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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치리 Sep 09. 2023

네가 임신하면 이런 글을 쓰고 싶었어

“언니, 나 임신했다!! 5주차 정도 됐대.”


지금 생각해도 짜릿하네. 너의 임신 소식을 듣는데 진짜 기분이 너무 좋더라! 나를 ‘이모’라고 부를 아이를 떠올리니 미래가 한층 기대돼. 로가 태어나고 좋은 것 중 하나가 살아갈 날이 구체적으로 기대되는 거거든!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 과정에 함께한다는 게 벅차고 설레더라고. (때론 굉장히 막막하고 걱정되지만 일단 이 부분은 생략..)


사실 너가 임신 준비한다고 했을 때부터 이런 글을 써서 주고싶다고 생각했어. 2년 전 로를 임신했을 때 마냥 행복하기만 한 건 아니었거든. 되게 낯설고 두렵고 외로운 날들도 있었어. 그때 나름 성실히 글을 썼던 것도 그 생경한 느낌 때문이었지. 특히 임신 초기엔 내 몸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결국 나 혼자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울하고 외로웠던 것 같아.


여튼 그래서 2년 전 적어둔 일기를 하나씩 꺼내 너에게 편지처럼 띄워볼까해. 우리 어릴 때 나란히 누워 잠들기 전까지 반 친구들 얘기, 그날 본 만화 영화 얘기 수다 떨던 것처럼.



210118 / 3주차

임신테스트기에 두 줄이 떴다. 세상에. 배란기테스트를 하자마자 성공했다. 아직 좀 믿기지 않아. 다음주 토요일에 병원에 가서 확인을 하면, 그때부턴 좀 실감이 나지 않을까. 엄청 좋은 건 아니고 얼떨떨하면서 약간 두렵고 조금은 기대도 된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해야겠지. 최대한 나를 잃지 않는 엄마가 되고 싶다. 방금 이 문장조차 낯설어.... 엄마는 권영옥, 우리 엄마인데 내가 이제 엄마라니!! 하지만 임신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리고 싶은 건 역시 부모님이다. 아직 본격적으로 뭘 찾아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아서 병원 다녀오면 써보려고 ‘280days’라는 앱만 하나 받아뒀다. 임신 기간 동안의 변화를 기록하고 정보도 볼 수 있고 태호와 연동해서 엄마 일기, 아빠 일기를 쓸 수 있는 앱이다. 태호는 나는 이미 보고 있었던 육아웹툰 ‘닥터 앤 닥터’ 정주행을 시작했다. 임산부 비타민도 주문했다. 60정에 3만 7000원이라 한다. 나보단 더 설레하는 것 같다. 책임감도 더 크게 느낀다고 한다. 지금부터 약 2년은 내가 임신과 출산, 초기 육아에 집중해야하니 우리집 가장으로서 나와 아기를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1월 1일쯤 배테기상 배란기였기 때문에 아마 지금 임신2주차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최근 배에 가스가 잘 차고 변비가 좀 심해졌는데 혹시 임신 탓일까. 이것 말고는 아직 몸에 다른 변화는 전혀 없다.


230123 / 5주차

양가 가족에게 이야기했다. 엄마와 시어머니는 우셨다. 감정은 좀 달랐던 것 같다. 하지만 두 분 모두 감격스런 눈물이었다. 엄마가 우니까 나도 눈물이 났다. 나는 임신이 전혀 감격스럽지 않은데 엄마가 우니까 눈물이 났다. 무슨 감정이었을까. 뭔가 엄마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이 느껴져서 그런 것 같다. 예솔이도 울었다. 전화로 이야기하다가 마음이 이상하다며 울었다. 마찬가지일 것 같다. 분명.


230125 / 5주차

의사쌤과 간호사쌤, 가족들한테 축하 받은 주말엔 임신을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는데 출근을 하고 ‘우이혼’을 봤더니 출산과 육아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만 느껴진다. 잃을 건 확실하고 구체적인데 얻을 건 불확실하고 모호하다. 몸도 망가지고 일도 쉬어야 하고 여유도 없을 거고 취미도 못 하게 될 거다. 태호와 나 모두 지치고 예민해지고 지금보다 자주 싸우겠지. 이 모든 것을 잃고 얻는 건 하나. 아이. 하지만 아이가 주는 기쁨이란 건 아직 전혀 상상할 수 없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ㅎㅐ야겠지만 쉽지 않다. 엄마가 기쁘긴 한데 내가 너무 힘들 걸 알아서 걱정이 크다고 했다. 엄마만이 내 앞날을 정확히 아는 것 같다.



다시 보니 임신 초기에 나 꽤 다크했네..

기다렸던 임신인데도 이 정도로 다크하면, 갑작스레 임신하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임신하고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도 알수록 쇼킹했지만 마음에 부는 바람도 못지않게 강풍이었네. 그래도 희망이 없진 않아. 몇 주 뒤 일기를 보니까 좀 바람이 멎어지더라구. 커밍순!


이번주엔 7주차가 된 건가? 나는 그때쯤 맘스홀릭에 가입했던 게 생각난다. 뜬금없이 몰려오는 소통욕구 때문에 카페 가서 글도 막 쓰고 심지어 소띠 아기 예비엄마 오픈카톡방에도 들어갔어. 몇 주만에 나오긴 했지만. 왜 나왔는지는 10주차쯤 풀어줄게. 그때쯤 나왔거든. ㅋㅋ


너의 이야기도 들려줘.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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