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요. 똥꼬발랄 로맨틱 코미디가 뭔가요?

- 민망은 기본, 설렘은 옵션입니다. (2025/6/20)

by 권정희


요즘,

어울리지 않게 ‘똥꼬발랄’ 로맨틱 코미디 웹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생기발랄, 울고웃고의 연애를 한지가 언제적인지도 기억나지 않고,

남편은 가족, 육아는 전쟁, 그리고 시간은 번개로,

훌쩍 지난 세월의 폭탄을 맞으며

설렘 따위는 개나 줘버려 하고 지낸 지가 얼만데, 새삼 로맨틱 코미디라니....


그래도 이 무한히 가볍고, 한없이 설레는

로맨틱 코미디를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땐,

그저 가볍게 웃고 싶다는 마음 하나였다.

삶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웠고

내 하루하루는 초치기로 바빴다.

그래서 나 만큼은 내 글 속 인물들에게

말도 안 되게 넘치는 사랑을 시켜주고 싶었다.


게다가 요즘 내가 썼던 대부분의 글은

휴먼물이지만 스릴러,

심리물이지만 스릴러,

코믹물이지만 오컬트 등등 이었다.


그래서, 좀 정신없고, 많이 발랄하고,

사방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야기들.

사랑을 하다가 싸우고, 싸우다가 웃고,

그러다 심장 터지게 설레며 입을 맞추는

그런 똥꼬발랄한 연애담을 써 보기로 한 것이다.

(물론, 먹고는 살아야 했기에

날라온 출판사 계약서 서류에

옛날 감성으로 도장을 찍고,

현실 감성으로 선인세 입금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쓰다 보니 이상한 순간들이 찾아왔다.

화면 속 인물들은 지금 동분서주 티키타카를 시전하며

바람둥이네 아니네, 결혼을 하네 마네,

그렇게 전투적으로 사랑을 하는 중인데

나는 골방에 들어 앉아 식어가는 커피를 야금 야금 들이키며

대사를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 대사 너무 오글거리는 건 아닐까’

‘아 이쯤에서 키스, 이게 말이 되는거야?’

‘이 장면 누가 보면 미쳤다고 안할까?‘

심지어 스스로 쓴 문장을 읽고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또 정말 진심으로 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럴 때마다, 문득 현타가 찾아왔다.


이 나이에 내가 뭘 하고 있는 걸까.

지금 내가 쓰는 이 로맨틱 코미디가 누군가에게 과연

작은 재미라도 줄 수 있을까.

혹시 이건, 철 지난 꿈에 매달린

어른이 되어버린 내 유치한 몸부림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때면

컴퓨터 화면을 끄고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지고는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인물들이 자꾸만 말을 걸어왔다

다음 장면이 떠오르고,

그들이 무슨 말을 할지, 어떻게 행동할지를

내 마음이 먼저 상상하고 있었다.


부끄럽고 민망하고,

때로는 허무하고 현타가 오지만—

그 모든 걸 견디게 하는 건 작품들 속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설레며 또 쓰게 만드는 다음 장면이었다.


나는 안다.

이 로맨틱 코미디가 대단히 작품성 있는 작품은 아닐 거라는 걸.

유려한 문장도 아니고, 고급진 은유도 없고,

때론 너무 과하고, 너무 웃기고, 너무 오글거린다.


그런데도,

이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웃고 있고,

가끔은 진심으로 설레기까지 했다.

이상하게도 그 감정들이

내가 잊고 지냈던 무언가를 건드린다.


나 역시 한때는 누군가와 사랑을 했고,

마음을 주고, 마음을 다치고,

때로는 아주 유치하게 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감정들을 쓰고 있는 지금,

그 시절의 내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골방에 앉아

조금 유치하고, 약간은 뻔한,

하지만 이상하게 놓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한 줄, 한 줄 써 내려간다.


현타도, 후회도, 그 안에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앞에 있는 건—

내가 여전히 사랑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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