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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꽁치리 Sep 29. 2023

그럼에도 아기 낳길 잘했어

추석 점심을 혼자 맥도날드에서 해결하긴 처음

안녕, 둥둥이 엄마. 10주차쯤 됐나?

예정대로라면 어제 가족 추석 모임 때 봤을텐데.

입덧 하나 없다고는 했지만

전과 똑같은 컨디션일 리는 없을 너를 보고싶었는데.

둥둥이 아빠가 되어가고 있을 제부도 보고 싶고 말이야.

둘째 딸의 임신에 설레하며 조금 붕 뜬 엄마아빠도.


로는 오늘 아침부터 기침이 덜한 게

드디어 감기가 하락세에 접어든 것 같아.

그리고 내가 어제부터 목이 따끔하더니

오늘은 머리도 좀 무겁네.

요며칠 밤마다 로 옆에서 불편하게 잤더니.


모처럼 긴 연휴에 가족 모임도 가고

편찮으신 외삼촌도 뵈려고 일정을 잡아뒀었는데..

이상하리만치

우리 쪽 모임 있을 때마다 로가 아프단 말이지.

야속한 마음이 들 정도라고.


툴툴대는 나를 위해 태호가 자유시간을 줘서

맥도날드 가서 점심 먹고 지금은 카페에 왔어.

추석 당일 낮에 혼자 1955버거세트를 먹는데

피식 웃음이 나더라.

남편도 애도, 명절이니 오라고 닥달하는 가족도 없는

홀로 사는 30대 여자가 된 것 같아서.

좋더라고. 버거는 별로 맛이 없었지만.


아픈 로는 유난히 엄마 껌딱지가 되어 있어.

밤이 오는 게 조금 두려울 정도야.

깨면 무조건 “엄마!!”를 찾고

“아니야”를 연발하며 쉰 목소리로 계속 자지러지면

내 자제력도 약해져.

엊그제는 로를 안고 ”많이 힘들지 우리 아가“ 달래다가

내가 같이 울 뻔 했어.


그러다 내 목을 꼭 끌어안고 잠든 모습을 보면

또 얼마나 안쓰럽고 사랑스러운지.


아침에 눈을 떠 내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웃는 로를 보면

간밤에 힘들었던 게 싹 아무래도 괜찮아지고.

심지어 순간 힘들었던 것마저 미안해지지. 촤암내..


로가 배 속에 있을 때만 해도 아기를 낳으면

안 좋은 게 백가지였고 좋은 건 하나였는데.

그 하나는 아기가 있다는 그 자체여서

그게 어떻게 구체적으로 좋은지 전혀 알 수 없었고.


근데 로가 있는 지금은 그 한 가지의 행복이

구체적으로 차오를 때가 너무 많아서

백 가지 안 좋은 거를 충분히 보상해준다. 신기하게도.


최대한 구체적으로 기록해두려고

아기를 낳으면 다들 그렇게 영상사진을 찍나봐.


여튼 둥둥이가 태어나면 너의 인생이

지금보다 훠어어어어얼씬 다이내믹해질 거야. 매우.

은은한 일상 대신 냉탕과 열탕을 오갈 것이다.. ㅎ


아, 이번 추석 양가 모임은 어땠어?

임밍아웃하고 첫 모임이었을텐데.

난 임신 초기에 울적했어서

축하해준다는 말을 듣는 게 너무 필요했거든.

먼저 엄마가 된 언니들, 친구들이 주변에 있는 것도.

난 자주 보는 사람들 중에 하나도 없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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