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을 결심하기까지 고민한 시간, 무려 3년. 아이 낳았을 때 벌어질 힘든 일들은 생각할수록 늘어났다. 그중 하나이자, 지금도 나를 두렵게 하는 것. 바로 '부부관계'.
주변의 아기 낳은 커플 최소 10쌍 이상이 똑같이 한탄한 이야기다. 아기 낳고 한창 육아하는 약 10년 동안 세상 많이 싸우고 서운함이 폭발한다는 것. 그러다 상당수는 진지하든 욱해서든 이혼까지 생각해봤다는 것.
사례 1. 5살 아들 키우는 7년 차 부부
여자 : 나는 원래 아이 낳고 싶은 생각이 없었어. 오히려 나한테 중요한 건 부부 관계. 사랑하고 사랑받는 부부로 사는 게 중요했거든.
남자 : 애 낳는다고 덜 사랑하는 게 말이 되나? 내가 아기 목욕 다 시키고, 잘할 거니까 걱정 말라고 계속 설득했지.
여자 : 사실이긴 해. 지금까지 나 우리 아들 목욕 한 번도 시킨 적 없어. 그래도 주 양육자는 나야. 내가 육아 휴직하면서 애 키웠고. 복직 이후엔 더 힘들더라. 우리는 퇴근이 이른 편인데도 저녁에 육아까지 하고 나면 둘 다 완전 지쳐. 그럼 대화를 안 해. 특히 내가 정말 서운한 건 잠깐 시간이 생겨도 남편은 혼자 방에 들어가서 게임하거든.
남자 : 그게 내 유일한 휴식이야. 그 시간이라도 없으면 충전이 안 돼. 육아 한창 하는 시기엔 부부관계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어. 이 기간만 지나면 대화할 시간도 생길 거고. 좀 참으면 안 되나.
사례 2. 10대 남매를 키우는 16년 차 부부
여자 : 남편이 해외 영업이라 집에 별로 없었어. 일은 나도 하지만 독박 육아를 할 수밖에 없었지. 너무 힘들어서 애들 학교 들어가기 전엔 심각하게 우울했어. 결혼 잘못했다는 생각도 들고 이혼도 고민했지. 지금은 남편한테 이렇게 말해. 당신은 나 덕에 애들한테 '아빠' 소리 듣고 사는 거라고.
(얼굴 보기 어려운 분이어서 남자 쪽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아이에게 시간을 많이 쏟아야 하는 약 10년. 부부는 육아 스트레스뿐 아니라, 서로에 대한 서운함으로 자주 싸우고 예전과 같은 관계 맺기를 포기하기도 한다.
맞벌이인데도 육아휴직은 주로 여자가 하게 되는 현실, 그러다 보니 주 양육자도 여자가 자연스럽게 맡게 되면서 부부 갈등은 더 커진다.
한쪽이 전업주부면서 육아를 도맡는 사례는 어떨까.
사례 3. 10대 자매를 키우는 20년 차 부부
여자 : 애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가 제일 힘들었어. 독박 육아하다 보니 사람도 잘 못 만나고 애들한테 하루 종일 매여 있으니까 내 생활이 없었거든. 남편은 야근에, 주말 출근에 거의 집에 없었고.
남자 : 남자도 애들 어릴 때가 가장 바쁘게 일하는 시기잖아. 나도 애들 사랑하지만 남자가 육아 휴직하는 건 그 순간 도태된다는 뜻이거든. 선배들도 다 그러더라고. 아빠들은 열심히 돈 벌어다 주는 게 답이라고.
이 경우는 부부의 역할 분리가 명확해서 서로에 대한 '서운함'이 맞벌이 부부만큼 크진 않았다. 서로 힘들어하는 걸 보며 짠해한 적도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다른 고통을 감내한 10여 년을 보낸 뒤 마침내 이들은 부부의 시간을 되찾았다고 했다. 다만 이 집 딸들은 아빠보단 엄마와 훨씬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무난하게 육아기를 보낸 케이스다. 한 명이 육아를 도맡다가 산후우울증이 길어지고, 건강까지 잃고, 부부관계까지 악화되는 케이스도 주변에 종종 있다.
임신 기간부터 부부관계에 적신호가 켜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맘카페에 자주 보이는 글 제목 '남편한테 서운한데, 제가 예민한 건가요?'.
입덧으로 괴로울 때 어떤 음식 좀 사달랬더니 귀찮은 티를 냈다든가, 배는 불러오는데 시댁 행사는 꼬박꼬박 동반 참석하고 싶어 한다든가. 소소하긴 한데 서운한 건 사실이라 맘카페에서라도 털어놓는 이야기들.
사람에 따라 서운함을 느끼는 부분도, 정도도 다르지만 여하튼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부부관계가 전과 완전히 다른 국면에 들어선다는 건 명백하다. 그리고 그 국면은 대체로 '위기 국면'이다.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지는 만큼 서로에 대한 감정의 골도 깊어지기 쉽다. 어떻게든 대화할 시간을 마련하려 애써보지만 녹록지 않다. 별수 없이 어느 정도 타협하고 포기하다 보면 10여 년이 흐른다.
어떤 부부는 육아 동지로서 새로운 관계를 쌓아가지만, 어떤 부부는 관계 회복에 오랜 시간이 걸리거나 실패하기도 한다.
사례 1의 여자처럼 나도 부부관계가 중요한 타입이다. 아이를 낳고 싶어 결혼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사람과 삶을 나누고 오래 함께하면 참 좋겠다 싶어서 결혼했다.
그래서 선배 부부들이 "애 낳으면 부부관계 힘들다"고 말할 때마다 '역시 아이는 안 되겠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 임신을 결심했냐고?
사례 4. 아이 없는 15년 차 부부
남자 : 애 없이 사는 것도 나쁘지 않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 수 있어. 근데 부부관계를 생각하면... 아이 낳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의 공통 관심사를 유지하며 사는 게 생각보다 어려워. (한숨 후)
물론 내 주변엔 아이 없이 연애하듯 즐겁게 사는 6년 차 부부도 있다. 아이 낳을 생각은 여전히 없다.
여러 부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인생사 이래도 힘들고 저래도 힘들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러니 어떤 길을 선택하든 일단 부딪힐 수밖에.
어떤 경우엔 다른 사람의 조언과 경험이 굉장히 큰 참고가 된다. 숙제할 때마다 들춰보던 참고서처럼.
하지만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는 일은 그런 종류의 일 같진 않다.
어떤 선택을 하든 부부마다 힘든 정도도, 이유도 다를 테다. 결국 부부가 '우린 이 쪽이 좀 더 부딪혀볼 만하지 않아?' 라며 뜻을 모으고 선택해야 그나마 덜 지칠 것이다.
내 경우엔 여전히 아기 낳으면 힘들 것이 수백 가지고, 좋을 건 한 손안에 꼽힐까 말까지만 그래도 그 한 손에 꼽히는 좋은 점이 꽤 기대가 된다. 그중 하나는 (모순적이게도) 부부관계.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갈등도 생기고, 연인스런 무드는 멀리멀리 사라지겠지.
하지만 우리가 만난 멋지고 좋은 것들을 아기와 나누면서 우리 관계 역시 지금은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멋지게 무르익지 않을까.
아주 완벽하지 않더라도 아주 실패하진 않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