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연륜인가요?

by 솜사탕


빼도 박도 못하게 30대 후반을 맞이했다.

나이 듦이 두 손 들고 환영할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싫지만도 않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갈래? 하고 묻는다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할 수 있다.

아니요.




매년 나이는 먹는데 사회적 시선에 따라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조급함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편안하다. 어쩐지 삶에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느낀다.

포기나 체념과 같은 그런 감정과는 분명 다르다.


그렇다고 해서 내게 주어진 상황이 달라진 것도 아니다.

어느 날 눈을 떴는데 로또에 당첨이 됐다거나, 집이 생기고 차가 생겼다거나,

갑자기 재미있고 특별한 영화 같은 이벤트가 펼쳐진 것도 아니다.

그저 똑같은 일상을 살고 있다.


삶을 저 멀리서 조망해 보며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분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을 통해 많이 비우고 내려놓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중요한 것이라고 하면 가령 - 가족, 건강, 매일 밤 자기 전 마음에 걸리는 게 없는 일상 같은 것들.


옷 가게를 방불케 하던 옷장을 비우고 단정하게 입을 옷들만 남겨두었다.

거울 앞에서 보내는 시간을 줄이고 깨끗한 피부와 머리숱 지키는 정도에만 신경 쓴다.

생각이 많아지려고 하면 홀라당 넘어가지 않고 몸을 움직여 생각에서 벗어난다.

몸을 혹사시키지 않고 잘 먹고 또 먹은 만큼 움직이며 건강한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사람과 관계에 대해 집착하고 상처받지 않는다.




주변에 사람이 많은 편은 아니다.

아주 좁고 깊은 관계만 유지하고 있다.

두루두루 사람 사귀는 것에 능한 것도 아니고 큰 관심도 없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어 했고, 인정받고 싶어 했다.

작은 규모의 회사나 좁디좁은 조직에서도, 심지어 하루살이 식으로 잠시 마주하고 안녕할 모든 사람들이

나를 다 잘 봐주고 좋아해 주기를 바랐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그랬으면 했다.


그래서 가능하면 늘 친절했는데, 문제는 상대방도 그러기를 바랐다는 것이다.

내가 너한테 잘해줬으니 너도 나한테 잘해줘야 해 하는 기대와 보상 심리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모두가 내 기대를 충족시킬 리 없었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보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았다.


그 덕분에 삶 자체가 너무 피로했다.


그런데 이제 그 피로감조차 귀찮아진 걸까.

아니면 오로지 나의 평안을 우선시 하자는 극도의 이기주의가 발동된 걸까.

뭐가 되었든 사람과 관계에 대한 집착과, 잘 보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나를 달가워하지 않고 싫어해도 어쩔 수가 없다.

날 잘 봐달라고 구걸할 일이 아니다.

구걸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너무 어리석었던 것 같은 게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한다. 마찬가지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한다.

그런데 좋아하는 이유는 고민하지 않으면서,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일지 고민하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나 자신에게 물었는데, 명쾌하게 답을 못한 질문이 있다.


"왜 다 너를 좋아해야 해?"




그렇다고 해서 막 살겠다는 건 아니고

적당히 친절하고, 적당히 선을 지키면서, 늘 그래왔듯 피해 주지 않고 살지만

누군가 나에게 똑같은 대우를 해주지 않아도 서운해하지 않는 것.

이제 이게 가능해진 것 같다.


험담이 일상이고

입만 열면 거짓말인 사람

본인이 취할 이득에만 혈안이 되어 행동을 달리 하고

사람 가리면서까지 줄 서는 게 사회생활의 전부인 줄 아는 사람

예의를 못 배웠나 싶을 만큼 버르장머리는 없고

기본적인 매너와 에티켓도 없는 사람

아무 이유 없이 퉁명스럽고

내가 그냥 싫은 사람까지.


별별 사람들이 다 있지만

나의 우선순위에 들어올 수준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한다.


그리고 누가 그러더라.

나도 누군가한테는 미친 X일 거라고 -


아무튼 이게 나이 듦으로 인한 변화이자 연륜이라면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내 것이 아닌데 굳이 애써서 꼭 쥐고 있던 걸 툭 하고 놓아버린 그런 홀가분함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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