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해보고 정리한 '좋은 태교'와 '별로인 태교'
"태교 하고 있어?"
임신 기간 동안 정말 많이 받은 질문이자, 조금 부담스러운 질문.
'태교'라 하면 거창하게 느껴지는 탓이다.
게다가 연예인 임신 소식 기사엔 늘 '태교에 전념' 이런 부담스러운 표현이 따라붙는다.
(맨날 출근하는 나는 어쩌라고ㅠ)
자꾸 질문을 받다 보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모차르트니, 바흐니 이런 음악이 좋다고 하던데... 뭔가 교육적인 자극을 줘야 할 것 같은데...
태교, 어떻게 하면 되지?
보통 태교를 시작하는 때는 태아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임신 20주 무렵이다. (내이, 달팽이관 등 청각기관 자체는 12주쯤 거의 완성된다고 한다)
안 그래도 이때쯤이면 많은 엄마들이 태동을 느끼기 시작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기에게 말을 걸게 된다. 나도 이 시기에 뱃속에서 뽀글거리는 느낌을 신기해하며, "일단아, 이거 너야?"라고 자꾸 물어봤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정말 다양한 태교가 추천된다.
수학 문제 풀기, 영어 공부하기, 뇌 발달에 좋다는 태교용 책 읽기, 태교를 위해 큐레이팅 된 클래식 음악 등등.
이 중 내가 시도했던 태교는 음악 듣기, 책 읽어주기, 태담하기 이렇게 3가지로 크게 나눠볼 수 있다.
각각의 경우 좋았던 것과 별로였던 것이 있어서 정리해보려 한다.
1. 음악 듣기
어디든 음악 플랫폼에서 '태교에 좋은 음악'을 검색하면 비슷한 곡들이 추천된다. 모차르트, 비발디, 바흐 등 바로크 음악이 가장 많고, 기분이 말랑말랑 해지는 오르골 음악, 연주곡도 많다.
바로크 음악은 엄마 심장 박동수와 비슷해 태교에 좋다길래 나도 몇 차례 시도해 봤다. 나쁘지 않았다. 일단이가 좋아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기본적으로 훌륭한 곡들이니까.
하지만 음악 듣고 싶을 때마다 이 곡들을 듣다 보니 곧 지겨워졌다. (원래 클래식 애호가인 분들은 그렇지 않겠지만.)
결국 며칠 안 되어 내가 듣고 싶은 재즈 음악을 틀었다.
그래, 이거지!
기분이 좋아진 찰나, 일단이가 배를 빵빵 찬다.
그래, 너도 좋구나!
다음날은 듣기만 해도 청량해지는 국내 시티팝을 들었다.
일단이가 또 배를 빵빵 찼다. 특히 태연이 리메이크한 '춘천 가는 기차'는 우리 일단이 원픽이다.
들을 때마다 꿀렁꿀렁 신나게 움직인다.
그 뒤 나는 딱히 태교를 신경 써서 음악을 골라 듣지 않았다. 그때그때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듣는다.
너무 시끄러운 록 음악만 빼고.
2. 책 읽어주기
4살 아들을 키우는 친구가 임신 선물로 책 한 권을 줬다. '하루 5분 아빠 목소리'라는 책이다. 뇌 발달에 도움을 준다는 광고 문구가 아주 유혹적이다.
일단대디의 '하루 5분 아빠 목소리' 미션 첫날. 책을 읽어내려가는 일단대디 목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근데 책 내용이 재미가 없다. 일단대디도 그날 분량을 다 읽은 뒤 고개를 갸웃한다.
"대체 이게 무슨 내용이람?"
다음날, 다시 한번 시도했다. 여전히 이야기가 오묘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잘 이해가 안 간다.
더 읽어야 뒤를 알 수 있도록 일부러 이렇게 쓴 걸까. 흠냐.
결국 우린 일주일도 채우기 전에 이 책을 포기했다.
읽는 아빠가, 듣는 엄마가 재미없는데 어떻게 계속 읽을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이 책을 주면서 친구가 넌지시 던진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이 책 사놓고 반도 못 봤어. 너네한텐 유익했으면 좋겠다."
그래, 그건 명백한 경고이자 태교용 책의 덕목을 알려주는 지표였다.
그 뒤 우리 부부는 아주 쉽고 재밌고 그림도 예쁜 동화책을 골라 일단이에게 읽어주었다.
뇌 발달에 좋다는 그 책은 중고서점에 팔았다.
3. 태담
태담 역시 태아의 뇌 발달을 위해 권장되는 기본적인 태교 중 하나. 태담을 통해 좌우 뇌를 고르게 발달시키고, 정서 발달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고 한다.
태아의 청각이 가장 좋은 시간대가 오후 8~11시이기 때문에 이 시간대 중 편한 시간을 골라 같은 시간에 규칙적으로 태담을 하는 게 기본 가이드다.
애칭을 불러주면서 시작하고, 또박또박 발음을 신경 쓰면 좋다고 한다.
매일 자기 전, 일단대디가 일단이에게 태담을 해보기로 했다. 일명 '일단이 타임'.
배에 가까이 대고, "일단아~" 부르면서 시작한다.
근데 부르고 나면 딱히 할 말이 없다. 정적이 흐른다. 난감한 일단대디가 대화 소재를 짜낸다.
"일단아, 아빠는 오늘 점심엔 회사 근처에서 라멘을 먹었어. 아주 맛있는 집이야.
그리고 저녁엔 집에 와서 엄마랑 두부김치를 먹었어. 돼지고기 넣은 두부김치."
먹는 걸 아주 좋아하는 일단대디의 태담은 늘 그날의 식단을 읊는 걸로 채워졌다.
듣다 못한 내가 "아니~ 뭐 먹었는지만 말하지 말고 좀 다른 말도 해봐!"라 하면,
풀 죽은 일단대디는 "일단아~"라고 부른 뒤 다른 대화 소재를 찾느라 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태담은 일단대디가 그날 뭘 먹었는지 낱낱이 일단이에게 고하는 걸로 돌아갔고,
그나마도 야근을 하거나 피곤한 날은 건너뛰기 일쑤였다.
가능한 날 가능한 시간에 배에 가만히 손을 얹고
"일단아~ 아빠 목소리 오랜만이지? 아빠가 너무 바빴어"라고 시작해서
"오늘 저녁은 김치찌개였어"라고 끝나는 짧은 태담.
어쨌든 우리에겐 이 태담이 최선이자, 최고였던 것 아닐까 싶다.
엄청 거창한 태교 방법을 기대한 분들께는 죄송스럽지만 '최고의 태교'란 단 하나의 정답으로 말해질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다.
부부가 부담 없이 즐겁고 편안하게 할 수 있는 게 가장 중요하다. 모차르트와 바흐를 고집할 필요도 없다.
전문가가 감수한 비싼 책보다 부모도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 훨씬 낫다.
같은 시간대에 매일 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일찌감치 내려두길 권한다.
학교 다닐 때 뼈저리게 느낀 것처럼,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는 교육만큼 학습 효과 떨어지는 것도 없다.
내 생각엔 태교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태교 하세요?"라는 질문이 부담스러운 예비 엄마아빠들, 듣고 싶은 음악을 이어폰 대신 스피커로 들으며 뱃속 아기와 함께 둠칫둠칫 타임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