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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롬나 Jan 01. 2024

회피전문가

저는 취향이 없어요

취향탐구가

취향이 없는 줄 알았는데 찾았고 이제는 가장 중요해졌다.     




"그들은 날 짓밟았어 하나뿐인 꿈도 빼앗아갔어"     


1996년 음악이 흘러나오고 열정적으로 노래를 따라 부르는 언니가 티비 앞에 앉아 있다. 나와 6살 터울인 언니는 그 당시 HOT에 푹 빠져있었고,테이프,CD,포스터,노트,사진들로 집이 도배 되어 있었다. 

같은 방을 쓰던 언니는 항상 HOT 노래를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틀어놓고 지내서, 나도 모르게 노래와 랩까지 외울 지경이었다.     


언니는 그 중에 강타를 가장 좋아했다.

그 당시 10살이었던 나는 언니가 가장 좋아하고 열광을 하니 나도 안 좋아하면 큰일 나는 것처럼 휩쓸려서 좋아하는 척을 했다.

음악 방송을 매번 챙겨보며 응원하고, 녹화한 테이프도 몇 번이나 돌려보는 언니를 보면서 똑같은 영상을 계속 보는 게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좋아한다는 게 어떤 걸까? 봤던 걸 또 보고 싶은 그런 마음일까? 


어린 마음에 항상 궁금했다.     


친구들과 학교에서 같이 점심을 먹으면 언제나 질색을 하며 야채나 콩을 모두 골라내먹는 친구들을 보면서, 신기했다. 편식하지 않고 모두 잘 먹는 내가 잘못된 건가 항상 생각을 했었다.     


외갓집에 놀러갔다가 태어나서 처음 해산물을 먹게 되었다. 눈으로만 봐도 징그럽고 물컹거려 보였고, 낙지들은 아직 살아있어서 꿈틀거렸다. 어른들은 가장 어린 내가 겁먹은 표정으로 쳐다보는 걸 보며, 먹을 수 있다고 장난스럽게 자꾸 나를 부추겼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용감해 보이고 싶었던 어린 마음에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연한 주황색의 어떤 것을 초장에 찍어서 입에 넣었다.     


“으악...퉤퉤”     


처음 느껴보는 멍게의 비릿하고 진한 향이 너무 버거웠고 토악질을 해대며 거부반응을 일으켰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내 인생 첫 번째로 싫어하는 음식이 되었고, 그동안 야채와 콩을 걸러먹던 친구들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그 뒤로 어딜 가도 사람들이 물으면 못 먹는 음식이 멍게라며 자랑스럽게 말하곤 했다.


뭐든 좋아하고 잘 따르던 내가, 못 먹는 음식 하나가 생겨난 것이 마치 자랑거리라도 생긴 것 마냥 

신기해서 더 많이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평범하게 보내다가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고1 친하게 지내게 된 친구 한 명이 갑자기 미술학원을 같이 다니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미술학원? 

그리고 그 때 같은 반에 친구들이 대거 미술학원에 다녔고, 모두 미대 준비를 했다.

미대를 가면 뭔가 특별해보이고 자유로울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쉽게 미대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꽤 성적이 좋았음에도 미대에 꽂혀서 굳이 어려운 길을 가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유하지도 않았던 집에서 내 결정만 믿고 미술학원을 보내 준 게 참 고마웠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입시 직전 학원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그림을 그렸는데, 그때 회비 금액 단위부터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서, 그 비용을 어렵게 내기 위해 집이 많이 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미안했다.     

물 흐르듯 패션디자인 전공으로 대학교에 들어갔고, 처음에는 성인으로서의 자유로운 생활에 눈을 뜨고 신기해하며 학교생활을 했다. 그러다 3학년이 되고 패션 디자인 전공 심화 과정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는 게 없고 기본부터 너무 힘들고 재미없다는 생각을 했다. 몇날 며칠 밤을 새어가며 과제를 완성해도 월등한 친구들이 많았고, 기초부터 이해를 하지 못한 나는 항상 뒤쳐져만 갔다.     


반면에 교양과목이나 전공 선택 과목에 리포트 제출은 힘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잘했다. 친구들은 글쓰는 게 너무 어려워서 인터넷 자료들을 뺏겨가서 감점이나 낙제를 당하기도 했는데, 나는 제일 쉬운 게 글쓰기였고,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아무리해도 안 되던 전공 심화과정과, 눈감고도 손가락에서 글자가 나오듯이 술술 써지는 다른 과목을 대하는 내 모습에서 양가감정이 느껴지면서 혼란스러웠다.     


