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기간, 온종일 뭐하세요?
출근 준비하면서 둘러보던 맘카페에 종종 보이던 질문. 볼 때마다 휴직 이후의 나날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하루 휴가만 내도 행복했는데, 출산까지 약 한 달의 자유시간이 생긴다니! 이 기회에 내 인생 방향마저 새롭게 세팅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물론 착각이다)
잠도 푹 자고 글도 쓰고 아기 태어나면 이번에야말로 직업 정신을 발휘해 홈비디오도 만들어야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나는 온종일 뭐하냐며 심심함을 호소하는 이 질문이, 솔직히 공감이 안 됐다. 전업주부들이나 이런 심심함을 느끼는 것 아닐까?
전업주부인 상태에서 임신기간을 보낸 A. 그녀는 나보다 약 두 달 출산예정일이 빠르다. 칼퇴보단 야근이 일상인 우리 부부는 미처 궁금해하지도 못했던 (정말 몰라서 뭘 질문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무지렁이) 쏠쏠한 정보를 그녀 덕에 알게 되곤 했다.
곧 어디에서 베이비페어가 열린다더라, 베이비페어에 가면 부스 돌면서 손수건만 받아도 남는 장사다, 우리 지역은 임산부에게 택시비 지원해주는데 너네 동네도 알아봐라 등등. 게다가 그녀는 맘카페에 종종 뜨는 '핫딜' 기간도 정말 똑똑하게 활용하며 육아템을 하나둘 모아가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그녀를 '걸어다니는 맘카페'라고 생각하며 신뢰했다. 그녀의 임신 기간이 심심할 거란 생각은 정말 할 수 없는데, 물론 그녀가 심심해서 이런 부지런을 떨었을 수도 있고 부지런을 떠느라 심심할 겨를이 없었을 수도 있다. 뭐든, 전업주부라 심심해할 거란 건 비 전업주부가 잘 몰라서 하는 말인 건 확실하다.
맘카페를 들락거리며 알게 된 한 가지는, 전업주부든 아니든 임신 기간을 이렇게 살뜰하게 보낼 수 있는 건 꽤 운이 좋은 경우라는 거다.
"온종일 뭐하세요?" 라며 심심함을 호소하는 임산부 상당 수는 자궁경부가 짧아져서든, 몸에 다른 이슈가 있어서든 '눕눕' 신세인 경우가 많다. 운동은 당연히 못 하고, 집안 일도 하기 어렵다.
특히 코로나 시국이라 사람 만나는 것도 최대한 피하다보니 임신 기간이 길어질수록 무료함을 넘어 무력함이 쌓여 간다. 그러다 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온종일 뭐하세요?" 라는 질문에는 보통 이런 어려움이 동반되고, 댓글 역시 이런 어려움을 토닥이며 자신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공감어린 격려가 대다수다.
약 9개월이라는 임신 기간 동안 개인이 겪는 증상은 너무나 다양하다. 한 가지 분명한 공통점은, 임신한 몸만이 오롯하게 그 시간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거다. 아기를 만든 건 나 혼자 한 일이 아니지만 아기를 자궁에 품고 키우는 건 나 혼자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호르몬 변화가 몰아치던 임신 1~2개월 때, 나만 배 부르고, 나만 입덧으로 고생하고, 나만 일상과 직장을 전처럼 유지하지 못한다는 서러움에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곤 했다. 그나마 별다른 증상 없이 무탈하게 임신 기간을 보낸 덕에 그 뒤론 그만큼 서러운 적은 없었다.
하지만 도통 끝나지 않는 입덧, 피부 트러블, 소화 불량, 허리 통증, 골반 통증, 손목 통증, 빈혈, 과한 체중 증가(감소), 튼살, 임신성 당뇨, 임신 중독증 등 몸에 벌어지는 전에 없던 문제들과 홀로 싸워야 했다면- 내가 전업주부였든, 직장 생활 중 별 수 없이 휴가를 빨리 내야 했든 맘카페 외엔 나의 외로움을 토로할 곳이 정말 별로 없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온종일 뭐하세요?" 라는 질문엔 심심함보단 비슷한 처지의 다른 이들과 마음을 나누고 싶은 임산부의 외로움이 더 많이 담겨 있는 것 아닐까.
혹시 이 질문을 보고, 팔자 좋은 임산부들이 심심함을 타령한다고 생각할 참이었다면 그건 정말로, 임신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오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안 그래도 여성의 사적인 경험으로 오랜 시간 머물러 있던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들. 생각해보면 임신 전까지 나조차, 먼저 임신한 친구들 이야기를 별로 듣지 못했다. 어쩐지 푼수 같다는 생각에 임신 경험을 마구 말하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임산부들은 맘카페에 모인다. 이곳에서 익명의 임산부들은 낯부끄러운 질문도 좀 더 편히 던지고, 푼수스러운 이야기도 여과 없이 털어 놓는다.
다시 보니 "온종일 뭐하세요?"라는 질문과 밑에 달린 댓글들이 새삼 다정하다. 설령 나는 그간 못했던 육아 용품 준비와 이런저런 하고 싶은 일이 많아 분주할지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