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이유.....

읽어 주셔서,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by 권정희

추운 겨울, 맥을 못 춘다.

예전에는 여름보다 겨울이 더 좋았던 듯도 싶다.

그런데 요즘은 겨울이 쉽지 않다.

여름이 되면 이번에는 여름마저도 싫어질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 역시도 침대에서 뭉그적 대면서

굼벵이 꿈틀대듯 힘겨워하던 차,

침대 어딘가에 틀어 박혀 있던 핸드폰에서 카톡이 울려왔다.

까똑,

까똑,

더듬더듬,

침대 한 귀퉁이 이불속에 묻혀 있던 핸드폰을 힘겹게 찾아낸다.


"굿모닝, 연락 못주고 있어 미안, "


디자이너 친구였다.

늘 내 작품 활동 소식에 환호성을 질러주며 기특해해 주던 그녀였기에,

신간 소식을 제일 먼저 알리며 만남을 기약했는데,

우리는 여전히 인생을 살아내느라 약속을 잡는 일조차 하지 못했다.

사실, 우리는 얼굴을 본 지가 10년이 넘은 무늬만 친구인 관계다.

아니, 얼굴을 보지 않고도 서로를 위하는 진정한 친구인 걸까?


- 무슨 일이지? 만나자는 연락은 아닐 것이다. 이 아침부터?

그녀의 카톡이 이어진다.


- 차 두고 전철 타고 출근했는데

전철 안에서 어떤 남자가

- 데스앤라이프걸을 읽고 있더라. -

- 오 리얼리?"

신기하다는 듯 내가되물었다.

- 응 맞아

그녀가 확신에 차 대답했다.

- 표지가 눈에 띄잖아. 데스ㅡㅡㅡㅡㅡㅡㅡ앤 라이프걸.

너무 신기하더라니까. 남자 머리가 장발이어서 시선이 갔는데, 손에 들려진 책이.. 니 책이라니."


순간,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

"화장실에 앉아 있는데 화장실 벽에 적혀 있는 니 시가 눈에 빡, 띠더라."

군대에서 막 휴가를 나온 군인친구가 살짝 흥분한 듯한 음성으로

신기한 듯 소식을 전해왔었다.

대학생 시절,

난 사랑과 이별에 관한 말랑말랑한 시를 썼고,

그리고 3권의 시집을 냈었다.

그리고 그 시 중 한편이 군대 화장실에 적혀 있었던 거다.

(누구의 시는 노래의 가사가 되고, 누구는 유명한 작사가가 됐건만 ㅠ

군대 화장실이라니.............ㅋ)


침대 밖으로 애써 기어 나왔다.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던 글을 끄집어내기위해.

다른 계절에,
다른 장소에서,

내 글을 읽고 있을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컴퓨터 전원을 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겨울은 여전히 춥고,
몸은 여전히 느리고,
해야 할 일들은 그대로 쌓여 있지만
아침의 기분만큼은
조금 덜 잠긴 채로 유지됐다.

아마 내일이면
또 맥을 못 출 테고,
또 비슷한 생각을 하겠지만
적어도 오늘 아침은
이 정도면 됐다.


글을 쓸 이유는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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