그때 좀 더 용기를 가지고 전공을 바꾸거나 다른 생각을 했어야 했는데, 나에게 변화라는 단어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범주의 단어였다.


항상 닥친 현실을 살아내기에 급급했고, 비싼 학비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마음 뒤에 숨어서 어영부영 학교를 졸업했다.      

좋아하는 것보다 힘들고 어려운 것에 눈을 먼저 뜨게 되었고, 나는 뭘 좋아하고 즐겁고 행복한 감정을 찾기보다 남들과 최대한 비슷하고 뒤쳐지지 않기 위해 쫓기듯 살았다.  


내가 직접 보고 느끼는 세상은 아직 찾지도 못했고, 공장에서 찍어내듯 똑같은 공산품의 형태로 살아가는 내가 옳다고 생각 했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게 되고 환경적으로 생활 반경이 넓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인간관계도 넓어지게 되었다.  그때부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취향이란 넓은 반경에 놀라고 여러 취미생활을 알게 되면서 호기심이 점점 커졌던 것 같다.    

 

줄지어져 있는 같은 브랜드의 핸드크림이나 귀여운 피규어가 놓인 회사 책상 모습만 봐도 그 사람의 취향을 알 수 있어서 재밌었고, 다른 사람들의 취향이 점점 궁금해졌다. 

그때부터 나는 끊임없이 막연하게 어떤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에서 현실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게 어떤 것이 있는지 취향을 찾기 시작했다.     


집밥에 길들여져 외식 문화라고는 파스타,피자,치킨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애송이 시절이 있었다. 회사에서 같이 지내던 친구들의 영향으로 여러 음식과 술의 페어링, 제철음식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음식으로 시작되어 다양한 취미생활과 혼자 자립하여 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에 놀라웠다.


이토록 다양한 세상이 있다는 것에 그동안 들여다 볼 여력도 없었고, 딱딱한 고정관념의 틀에 박혀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동안 흘려보내기만 했던 청춘의 시간들이 처음으로 아깝게 느껴졌다.     

책상 정리를 하다 성인이 되면 하고 싶은 것들을, 다이어리에 적어 놓은 메모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내일로 여행 떠나기, 친구들이랑 여행 가기, 밤새도록 영화보기, 서점 여행 떠나보기, 글쓰기, 독서모임 가입하기, 봉사활동 하기, 그림 그리기, 뜨개질 배우기, 프리다이빙 배우기, 서핑 배우기, 혼자 해외여행 가보기, 운동 배우기 등 아주 소박한 경험이 대부분이었지만, 나는 주로 배우거나 경험에 대한 열망의 비중이 크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언젠가는 꼭 해봐야지 생각만 하며 다이어리에 적어만 놨던 기억들이었다.     

도장 깨기처럼 하나씩 지켜 나간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여유로움이 생겨나면서 아무렇지 않게 즐기면서 대부분을 경험해보게 되었다.      

배우고 경험하는 것이 모두가 나에게 다 맞지는 않았다. 그 중 프리다이빙을 하면서 인어처럼 바다 속 아름다운 세상을 마음껏 경험하고 오겠다는 부푼 마음이 있었지만, 나에게 물 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숨 쉬는 것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 결국 과호흡 증세와 경직 증세가 심해져 물속에는 들어가보지도 못했다.      


항상 남의 인생에만 관심을 가지며 내 취향 따위는 전혀 모르던 내가 180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예전의 나라면 프리다이빙은 아마 시작도 못해보고 바로 포기를 하며 두고두고 후회만 하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 내가 이제는 꼭 경험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용기 있는 성격으로 바뀌어 가는 걸 느끼게 되면서, 휘청거리던 일상이 단단해지고 인생의 밀도가 촘촘히 채워지는 기분이 들어서 꽤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점점 좋아하고 흥미로운 것들을 찾고, 직접 경험하고 행복감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내가 대견하게 느껴졌고, 앞으로도 나의 취향들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싶어졌다.      


같이 취향 탐구하러 갈 인원 모집합니다. 


선착순입니다. 서두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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