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브라더와 시스터
룩소르에 도착하자마자 날 반겨준 건
무스타파와 그의 친구인 무함마드였다.
말해두지만 무함마드가 정말 많았다...
우리나라 홍길동은 흔하지 않아도
아랍의 무함마드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정말 많을 듯.
밤늦게 도착하는 일정이었지만
심지어 카이로에서 룩소르까지의 비행기가
한 시간 연착되었기 때문에 더 늦은 밤에 도착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너무나 미안했는데,
오히려 환하게 웃어주고
별일 아니라고 말해주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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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는 밤에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으로
해가 지자 정말이지 온 사람들이
다 나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차를 타고 달리는 동안
한국의 학원 봉고차 같은 차들에
중학생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우르르 타고 있는 광경을 많이 보았고,
나중에 물어보니 스쿨버스라고 했다.
이집트 답게,
카이로보다는 한적한 룩소르라 해도
오토바이들은 가득했다.
고등학생들처럼 보이는 남자아이들도
저마다 오토바이에 무리 지어 탔는데
무함마드와 무스타파가 아랍어로
자기들끼리 뭐라고 길게 이야기했다.
이 말도 나중에 물어보니
"어린애들은 운전을 너무 험하게 해."
라는 말이었다고 한다.(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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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도착하고 나서는
나를 차에 태워주고 짐을 옮겨준
엄청 큰 무함마드 말고
어쩐지 무스타파와 닮은 무함마드가
어디선가 또 나타나(??)
나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식량(?),
간식, 음료수, 생필품을 주고 갔다.
너무 고마운데 누구지?
라고 생각했는데,
둘은 형제라고 했다.
친구 아니면 형제,
그리고 그 형제의 친구들까지,
특히나 룩소르는
서로 모두 다 아는 브라더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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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리 서로 아는 친구가 많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집트에서는 꼭 동갑끼리만 친구인 개념은
없다는 말을 듣고 이해가 갔다.
그날 마음이 맞는다 싶으면 바로 친구가 된다.
나이는 아무 상관없이 말이다.
우리처럼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거나,
한 살만 많아도
"언니/누나", "오빠/형"으로
부르는 경우는 없었다.
그들 사이에도 웃어른에 대한 공경과 예의는 있지만,
적어도 친구는 마음만 맞으면 다 브라더, 시스터가 되었다.
나에게도 시스터가 한 명 생겼는데,
지금도 연락하고 있다.
이집트에서 세라믹 공예품을 파는 친구로
내가 이집트에 온 걸 환영한다며
엄청나게 예쁜 화장대와 미니 여신 조각상을 선물해 주었다.
(화장대로 쓰기에는 아까워서 장식장으로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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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 한국과 같은 <배달의 민족>이 없는 이유는
바로 다음날 알게 되었다.
모두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데다가,
오토바이를 타면서도 핸드폰 통화는
어찌나 안전하고 자연스럽게 하는지
-오토바이의 신기한 풍경은 다음에 자세히 적어야지-
무스타파가 뭐라고 전화 한 통을 하는가 싶더니,
가는 길의 어떤 골목에 떡하니 브라더들이
짐 꾸러미를 들고 서있다.
.... 전화로 필요한 물건이나,
만약 그 브라더가 내가 먹고 싶은 피자 가게 근처에 있다면
피자를 받아달라고 요청해,
가는 길에 건네받고 정산한 뒤(?),
헤어지는 시스템...
..아랍 사람들 느리다고 하지 않았나?...
오토바이를 타는 이집트인들의 일처리는
누구보다도 빨랐다.
가족(친구도 가족)의 부탁이면
부탁이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다 해주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사람 냄새에
괜히 뭉클하고 더 고마웠다.
매사를 이렇게 챙겨주었으므로....
한국에서 여자 혼자 왔다고 하니
왠지 다들 놀라움 반, 걱정 반이 되었는지
엄청 알뜰살뜰하게들 챙겨주었다.
30분에 한 번씩 "뭔가 필요한 게 없니?"라고 묻고,
유적지를 좋아하는 걸 듣고는
이집트 유적지 투어를 해줄 만큼 말이다.
이집트를 포함해 아랍 사람들의 정 문화는
한국과는 또 다른 것 같았다.
물론 모든 문화에 다 장단점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또 우열의 관계가 아니란 걸 알아서
비교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이집트 문화를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사실 생각보다도 더 잘 받아들여졌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꿈꾸던 '사람 간의 정'이 참 그리웠던 나여서.
내가 나의 고향과 가족들을 정하는 것이라면
여기 이집트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마치 내 말을 들은 것처럼,
브라더와 시스터들이 말했다.
"수하, 너는 이집션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