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일기 #2>
'뉴욕'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세계 경제·문화의 중심지, 브로드웨이 뮤지컬, 그리고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멋쟁이 뉴요커들~ 자연히 뉴욕으로 향하는 내 기대감도 한껏 부풀어올랐다. 인천을 출발하여 14시간의 비행 끝에 JFK 공항, 뉴욕의 대표적인 국제공항에 마침내 도착했다. 그러나 그곳의 첫인상은 내 기대만큼 세련되지도 깨끗하지도 않았다. 떠나온 인천공항이 얼마나 신세계인지 절로 비교가 될 정도로. 내가 상상하던, 눈만 마주치면 미소 날려줄 거라 생각했던 친절한 뉴요커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다들 바쁘게 자기 가방을 챙기고서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쌩 하니 지나갔다. 나는 홀로 유모차를 끌고 이민가방 3개를 끌어내리며 카터에 옮기고서 조심조심 끌고 나가는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간혹 눈에 띄는, 짐을 대신 운반해 주는 조끼 입은 흑인들에겐 어떻게 도움을 요청하는지 몰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겨우겨우 입국 심사를 마치고 세관을 통과하고 나니 저 멀리 그리운 남편의 얼굴이 보였다.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나의 함박미소는 저리 가라, 8개월 된 딸아이가 아빠의 얼굴을 보더니 까르르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아빠와 딸은 그렇게 한참을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내이자 엄마는 그 옆에서 한참을 행복해했다.
공항 밖을 빠져나오니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처음 만나는 뉴욕의 어슴푸레한 모습은 다소 황량하게 보였다. 이윽고 차는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과연 남편이 마련한 우리의 새 보금자리는 어떠한 곳일까. 까만 어둠에 빛이 들어오니 부엌에서 사사사삭 바퀴벌레가 흩어져 갔고, 부풀었던 내 기대도 사사사삭 흩어져 갔다... 원룸 아파트의 방과 마루에는 얼마나 깨끗할지 알 수 없는 카펫이 깔려 있었고, 남편이 사다 놓은 침침한 스탠드 불빛이 유일한 빛이었다. 실망도 컸지만, 우리가 함께라는 사실에 더 위안하며, 그렇게 뉴욕에서의 첫날이 저물어갔다.
뉴욕 시티에는 자치구 개념의 5개 보로(borough)인 맨해튼, 브루클린, 브롱스, 퀸즈, 스태이튼 아일랜드가 속해 있는데, 우리가 처음 정착한 동네는 그중 퀸즈(Queens)의 플러싱(Flushing)이란 곳이었다. 예전에는 한국 사람들이 더 많이 살았다던데 이제 중국 사람들이 건물과 집들을 사들이면서 점점 더 중국 간판들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그럼에도 LA 한인타운보다 더 한국 같다는 이곳은 걸어서 모든 볼일을 해결할 정도로 한인 상가들이 밀집되어 있었고, 영어 못해도 살 수 있는, 미국 속의 한국이라 하여 흔히들 '후라동'이라고 부르는 동네이다.
남편은 아직 운전을 하지 못하는 나를 배려하여 이곳으로 집을 얻었다 했다. 남편이 직장을 나간 사이 나는 유모차를 끌고 동네 구경을 나섰다. 한국 마트며 한국 서점, 한국 정육점, 한국 철물점 등등 도보로 다닐 수 있는 거리 안에 다양한 한국 가게들이 있었다. 편리했지만, 내가 상상했던, 한가롭고 평화스러운 미국의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다. 한국보다 뒤떨어진, 낙후된 동네에 사는 느낌이었다. 아파트 근처의 미국 마트에 처음으로 가 보았다. 몇 가지 식료품을 집어 들고 영어로 어떻게 말할까 조마조마하며 계산대에 섰다.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가격은 계산대에 저절로 찍혀 있었고, 동전 계산이 안 되어 무조건 내민 내 지폐를 받아 든 히스패닉 계산원은 나와 눈길 한 번 마주치지 않고 영수증과 동전을 거슬러 줬다. 썰렁한 마음 안고서 나는 쓸쓸히 마트를 빠져나왔다.
낯선 곳에 대한 궁금증도 수그러드니 외로움이 밀려왔다. "어디에서 오셨어요?" 하며 나에게 말 걸어 주는 사람도 없었다. 말벗에 굶주린 나는 놀이터에서 아이와 함께 있는 어느 엄마를 주시했다. 중국 사람 같기도 해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귀를 쫑긋 세우고 있다가 아이에게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는 용케 말을 걸어 보았다. "애기가 몇 개월이에요?" 마침 그 아이도 우리 딸과 비슷한 또래였다. 이민 와서 이곳에 오래 살았다는 그녀는, 수더분해 보였다. 너무 반가웠다. 동네에서 만난 첫 번째 한국 엄마였다.
이대로 후라동에만 머물 수 없다! 어느 햇살 좋은 주말, 우리 가족은 맨해튼으로 고고~ 센트럴 파크를 목표로 차를 끌고 출발, 주차비를 아끼려고 조금 떨어진 곳에 파킹을 했다. 처음 만난 맨해튼은 그리 깨끗한 느낌은 아니었지만, 고풍스럽게 서 있는 건물들이 제각각 멋스러워 보였다. 마침내 도착한 센트럴 파크, 영화 속에 나왔던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사람들이 잔디밭에서 선탠을 하거나 피크닉을 즐기고 운동을 하는 등 자유롭게 공원을 즐기고 있었다. 아, 내가 정말 뉴욕에 왔구나. 나는 비로소 실감하며 만족했다. 공원을 거닐면서 멋진 배경으로 사진도 찍으며 내 기대를 한껏 충족시키면서.
뉴욕에 대한 환상으로 울고 웃던 그때는 잘 몰랐다. 높은 물가 속에서 이민자들이 치열하게 살아내기 위해 몸부림을 치기에 더 각박할 수 있고, 모국어가 저마다 다른 만큼 의사소통의 장벽이 높기에 더 친절하지 않을 수 있으며, 온갖 사람과 문화가 섞이기에 더 깨끗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것이 다양한 인종의 용광로인 미국이며 뉴욕인 것을.
그래도 가끔은 이렇게 바람을 쐬야 한다. 그래도 뉴욕인 것을. 암, 그렇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