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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AO May 03. 2024

5. 금사빠의 타이난 사랑

내 마음을 읽으셨나요?

이번 대만 여행을 처음 결심할 때부터 특별한 이유도 없이 막연하게 가장 가보고 싶었던 곳은 바로 타이난이었다.


처음 가본 타이난은 왠지 전혀 낯설지 않았다.

어쩐지 어린 아들 둘과 함께 30대 시절을 잠시 보냈던 중국 남방의 그리운 그곳을 떠오르게 하는 그런 느낌이까?


한여름 날씨를 예상했으나 그저 햇살이 따뜻한 '봄' 자체였던 타이난의 아침.

화려하고 복잡한 도시의 느낌보다는 자연을 느끼고 싶었는데 마침 배를 타고 맹그로브 숲을 구경하는 곳이 있다길래 계획에도 없었고 있는 줄도 몰랐던 '쓰차오 그린터널'을 찾아갔다.


대만 화련에서 온 초등학생과 함께 한 뱃놀이


3월, 숲이 우거지기엔 아직 이른 시기였지만 초록빚 나뭇잎과 수면 위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빛만 보아도 30분간의 뱃놀이는 충분히 낭만적이다.



다음은 어디를 가야 할까 생각하며 선착장을 나오는데 바로 옆 '쓰차오 대'라는 도교사원이 있다.

대만에는 크고 작은 도교사원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데 그만큼 사원을 찾아 기도를 하는 것 대만 사람들의 일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종교는 없지만 대만에 가면 도교사원에 가서 소원을 빌고 오는 나는 고민할 필요 없이 사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온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늘에 닿는다는 나의 '신조'와 함께 향을 피우고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돌아서려는데 다른 사원에서 보지 못한 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사원 쪽에서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께서 작은 차테이블을 놓고 방문객들에게 무료로 차(茶)를 주고 있는 것이다. 다가 손짓 눈빛으로 나를 부다.

차를 마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대화가 잘 통하지 않거나 분위기가 어색할 수도 있어서 잠시 망설지만 흔치 않은 경험이 될 것 같아 할아버지와 둘이 마주 봐야 하는 작고 소박한  '찻집'의 플라스틱 의자 자리를 잡고 다.



찻잔 바닥이 보일 틈이 없이 무한리필로 차를 따라주는 할아버지와 꽤나 오랫동안 대화를 나눴는데 역시나 표준어보다 대만어를 더 많이  내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꽤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서로 답답해하며 웃다가 살짝 민망해진 내가  '못 알아들으면 뭐 어때. 차도 맛있고 여기 너무 예쁘고 그냥 다 좋아'라고 했더니 할아버지가 갑자기 정확한 표준어로 말씀하셨다.


"그래, 사는 것도 마찬가지야. 중요한 건 네 마음의 평안이니 힘든 일이 생기더라도 너무 고민하지 말고 그렇게 '뭐 어때' 하고 다 좋게 생각해. 그럼 곧 괜찮아질 거야."


아~ 공짜 차 얻어 마시다 말고 갑자기 이 무슨 눈물 나는 상황이란 말인가. (이 글을 쓰면서도 그때 그 순간이 떠올라서 또 눈물이 나려고 한다)


뜬금없이 눈앞에 나타난 사원에서 나를 불러 앉혀 차를 주던 할아버지가 작은 일도 크게 걱정하며 늘 불안을 달고 사는 나의 어려움을 알기라도 하듯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그 몇 마디는 정말 위로와 용기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말 한마디와 행동으로 나도 모르게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 어쩌지? 나로 인해 사람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이렇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더 신경 쓰느라 내 마음이 다쳐도 보살펴주지 못했던 나에게 이제부터는 나 스스로 나의 마음을 더 챙겨주고 편하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할아버지 덕분에 알게 되었다.


어느새, 이러려고 타이난 오고 싶었나? 이러려고 이 사원이 여기 있었나? 이러려고 할아버지가 차마시라고 불렀나? 이렇게 혼자 또 억지로 끼워 맞추며 나는 타이난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방법을 배우게 해 준  타이난, 내 마음을 알아주는 그리움의 대상이 하나 더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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