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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quaMarine Aug 08. 2019

근로자의 권리, 그리고 기업의 권리.

대한민국은 아직도 멀었다고 본다..

노조.


필자가 몸 담은 회사에 노조가 출범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반가웠다.


아, 이제 이 쥐꼬리만한 연봉 협상률이 개선되는 건가?

가능성이 높아지는 건가?


이런 느낌이 들었고 나도 근로자, 아니 노동자의 한 명으로써 노동자의 권리는 지켜져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필자는 조직장이다.

조직장은 일반적으로 사측이다.

법에서도 사용자의 입장으로 해석한다.

난 회사의 사용자의 뜻에 맞게 일을 하기 때문에.

개념상 맞는 말이긴 하다.


사측이지만, 노조를 반겼다.

잘해주길 바랬다.


그런데, 지금은 노조가 싫다.


민주노총.

정말 노동자의 권리 증진을 위한 집단이 맞는가?

지금까지 지켜본 바로는 다분히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보인다.

고통받는 근로자를 찾아내서 이슈화한다.

해결방안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 뒤에는 자신들의 의도가

숨어있다. 이슈화를 원하고 정치질을 하여 힘을 더 얻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이득 보기를 원한다.

척하고 있을 뿐이다.


노조와의 협상(이라 쓰고 통보라 읽는다)이 진행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우리나라의 법이 굉장히 비 합리적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잘 갖춰지길 원하면서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법은 보강하지 않는다.

사용자는 노동자가 아무리 부당한 요구를 해도

결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수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

합리적으로 노동자를 제어하기가 매우 힘든 구조.


차라리 외국이 합리적이지 않나?

근로자를 명확하게 보호해주고 권리를 인정한다.

그리고 기업에게 합리적인 인사권을 준다.

쿨하게 해고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기업의 오너들도, 한때 근로자였다.

누군가의 피나는 노력에 의해 기업이 세워졌다.

그리고 전혀 그 노력에 동참하지 않은 누군가가

그 기업에 참여하여 권리를 주장한다.

명백하게 합리적인 권리라면 존중해주어야 한다. 반드시.

그런데, 자신이 주인보다 더 큰 권리를 가지길 원한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모든 것을 용인해줘야 하는가?


회사가 다치면, 개개인이 다치는 건 시간문제다.

다치기 전에 탈출하면 그만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라면.. 해고당한다고

죽네 마네 하는 소리 자체가 나와선 안 되는 것이다.



물론 악덕 사업주가 많다는 것쯤 알고 있다.

그런 분들은 벌 받아야지, 망해봐야지.

그런데 그렇지 않은 분들까지, 피해를 보는 게 안타깝다.

사람에게 치이고 실망한다는 게 대체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로 구덩이는 깊고도 깊다.


결국은 사람 대 사람이 하는 일이고

어느 한쪽이라도 들을 자세가 안 되어 있다면

협상은 불가능하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면, 좋은 방향으로 가기 힘들다.


노조.

묻고 싶다. 누구를 위한 조직인지.

정말 그 방향이 맞는지 말이다.



근로자의 권리만큼, 기업의 권리도 중요하다.

보다 합리적이고 명확한 법을 만들자. 노동부야.

일 좀 하자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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