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그녀가 죽였다>에 대하여

오늘도 그녀들은 죽'었'는데요

by 솜사탕


LG U+의 스튜디오 X+U와 MBC가 공동 제작한 다큐멘터리가 화제다.

여성들이 저지른 유명 강력범죄 사건 다섯 가지를 다룬 시리즈 <그녀가 죽였다>가 그 주인공.


매일 아침 눈뜨면 수많은 그녀들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스토킹 피해자가 끝내 가해자의 손에 목숨을 잃거나,

믿고 만났던 연인이나 남편이 범인이 되는 경우는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그런데 이번 다큐멘터리는 여성 가해자의 사건들만 모아 방영하며 ‘그녀’라는 대명사로 특정한다.


물론 제작 의도는 '성별을 떠나 그저 어떠한 피해자라도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혹은 그 범죄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는 앞으로 좀 더 디테일한 연구가 필요하다'라고 하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는 수많은 남성 범죄들 사이에서 특정 여성의 이름들을 대명사화 해 보이는 것이

정말 '성별을 떠나' 볼 수 있는 일일까.


즉, 문제의 의도와 효과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현실적으로 범죄 통계는 압도적으로 남성 가해자가 많고

언론에 오르는 사건 역시 대다수가 남성의 폭력이다.


그런데 굳이 소수 사례를 여성 범죄로 묶어 집중 조명하여

보는 이들에게 특정 성별을 부각시키는 인상을 주는 이유는 뭘까.

특히 제목처럼 <그녀가 죽였다>라는 표현은 성별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작동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모든 범죄를 혐오한다.

그리고 그 범죄라는 이름 앞에서 남성과 여성은 중요하지 않다.

범죄는 인간이 저지른 행위이고, 그 피해의 무게는 가해자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범죄의 발생 원인,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사회적 제도와 문화적 변화다.


따라서 특정 성별을 강조하는 방식은 오히려 논의의 초점을 흐릴 수 있다.

마치 여성도 범죄를 저지른다는 식의 단순 비교로 귀결되거나

‘성별을 떠나’라는 말은 제작 의도와는 반대로 시청자의 성별 인식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글을 쓰면 꼭 받는 무지한 질문이 있다.

"너 페미니스트지?"


사실 페미니스트의 정확한 정의를 안다면 이런 질문은 나올 수 없다.

페미니즘은 단순히 여성만을 옹호하는 이념이 아니라,

성별에 따른 불평등을 해소하고 모든 사람이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사상이다.

다시 말해, 여성에게만 특별 대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너 페미니스트냐'라고 묻는다면,

이미 그 사람은 페미니즘을 진영 싸움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칼럼니스트 위근우 님의 문장을 빌려 이 글을 마무리한다.


수많은 남성 범죄자는 성별과 무관한 범죄자 일반이지만,

여성 범죄자는 저런 ‘여자’이자 천륜을 어긴 엄마로서 충격과 공포의 대상이 된다.

그들이 끔찍한 악인이란 것과 별개로 고유정과 이은해라는 이름이 수많은 남성을 제치고

악마성의 상징적 기호가 되는 과정은 성별을 떠날 수 없으며

실은 그것이 <그녀가 죽였다>가 만들어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이름 모를 그녀들의 죽음엔 한없이 익숙해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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