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비자금 출처
취학 전이던 어린 시절, 나는 종종 집 앞에 문구점에 가서 종이인형을 사 와 아빠의 가게로 달려갔다. 종이인형을 내밀면, 아빠는 내 종이인형을 잘라주셨는데 늘 인형의 손이 반절이상 잘려나가 있었다. 인형의 손이 반절 이상 잘려나갔을 때, 너무나 속상했지만 아빠께 말씀드리지 않았다. 왜인지는 몰라도 말씀드리면 상처받으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엄마 아빠의 '실수로 태어난 아이'이다.
그 시절은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슬로건이 있던 시절이었다. 마침 우리 집은 연년생으로 언니, 오빠가 태어나 아빠와 조부모님들께서 원하시던 아들도 떡 하니 있고, 국가 슬로건도 잘 지키고 있었다. 한마디로 더는 아이가 필요 없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빠께서 건강을 위해 새벽에 등산을 하기 시작하셨고, 그때 '실수로' 내가 생겨났다.
당시 기준으로 나의 부모님은 아기 낳기에 연세가 많으셨다. 지금 기준으로는 엄마는 아이 낳기에 늦은 나이는 아니고, 아빠는 지금으로 봐도 약간 늦은 감이, 아니 어떤 사람들은 많이 늦었다고 말할 수도 있는 나이였다.
그래서 아빠와 조부모님들께서는 노산이라 동네도 창피하고, 위험하기도 하니 나를 지우라고 하셨다.
하지만 엄마께서 '절대 그럴 수 없다'라고 완강하게 우기셔서 내가 태어났다.
아빠께서 위험하다고 한 데에는 노산인 이유 말고도 다른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어느 날 엄마는 몸이 많이 아팠고, 중병에 걸리신 줄 알았다. 그래서 병원에 갔는데 병원에서는 엑스레이를 찍자고 했다. 찍고 보니 엄마는 임신 중이셨다. 임신 중에 엑스레이를 찍으면 기형아가 태어날 확률이 높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고, 그런 이유로 아빠께서는 아이를 지우자고 한 것이다.
그때 엄마는 아빠 몰래 비자금을 챙겨 두셨다. 나는 이 비자금의 출처를 알게 된 후, 참 마음이 아팠는데 그 출처는 '엄마의 꿈'이었다. 당시 엄마는 평소 해보고 싶으셨던 옷가게를 여셨고, 동대문에 옷을 떼러 다니시며 힘들기도 했지만 즐거워하셨다. 엄마가 동대문에서 떼온 옷을 입고 있으면 손님들은 꼭 그 옷만 콕 집어서 '그 옷 벗어서 나한테 팔라'고 해서 입던 옷을 벗어서 파시곤 하셨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생겨 옷가게 시작한 지 1~2년 만에 접으셔야 했고, 그때 입덧을 위한 비자금을 챙겨 두셨던 것이다. 아빠가 아이를 지우자고 했으니 행여 입덧을 해도 먹을 것을 사주지 않을까 봐서 말이다.
젊은 엄마가 나를 위해 모두의 반대에 맞서고, 꿈을 접고, 비자금을 챙겨두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엄마의 꿈까지 접게 하고 태어날 만큼 나는 가치가 있었을까?
엄마에게 그만큼의 행복을 가져다줬을까?
엄마의 걱정과는 다르게 아빠께서는 엄마가 먹고 싶다고 하신 것들을 잘 사주셨다. 특히 엄마는 배가 많이 당기셨는데, 배가 먹고 싶다고 하시면 아빠께서는 궤짝으로 배를 시켜주셨다. 그렇게 나는 무사히 잘 태어날 수 있었다.
아직 아기이던 시절, 나는 엄마 목을 손톱으로 긁어서 자주 상처를 냈다. 그래서 아빠는 내 손톱을 깎으려고 마음을 먹으셨는데, 아직 아기라서 손톱이 무척 연했다. 그래서 행여나 내 손이 다칠까 봐 조심조심하면서 깎으셨다. 그런 걸 보면 날 지우라고는 하셨지만 막상 태어난 나를 미워하시진 않은 것 같다.
종이인형의 손이 잘렸을 때, 인형손이 반절이나 잘려 나간 게 매우 속상하기만 할 뿐 아빠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빠가 눈이 잘 안 보여서 그러셨을 거란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리다. 아빠 연세로 추정해 보면 그때쯤 노안이 있으셨을 것도 같다. 건강관리를 잘하셔서(플러스 유전적 요인) 아빠는 머리숱도 풍성하고, 근육도 많아서 젊어 보이셨지만, 그때의 아빠는 육아하기에 연세도 많으시고, 가장으로서 가계도 이끌어야 하셨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드셨을까
'나는 살아 있기만 해도 누군가의 꿈이야'
스물몇 살 적에 읽었던 일본소설 속에 나오는 구절이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진 '나 역시 그저 살아있기만 해도 그분들의 꿈'이다.
엄마의 꿈을 접게 하고 새로이 엄마의 꿈이 된 나.
살아있기만 해도 부모님의 꿈인 나.
때로 힘들 때도 있지만,
꿈답게, 오늘도 힘내서 열심히 잘 살아봐야겠다.
못나고 부족하고 한없이 죄송하지만. 그래도 난 아직 그분들의 꿈이니까.
행여 내가 상상하고 싶지 않은 그날이 와 누군가의 꿈으로서의 자격이 사라진데도 열심히 살아가야겠다. 왜냐하면 '난 누군가의 꿈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