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엔 갑자기 왼쪽 아래에 사랑니가 나는 것처럼 아팠다. 확인해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니가 이미 자리 잡고 있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삐뚤어지게 난 것처럼 보였다. 내 사랑니는 다 비스듬히 누워서 나서 그런지 사랑니 관리를 잘 못 해주고 있다. 그래서 가끔 거울 앞에서 입을 크게 벌려 입 속을 보면 약간 썩어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꽤 오래전에 여러 치과에 한 번씩 간 적이 있는데, 어떤 치과에서는 사랑니를 꼭 뽑아야 한다고 하고 다른 치과에서는 굳이 뽑을 필요가 없다고 해서 여태 그냥 두고 있다. 그냥 뽑을까 생각도 해봤지만, 군대에 있을 때 후임들이 사랑니를 뽑고 얼굴 한쪽이 부은 채로 낑낑대며 죽 한 수저씩 겨우겨우 먹는 모습이 자꾸만 생각나서 도저히 뽑겠다는 용기가 서질 않았다.
나는 고등학생 때 사랑니가 처음 나기 시작했는데, 내 또래 친구들에 비해 사랑니가 아프지 않게 난 편이었던 것 같다. 사랑니가 나보다 빨리 난 친구들은 사랑니 때문에 며칠을 고생하다 결국 이를 뽑거나 더 이상 아프지 않을 때까지 꾸역꾸역 참곤 했으니까. 친구들이 사랑니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을 보다가, 나도 어금니 안쪽이 약간 간질간질하길래 양치하면서 칫솔로 확인해봤더니 신기하게 사랑니가 자리 잡고 있었다. 새로 사랑니가 나는 게 첫사랑을 앓듯이 아프다고 해서 사랑니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더라. 정말 그런가 싶기도 한 게 나는 그 당시에 마음에 두고 있는 여학우가 있었지만 그 친구에 대한 마음이 그렇게 크지 않았었고, 그래서 사랑니가 날 때에도 딱 그만큼 간질간질하다가 말았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때 첫 사랑니가 난 이후로 한참 잠잠하다가 대학생이 되고서야 두 번째 사랑니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사랑니가 나는 기간이 내 주변 친구들에 비하면 꽤 길었던 것 같다. 친구들은 사랑니가 한 번 나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사랑니가 금방 자라는 모습을 많이 봤었는데, 나는 전혀 달랐다. 첫 사랑니가 자리 잡고 나서 몇 년이 지난 후에 다음 사랑니가 나곤 했고, 첫 사랑니는 그저 그랬는데 다음 사랑니부터는 점점 아파지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나는 매 사랑니가 나기 바로 직전의 어느 때부터, 사랑니가 날 때 아픈 만큼 누군가를 좋아하고 아꼈던 것 같다. 두 번째 사랑니가 났을 때에도 그랬다. 그 때 쯤에 오랫동안 짝사랑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사랑니가 날 때랑 얼추 시기가 맞았던 것 같은 기억이 있다. 사랑니가 거의 다 자라서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면, 신기하게 그 사람을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는 날이 왔다.
가끔은 한 살이라도 더 어렸을 때 치열하게 사랑해볼걸, 하는 생각도 한다. 정말 사랑니를 뽑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아프게, 끙끙 앓듯이 사랑해봤어야 했다. 사랑니가 날 때마다 그냥 치과에 가서 뽑았으면 며칠 아프고 말았을 텐데, 겁이 많기도 했고 생각보다 견딜만한 정도라고 자기최면을 걸면서 미련하게 꾸역꾸역 참고 결국에 뽑지 않았던 게 후회된다. 사랑니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정도, 딱 그 정도로만 늘 사람을 좋아해 왔던 것 같아서 아쉽다. 적당히 신경 쓰고 적당히 참을만한 정도로만 사람을 좋아해 왔던 턱에 나는 여전히 사랑을 대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마지막 사랑니까지 다 자라버린 나는 어쩌면 사랑의 아픔이 뭔지 배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차라리 치과에서 사랑니를 빼라고 했을 때 바로 뺐으면 사랑의 아픔이 뭔지 조금은 알았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도 든다. 여전히 사랑니 하나 빼려는 용기조차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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