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의 맛
오늘도
7시 40분에는 일어나야 했는데,
밍기적 밍기적
부비부비.
아들과 나는
8시에 눈을 뜨고
10분을 더 부비적거리다
급—해진다.
나의 초조함에
“빨.리. 서.둘.러!”
15분 만에
각자의 준비를 후다닥 마친다.
아침은 무조건 먹고 등원해야 하는
나의 여섯 살 아들은
그 와중에
딸기 다섯 알이라도 입에 넣으며
옷을 구겨 입는다. ㅎㅎ
8시 28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이미 유치원 차량이
와 있을 거라는 확신과 동시에
1층이 되자마자
나는 외친다.
“뛰어!”
이른둥이로 태어나서인지,
이미 21kg을 훌쩍 넘어서인지,
아침에 몸이 덜 풀려서인지
이 아이는
전혀 뛰지 않고
버거워만 한다.
속이 답답해지고
괜히 내가 지각으로 혼날까 봐
두렵고, 민망해진다.
그 와중에 아이는 말한다.
“엄마, 손잡고 가야지.”
“지금은 손잡는 것보다
빨리 가는 게 더 중요해.”
평소엔
감정을 공감해주는 육아를 한다고 믿지만
급박한 순간에 튀어나온
대문자 T 같은 말은
대문자 F인 아들에게
치명적인 칼이 된다.
아이는 운다.
엉엉. 훌쩍훌쩍.
그런 그를 기다리며
나는 오히려
쾌감을 느낀다.
아싸,
좌절의 울음이다.
좌절 감내력이 유독 낮은 내 아들은
좌절을 통해
성장해야만 한다고
나는 믿는다.
자신의 욕구를 잠시 포기하고
현실에 몸을 구겨 맞출 때,
그 괴로움에 우는 그 순간이
아이의 좌절 근력이
자라고 있는 시간이라고.
그래서 나는
그의 좌절과 울음을
환영한다.
“울어도 되는데,
그래도 뛰어야 돼.”
나는
잔인함을
한 번 더 건넨다.
그렇게 차에 탄 아이는
눈물을 훔치며
창문으로 빼꼼
짜증난 얼굴을 내민다.
나는
괜히 더 크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힘들어도
엄마는 네 옆에 있다는 걸,
울면서 가도
혼자는 아니라는 걸,
오늘의 이 좌절이
너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너를 조금 더 단단하게
안아주고 있다는 걸
언젠가는
알게 되길 바라면서
뒤돌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