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겁게 추면 진가 나와,
작가 생활 내내 켜켜이 쌓인 근육의 뭉침과 예민해진 신경계를 펼치기 위해 시작한
'취발러' 생활이 어느덧 7년이다.
일주일에 두 번은 무조건, 발레에 미쳐있던 어느 해에는 주 네 번씩이나 학원 출근 도장을 찍었었다.
잘하고 싶어 다리를 찢으며 이를 악물었고,
예쁘게 추고 싶어 한 다리로 버티며 땀을 뻘뻘 흘렸다.
때로는 지금의 내 신체적 한계를 부정하며, 청춘의 어느 날처럼 무모하게 애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바(bar) 앞에 설 때마다 깨닫는 건, 열정만으로는 거스를 수 없는 세월의 정직함뿐이었다.
그러던 중 들려온 소식.
로잔 발레 콩쿠르 한국 발레리노 첫 우승자, 박윤재의 특강!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기회라는 말에 덜컥 신청부터 했다.
고작 열여덟.
빛나는 청년들을 볼 때면 '어른이'들은 습관처럼 자문하곤 한다.
'나는 그 나이에 뭘 했더라?'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나도 그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을 것이다.
서툰 연애를 하고, 시험공부에 밤을 지새우며,
학교라는 작은 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던 그런 날들 말이다.
드디어 기다리던 특강 날 아침. 부산스럽게 레오타드를 챙겨 입고,
한동안 신발장 깊숙이 밀어두었던 토슈즈를 꺼냈다.
사실 발가락 끝으로 온몸을 지탱하는 토슈즈는 인체의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다.
발목 통증 때문에 반쯤 포기했던 물건이지만, 오늘은 그 위에 사인을 받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챙겨 들었다.
드디어 발레 홀에 윤재리노가 들어섰다.
뉴스에서 보던 '로잔의 별'이 내 눈앞에 있다니!
열여덟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비현실적인 비율에 입이 떡 벌어졌다.
하지만 수줍게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은
영락없는 옆집 남동생(물론 우리 동네엔 절대 없는 유니콘 같은 존재지만) 같았다.
방글방글 웃는 모습이 어찌나 예쁘고 늠름한지,
'어느 집 아들인지 참 잘 키웠네' 하는 영락없는 아줌마 마음으로 그를 바라본다.
가르치는 솜씨는 또 어찌나 야무진지.
그가 보여주는 동작 하나하나에 홀 안의 공기가 결을 달리했다.
실력만큼이나 서글서글한 인성까지 갖춘, 그야말로 완벽한 예술가였다.
사인회 시간, 여덟 살 꼬마가 그를 향해 "오빠 너무 잘생겼어요!"를 외치자
홀 안은 순식간에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드디어 내 차례. 떨리는 마음으로 토슈즈를 내밀었다.
이름을 묻던 그가 툭, 한마디를 건넨다.
"발레 오래 하셨나 봐요. 되게 잘하시네요."
순간 귀가 쫑긋해졌다.
늘 부족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거울 앞에 섰던 7년의 시간.
그런데 세계적인 프로 발레리노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이 귓가에 맹렬히 울리는 순간,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졌다.
그래, 나 참 열심히 했지. 결과가 어떻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인생의 유일한 규칙이었으니까.
요즘 나는 다시 즐겁다. 발레가, 그리고 나의 일상이.
더 잘하고 싶다는 기분 좋은 욕심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아, 이러다 글보다 발레에 시간을 더 투자하는 '주객전도'의 상황이 오면 곤란할 텐데.
하지만 믿는다. 즐겁게 추면 그 춤에 진가가 배어 나오듯,
윤재리노처럼 즐겁게 문장을 써 내려가다 보면
언젠가 내 글에서도 나만의 진가가 배어 나올 것이라고.
그리고
오늘도 나는 나만의 무대 위에서 기분 좋게 앙 오(En Haut)를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