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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울민트 Aug 18. 2023

더러운 자들을 위한 위로

미안합니다


빈궁한 자는 불법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자주 노출된다.


준법하고 싶어도

특유의 불리한 여건으로 인해 불법하라는 압박에 너무나 쉽게 직면한다.


한 점 부끄럽고 싶지 않지만

누구나에게 있는 그 처음을 시작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찝찝하고도 깔끔하지 않은

불법과 준법사이를 불안하게 오가며 길을 찾는다


그리고 점점

그토록 선명했던

불법과 준법의 경계가 희미해져 가는 걸 깨닫는다


부와 권세를 갖게 되면

그는 비로소 준법하는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모범시민이 되는 걸까


그랬으면 좋겠는데

이미 그의 손에는 때가 많이 묻었다

씻는다고 씻기는 것도 아니고

그 길은 그대로 역사로 굳어졌기에


그는 그냥 그렇고 그런

때 묻은 인간이 되어 있으리라

젊은이들이 그토록 혐오하는

부끄럽고 너저분한 기성세대 중 하나


정상적인 시스템에서

도저히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없는

존엄함을 간직한 사회적 존재는

치욕감을 참으며 더러운 물웅덩이를 헤쳐간다


너무 욕하지 말았으면

당신이 존경하는 그가

사실은 새털같이 순결하지 않았다 해서

처음부터 반드시 그가 원해서 오물을 묻힌 건 아닐 수 있으니


초등학교 1학년 학생에게 물어보라

쓰레기를 교실 바닥에 버려도 되나요?

급우를 때리면 되나요?

규칙을 어겨도 될까요?


백이면 백

큰소리로 '아니요' 할 것이다

어려서부터 배우고 아는 그것을

언제 어느 순간부터 거스르며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구에게나

적어도 멈칫하는 그 순간은 있었을 거라고

그중에는 수없이 밤잠을 설치며

술 담배 혹은 나쁜 약에 의지하며 괴로워하는 이도 있을 거라고


누구나

깨끗한 게 좋다

좋은 거 알지만

지저분한 그릇. 오염된 물. 상한 음식 밖에 주어지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잡을 수밖에 없는

그래도 깨끗하고 싶어서

어떻게든 닦아서 쓸 수밖에 없는 처지가 있다는 


그것이 때로는 거짓말 혹은 합리화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닦아서라도 품위를 놓고 싶지 않았던

창피하지만 그것밖에 방법이 없었던 그를

나는 위로하고 싶다


이런 게 얼마나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처음부터 더러운 선택지밖에 없었던 것에 대해

미안합니다

저라도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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