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Cindy Yesol Lee Sep 17. 2023

알고보니 벌써 8주차

2023년 9월 17일(8주 2일)

 언니,

 난 지금 집에서 30분 정도 걸어와서 카페에서 글을 쓰는 중이야. 그런데 내 옆 자리에 이로 또래의 애기를 데리고 온 가족들이 두 팀이나 있어.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고 하는데 의외로 내 주변에는 아기 있는 집들이 참 많다. 여기가 수원이라 그런가?


 어제 초음파 확인하러 산부인과에 갔을 때도 임산부들로 가득 차 있어서 예약시간보다 30분 이상 대기했거든.

 사실 엊그제까지는 불안하고 걱정됐어. 아기가 잘 자라고 있는 걸까 심장 소리는 들을 수 있을까 입덧이 별로 없는 것도 안 좋은 것이 아닐까 등

 그런데 초음파로 확인하니 너무나 많이 자라 있었고 머리, 반짝거리는 심장, 팔, 다리도 있는 정말 귀여운 젤리곰이었어. 의사 선생님도 너무 귀엽다며 이 주수에 정면을 보여주는 아기가 드문데 정말 잘 보이고 젤리곰 그 자체라고 하셨지.ㅋㅋ 너무 신기하고 귀엽기도 하고 대견하더라고.

 그래도 아직 내가 엄마라는 실감은 안 나. 뭐랄까 새로운 생명체와의 조우야. 그래서 오성이라고 안 부르고 오성 씨라고 부르고 있어.ㅋㅋ 만날 날이 기대되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해.

 정확한 주수가 8주 차로 진단받으면서 초기 유산에 대한 두려움은 그래도 많이 사라져서 마음이 한결 가볍긴 하지만 앞으로 내 인생에서 오성이 아마도 평생 존재할 텐데 우리가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어.


  나는 부모님께 어떤 자식인가를 곱씹게 돼.

 아침에 기사를 보니 재수생 아들을 가진 한 어머니가 맘카페에 자식 낳지 말라고 자식 걱정만 없으면 걱정이 없겠다고, 학창 시절에 공부 안 해서 속 썩이고 부모가 해주는 일들에 고마운 줄 모르고 자기 방도 안 치운다고 다시 태어나면 딩크족으로 여행 다니며 살겠다고 글을 쓴 게 이슈가 됐더라고.

 댓글들도 공감하는 엄마들이 정말 많았어. 자식이 소중하지만 다음 생애는 자기 인생을 살겠다고. 자기 자신이 너무 불쌍하다고.


 돌이켜보니 나도 내 방 안 치운다고 혼나고 수학여행 때 가져갈 가방 없다고 엄마한테 화내고 부모님이 해주는 일들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어. 서울로 올라와서 자취를 하면서 부모님의 수고에 대한 고마움을 알게 됐지.

 그러고 보면 정말 굳이 자식을 낳아서 고생해서 키울 필요가 있나, 어릴 때 잠깐 귀엽고 나중에는 걱정거리와 짐짝이 되어 평생 자식 걱정하며 다음 생애를 꿈꾸게 되면 어쩌나.


 오늘 엄마랑 전화 통화하면서 나는 효녀냐고 여쭤봤어. 나 때문에 너무 힘들지 않으셨는지 까다로운 자식은 아니었는지. 엄마는 언니랑 나는 다 착실하게 공부해서 대학 잘 가고 취업도 알아서 잘하고 배우자도 잘 찾아서 사이좋게 잘 지내니 이보다 좋을 수 없다고 하셨지. 그리고 자식이 있으니 이렇게 통화도 하고 의지도 되고 존재만으로 얼마나 좋냐고 하셨어.

 다행이야.ㅋㅋ 엄마가 다음생애는 무조건 딩크족이라고 하지 않으셔서. 역시 최고의 효도는 자기 인생 잘 사는 거구나.

 

 나는 자식을 위해 내 인생의 행복을 희생하지 않는 부모가 되는 게 목표야. 자식으로 인한 행복도, 내 연애(물론 남편과ㅋ), 내 성취, 내 건강, 내 인간관계에서 오는 행복도 다 열심히 챙길 거야. 그래서 다음 생애는 딩크족으로 살래가 아니라 다음 생애도 이 가족들과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게.

 난 벌써 내 자유시간이 너무 소중해. 이렇게 혼자 카페에서 글을 쓰는 시간 너무 좋아. 포기하지 않겠다!!


 그리고 언니와 이런 생각들을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아. 동생의 좋은 점이야.ㅎㅎ 언니는 이 시기에 누구랑 이런 얘기를 했는지 궁금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네가 임신하면 이런 글을 쓰고 싶었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