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낳기도 전에 '실패한 엄마'라는 생각으로 괴로울 때가 있다
임신 전에도, 임신 초기에도, 임신 후기인 지금도 변함없이 고민스러운 것.
나는 일하는 게 좋은데, 야근도 자주 하는 직업인데 아기 낳아도 괜찮을까? 아기 낳기도 전에 이미 '별로인 엄마'인 거 아니야?
2021.02.17(임신 9주 차)
어제 밤에 태호랑 '좋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솔직히 내가 되고 싶은 '엄마'란 어떤 건지 전혀 그려지지 않는다.
왜냐면 나에게 제일 좋은 엄마는 '우리 엄마'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엄마'같은 엄마는 절대 될 수 없다.
오로지 육아에 집중한 엄마 덕을 많이 본 나는 그래서 걱정이 크다. 내가 경험한 풍요로웠던 어린 시절을 내 아이에게 줄 수 없다. 차선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경험해본 적이 없으니 전업주부가 아닌 '워킹맘으로서 좋은 엄마'란 어떻게 될 수 있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제일 좋다고 생각하는 걸 줄 수 없다니... 답답하다.
고민의 원인을 곱씹다보면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마는 나를 가진 뒤 계획했던 것들을 다 접고, 전업주부를 결심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 물어보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이렇게 답한다.
"아이를 기르는 게 다른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아이에게 시간을 쏟고 건강한 음식을 먹이고. 보람있다고 생각해. 전업주부로 산 게 만족스러워."
육아를 1순위로 두고 살아온 엄마의 삶이 늘 즐겁기만 하진 않았을 걸 안다. 하지만 엄마가 당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돌아볼 수 있다는 게 딸로서 참 다행스럽다.
다른 삶은 살아본 적 없으니, 나로선 내가 자라온 이 환경이 만족스럽고 감사하다.
하지만 나는 절대 이런 환경을 내 아이에게 만들어줄 수 없다. 나는 전업주부로 살 생각이 전혀 없다. 게다가 육아를 내 인생의 절대적인 1순위에 올릴 수 있을지조차 자신이 없다.
이런 내가 엄마가 되어도 괜찮을까?
2021.04.21(임신 18주 차)
야근할 때마다 일단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일단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편안하게, 좋은 생각들을 많이 하며 일단이의 뇌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싶은데ㅠㅠ
일단아, 엄마가 야근도 많고 스트레스도 많지만 부디 너는 양수 안에서 헤엄 치면서 평화롭기를.
2021.07.01(임신 28주 차)
7월부터 모성보호 차원에서 업무를 줄이라는 회사 측 제안을 받았다. 제도적으로는 36주부터 2시간 단축근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상황이 심각한 만큼, 당장 반일 근무도 가능하다며 고려해보라고 한다.
고마운 배려인데, 휴직 전까진 정상근무 하고 싶어서 괜히 서운한 기분이 먼저 든다. 배려를 해주면 해주는 대로 서운한 임산부의 복잡한 마음..
일이 많고 스트레스가 몰려올 때면 아기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까 걱정을 하다가도, 막상 일을 손에서 놓으려고 하면 그건 그거대로 서운하다. 어디가 꼬인 건지.
아기가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내가 취해야 할 방향이 분명해질까?
일 욕심은 접고 칼 퇴근 후 육아에 전념하는 삶을 살게 될까?
여전히 일이 중요해서 최대한 아이 양육은 외부로 맡기는 방식을 선택하게 될까?
무엇도 제대로 선택 못한 채, 아이한테도 미안하고 스스로에게도 화를 내며 괴로워하게 될까?
안타깝게도 내 주변엔 일과 육아를 나름 조화롭게 굴리며 만족스러워 하는 워킹맘이 없다. 아이한테 미안해하든, 회사에 미안해하든, 아이를 봐주는 다른 여성(엄마나 시엄마)에게 미안해하든 암튼 늘 미안해 한다.
일과 육아라는 건 어느 정도 갈등 관계일 수밖에 없다. 육아는 날 위해 쓰던 시간을 아이를 위해 쓴다는 거니까.
그런 면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건 어느 정도 타협, 양보, 희생을 동반하는 일이다. 이런 생각을 전혀 안 한 채 부모가 된다면 매우 당황스럽고 괴로울 게 분명하다.
하지만 아빠와 엄마 중 유독 엄마가, 특히 일하는 엄마가 일과 육아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걸 넘어,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건 다른 문제다.
여전히 사회가 타협, 양보, 희생을 '엄마' 쪽에 과하게 기대고 있다는 증거이지 싶다.
그래서 나는 ‘이미 실패한 엄마'라는 자괴감에 스멀스멀 빠져들다가도, '정신 차려! 땅 파지마!'라며 브레이크를 걸려고 노력한다. 사회에 만연한 그 꼼수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아이를 낳는 건 분명 이전의 삶을 어느 정도 포기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게 포기해야 마땅하다는 뜻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엄마아빠 중 한 쪽이 포기하는 게 마땅하다는 뜻도 아니었으면 좋겠다. 어느 정도 포기할지에 따라 부모가 선택할 수 있는 차선과 대책이 다양하면 좋겠다.
1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많은 돈을 들였다.
그런데 왜 아직도 임신과 출산을 위해 개인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거대한 벽처럼 다가올까.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실패한 엄마'라는 자괴감을 가져야 할까.
답답해하다, 자괴감에 괴로워하다, 결국 화가 난다.
일 하는 게 좋은 나도 꽤 괜찮은 엄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