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공부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기 싫다

(지금도 말하고 있지만)

by 날 것 그대로의 나


족저근막염 때문에 정형외과에 갔다.

이사 오고 나서 처음 가는 병원이라 초진이었고,

그래서인지 의사 선생님은 이것저것을 많이 물어보셨다.


어디가 아픈지 말고도

요즘 뭘 하며 지내는지,

일은 하는지,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같은 것들.


자상하다는 말이 맞을 텐데

그날의 나는 자꾸만 그 질문들이 조금 버거웠다.


대충 얼버무리며 넘기려 했는데

질문은 생각보다 쉽게 끝나지 않았다.

결국 대학원을 다니고 있고,

일도 조금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때였다.

그럼 어떤 분야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아,

여기구나.

내가 제일 싫어하는 순간.


목소리가 괜히 한 톤 낮아져서

“심리상담이요.” 하고 말했다.


그러자 거의 반사처럼 돌아온 말.

“아이쿠, 그럼 제가 말 조심해야겠네요.”


이 말은 늘 비슷한 얼굴로 들려온다.

조심하겠다는 말인데,

사실은 선을 긋는 말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심리상담 일이나 공부를 한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종종 나를 조금 다른 자리에 올려놓는다.

괜히 속을 들여다보일 것 같고,

괜히 평가당할 것 같고,

괜히 완벽해야 할 것 같은 자리.


그래서인지

“저 어떤 사람 같아요?” 같은 질문이나

“쟤 좀 이상하지 않아요?” 같은 장난 섞인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아마도 우리는

미디어 속 상담가의 이미지에 너무 익숙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말 몇 마디로 사람을 꿰뚫고,

모든 감정을 이해하고,

언제나 현명한 선택을 하는 사람.


그런 이미지 속에서

상담가는 실수하면 안 되는 사람이 되고,

흔들리면 안 되는 사람이 된다.


더군다나 가까운 가족들조차

내가 내 감정과 욕구는 잠시 미뤄두고

그들의 감정만 더 이해하고 공감해야 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할 때도 있다.


그래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

“남 조언하던 사람이 왜 저래?”

“왜 자기는 완벽하지 않아?”

같은 말이 쉽게 나온다.


직업이 만든 이미지가

어느 순간 그 사람 전체를 덮어버리는 느낌.


사실 그건

정체성이라기보다는

타인이 보고 싶어 하는 어떤 역할에 가까운데 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오해가 무서워서

나는 내가 무엇을 공부하는지 말하기 싫어졌다.


말하면 설명해야 할 것 같고,

설명하면 기대를 감당해야 할 것 같고,

그 기대는 결국

나를 조금 더 숨 막히게 만들 것 같아서.


나는 알고 있으니까.

내가 얼마나 부족한 사람인지.

얼마나 착하지 않은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수용받아도 된다는 것을.


오히려 공부를 하면서

부족함이 꼭 나쁜 건 아니라는 걸 배웠고,

착함이 때로는 자신을 자기답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상담은

사람을 분석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그건 아주 처음에 필요한 작업일 뿐이고,

그다음에는

함께 머무는 시간과

쉽게 이름 붙일 수 없는 과정들이 남는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상담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조금은 망설이며 꺼낸다.


말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 말이 나를 너무 단순하게 만들어버릴까 봐.


지금도 말하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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