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기억

by luvdname

기억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 수도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어릴 때부터 기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궁금해했다. 우리가 겪은 일들이 모두 내 안에 남아 있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점 나이가 들면서, 그 믿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기억한다고 여겼던 것들이 점점 흐려지고, 그것을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놓쳤던 시간들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떤 기억들은 나를 부르지 않는다. 마치 내가 그때의 그 장소에 있었던 것도, 그 사람과 함께였던 것도, 그 감정을 경험한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 자리는 점점 더 많은 시간 속에서 채워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경험,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일들이 그 빈자리를 메워가고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빈자리가 완전히 채워진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그 공간엔 무엇인가 빠져 있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그건 내가 잃어버린 기억일지도 모른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의 내가 겪은 사건들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살아가면서 쌓은 감정, 생각, 그리고 관계들이 모두 합쳐져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을 만든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 흐름이 나를 이루고 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지금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모든 것의 기초가 바로 기억이다. 그래서 기억이 사라진다는 건, 나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기억이 어느 순간 흐려지거나 사라진다고 해도, 그것이 나를 온전히 없애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새로운 기억이 만들어지고, 나를 이루는 다른 부분들이 자리를 채운다. 그게 슬프기도 하고, 동시에 신기하기도 하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만이 내가 아니며,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들도 나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기억하는 것보다, 우리가 잊은 것이 더 많은 게 아닐까? 우리 삶 속에서 우리가 지나친 순간들, 우리가 마주한 얼굴들, 우리가 경험한 감정들 중에서 아무리 잊어버리려고 해도 기억 속에 자리 잡은 것들이 있다. 그 기억들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왜 그것들을 기억하려고 애쓰는 걸까?


어쩌면, 잃어버린 기억 속에 내가 놓친 중요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다시 찾으려 애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기억은 언제나 나를 따라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의식하지 않아도, 내 안에 남아 있는 기억은 어떤 형태로든 나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이끌어가는 방향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기억을 놓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이해하면서도, 내가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완전히 손을 놓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그 기억들이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 기억들을 떠올리지 않지만, 그 기억들이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사라진 기억 속에서, 나는 여전히 그때의 나를 찾으려 한다. 하지만 더 이상 그것을 찾을 필요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들 속에서, 내가 상실한 것들을 채워가는 것은 결국 나의 삶에서 만들어가는 새로운 순간들이다. 어쩌면 그 빈자리는 그 어떤 기억보다도 더 소중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기억 속에 남지 못한 순간들을 살아간다. 비록 기억을 잃은 자리에 새로운 것들이 채워져 가고 있지만, 그것이 나에게 진정한 의미를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기억들이, 결국 내가 계속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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