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은 싫어요. 집이 좋아요. 정말이에요. (2025/6/23)
언젠가 누군가 내게 그랬다.
“너는 가출을 해도, 집을 지어놓고 가출할 사람이야.”
웃긴 말이었지만, 듣고 보니 좀 억울하게 맞는 말이었다.
완벽주의자의 세계에서는 *‘어떻게든 되겠지’*는 금기어다.
시작하려면 끝을 알아야 하고,
끝을 알면 또 거기까지 가는 경로를 정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시작은 자꾸 늦춰진다.
당연히 여행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비행기 표부터 숙소, 렌터카, 식당 예약, 맛집 예비 리스트,
날씨 예보, 일기, 예비 플랜 B, 그리고 비상약 파우치까지—
그 모든 게 제자리에 있어야만 ‘출발’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남들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훌쩍 떠나던데,
나는 늘 ‘걱정’과 ‘만약’을 가방에 한가득 넣고 다녔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니라,
불안하지 않기 위한 준비를 떠나고 있는 건 아닐까?
사실 나는 불안도도 높은 사람이다.
갑작스런 일정 변경엔 멘붕,
예상 밖의 돌발 상황엔 속이 울렁,
사람들은 날 ‘단단하다’고 하지만
실은, 무너지지 않으려고
벽돌을 하나씩 덕지덕지 쌓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여행을 준비하는 내가 싫다.
계획표에 눌려 버리는 그 버전의 나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집 아이들이 점점 나를 닮아가고 있다는 거다.
밖보다는 집, 새로움보다는 익숙함,
심지어 **“엄마 우리 그냥 집에서 놀자”**라는 말까지 슬그머니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또 마음 한 구석이 살짝 찔린다.
이건 또 아닌데...
그래서 요즘, 나는 용기를 내보려 한다.
가방 하나 들고, 아주 가볍게, 아주 즉흥적으로.
“일단 가보자!”를 외칠 수 있는 그런 하루를 상상해 본다.
글 쓰던 골방을 잠시 벗어나,
아이들 손을 잡고 좌충우돌 길을 헤매는 그런 하루.
(물론 생각만으로도 끔찍하지만)
그러니까, 앞으로는 ‘여행계획서’가 아니라
**‘엄마의 작은 탈출 시도’**라고 불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