사이를 불안하게 오가며 길을 찾는다
그리고 점점
그토록 선명했던
불법과 준법의 경계가 희미해져 가는 걸 깨닫는다
부와 권세를 갖게 되면
그는 비로소 준법하는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모범시민이 되는 걸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이미 그의 손에는 때가 많이 묻었다
씻는다고 씻기는 것도 아니고
그 길은 그대로 역사로 굳어졌기에
그는 그냥 그렇고 그런
때 묻은 인간이 되어 있으리라
젊은이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부끄럽고 너저분한 기성세대 중 하나
정상적인 시스템에서
도저히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존엄함을 간직한 사회적 존재는
치욕감을 참으며 더러운 물웅덩이를 헤쳐간다
너무 욕하지 말았으면
당신이 존경하는 그가
사실은 새털같이 순결하지 않았다 해서
처음부터 반드시 그가 원해서 오물을 묻힌 건 아닐 수 있으니
초등학교 1학년 학생에게 물어보라
쓰레기를 교실 바닥에 버려도 되나요?
급우를 때리면 되나요?
규칙을 어겨도 될까요?
백이면 백
큰소리로 '아니요' 할 것이다
어려서부터 배우고 아는 그것을
언제 어느 순간부터 거스르며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적어도 멈칫하는 그 순간은 있었을 거라고
그중에는 수없이 밤잠을 설치며
술 담배 혹은 나쁜 약에 의지하며 괴로워하는 이도 있을 거라고
누구나
깨끗한 게 좋다
좋은 거 알지만
지저분한 그릇. 오염된 물. 상한 음식 밖에 주어지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잡을 수밖에 없는
그래도 깨끗하고 싶어서
어떻게든 닦아서 쓸 수밖에 없는 처지가 있다는 걸
그것이 때로는 거짓말 혹은 합리화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닦아서라도 품위를 놓고 싶지 않았던
창피하지만 그것밖에 방법이 없었던 그를
나는 위로하고 싶다
이런 게 얼마나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더러운 선택지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미안합니다
저라도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