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 때문인걸가?
책상 위에 놓인 종이 위에는 깨알 같은 글씨들이 가득하다.
하얀 바탕에 검은 글자가 적힌 평범한 종이일 뿐인데,
그 위에 내 이름을 정자로 적어 넣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손끝에 기분 나쁜 점성이 느껴진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이 불쾌한 긴장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나는 왜 이 종이 한 장 앞에서 이토록 작아지는 것일까.
우리는 계약을 ‘권리와 의무의 교환’이라 배우지만,
계약서 앞에 선 개인에게 그것은 차라리 ‘자유의 저당’에 가깝다.
서명하는 순간, 나의 시간 중 일부는 타인의 계획 속으로 편입된다.
어제까지 내 마음대로 쓰던 시간들이 서명 직후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마감 시간이 되고
수행해야 할 과업이 된다.
때로 계약 조항들은 촘촘한 그물망이 되어 목을 옥죄어오는 협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마감의 압박은 천당과 지옥을 수시로 오가게 만든다.
수많은 계약서를 써 왔지만, 드라마 대본 계약 앞에서는 유독 두려움이 커진다.
한때는 자신감이 넘쳐나던 시절도 있었다. '글만 멋지게 써주면 되는 거 아니야?'
하지만 현실은 자신감만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계약 기간을 다 채우고도, 이미 받은 원고료의 80퍼센트를 토해내야 했던 시린 기억이
내 안에 낙인처럼 남아 있다.
나는 뻔뻔함을 앞세워 따지는 스타일이 못 된다.
싸움이 싫어 외면하는 회피형 인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소위 말하는 ‘딜’도 잘하지 못한다. 원고료를 올려달라는 말도,
불공정한 조항을 바꿔달라는 요구도
늘 상대에게 미안한 기분을 가진 채 조심스레 꺼내곤 한다.
그런 내가 또다시 드라마 작가 계약서를 받아 들었다.
첫 제안이 있고 한 달 만이다. 초안을 받아 들고도 선뜻 서명하지 못한 채 또다시 시간을 흘려보낸다.
여전히 계약서는 어렵다. 큰 액수의 계약금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많이 받은 만큼, 다시 그 돈을 돌려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방송이 될 거라는 확신조차 희미한 판 위에서 자신감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다시 펜을 든다.
바꾸고 싶은 사항들을 수정하고 메일을 보내는 순간에도
마음은 여전히 무겁고 어깨에 얹힌 책임감은 서늘하다.
하지만 나는 다시 용기를 내어 보기로 한다.
이 두려움이 나를 옥죄는 사슬이 아니라,
내가 가야 할 길을 이탈하지 않게 붙들어주는 안전벨트이기를 바라면서.
부디 이 서명이 내 발목을 낚아채는 쇠사슬이 아니라,
끝까지 완주하게 할 단단한 약속이 되기를 간절히 빌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