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게 자존심밖에 없을 때 생기는 일

by 솜사탕


한때 나는 나를 향한 지적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훈계일 때도, 조언일 때도, 충고일 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진심으로 날 위한 것이든, 공격하기 위한 것이든 그 의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지적에 대해 쉽게 발끈했고, 보란 듯이 완벽하게 변명할 거리가 있기만을 바랐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속이 풀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동료와의 다툼으로도 이어졌다.

나는 학창 시절에 친구와도 그 흔한 말다툼 한번 없었던 사람인데,

오히려 머리가 굵어지고 나서야 누군가와 다툼이란 걸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일 욕심 많은 사람들끼리 있을 법한 언쟁이라 생각했는데,

점점 누가 더 악착같이 지적하고 더 많이 상처 줄 수 있는지 겨루기라도 하듯 다퉜고, 심지어 그 빈도가 잦아졌다.


상대방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내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하는 마음이 들어 그 타격이 훨씬 컸고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 싫어지기까지 하니 출구 없는 터널 속에 갇힌 것 같아 너덜너덜 괴로웠다.

그 당시에 내가 쓴 글을 우연히 읽게 됐는데 이렇게 적혀있더라.


'가진 게 자존심밖에 없는 것처럼 구는 내 모습이 너무 한심하다'




그리고 언제부턴가 인정을 받기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내가 정한 목표나 뿌듯한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단해, 역시 잘해"와 같은 누군가의 반응을 우선시했다.

내가 얼마나 잘했고, 이렇게 잘한 일이 프로젝트에 혹은 회사에 얼마나 큰 도움이었는지 알기를 원했다.


그때는 그런 자극을 동기 부여라고 착각했다.

인정, 승진, 연봉 등 외부의 보상에 의해 내 동기를 북돋는 것도 할만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지금도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게 전부여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여하튼 적당히란 걸 몰랐던 나는 인정 욕구에 목을 맸고

결국 나는 타인의 반응에 따라 일희일비하게 되면서 불행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내 불행은 보이지 않도록 숨길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저 날개 달고 승승장구할 줄만 알았는데,

그때 나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최악의 해를 겪었음을 고백한다.

자신의 무능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 기분은 느껴본 자만 알 것이다.




이뿐만 이면 다행이지.

보이는 것들에 대한 집착도 있었다.

내가 쓰고 드는 물건들이 곧 나를 의미한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내 머릿속 한편을 차지했다.

버는 족족 쇼핑을 하면서 당장 필요하지 않은 사치품을 사들이며 일시적 도파민을 충족시켰다.


하지만 그때도 매번 찝찝하고 헛헛한 기분을 느끼곤 했는데,

아마 새 옷을 입고 난 후 그 기분 좋은 순간은 하루도 채 유지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내 안의 도파민을 뿜어낼 만한 또 다른 유익한 것들을 찾아내지 못했다.


극한의 욜로의 삶을 동경하거나 추구한 적은 없었지만,

그 정도는 아니어도 지금 당장의 쾌락을 위해 선택하는 삶을 살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를 돋보이게 하고 반짝이게 하는 것들만 찾아다녔으니까.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내 낯빛은 어떠했을지 알만하다.




요즘은 내 안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알량한 자존심이란 놈이 맥을 못 춘다.

자존심만 꽁꽁 챙겨두고 있기엔 가지고 싶은 게 너무 많다.

편안한 마음, 여유, 다정과 생기 뭐 이런 것들.


물론 자존심은 필요하다.

하지만 가진 게 '자존심밖에' 없을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것마저 잃으면 안 되기 때문에 전전긍긍, 사람이 참 치졸하고 못나게 느껴진다.


꼭 챙겨야 할 자존심만 챙겨도 사는 데 아무 지장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겠다.


자, 자존심이 떠난 자리에 다른 것들 들어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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