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tra 반도 여행기 - 슬로베니아 & 크로아티아
이스트라 반도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그리고 이탈리아 일부를 아우르는 아드리아해의 작은 반도이다.
이 지역은 좀 복잡 미묘한 역사를 가졌다.
현재는 대부분이 크로아티아에 속하지만, 오랜 기간 베네치아의 지배 이후, 합스부르크가의 손을 거쳐 이탈리아 왕국의 차지가 되었다. 다시 한 번 이탈리아에서 트리에스테(현재 이탈리아) 자유 지구와 유고슬라비아가 되었다. 현재는 이탈리아와 유고슬라비아의 해체로 인해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된 상태이다.
이런 복잡한 지배 과정을 거치고 크로아티아 내전도 거쳤지만 지금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휴양도시들이다.
어떤 세력의 지배 시기가 이들 도시의 외모에 더 큰 영향을 끼쳤을까에 대해 재미있는 추리를 해 보았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나만의 직관이다. (오스트리아나 이탈리아 도시들을 매년 여행하고 있으므로 가지게 된 느낌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1. 이탈리아 트리에스테는 '오스트리아' 한 도시 같은 느낌이다.(합스부르크 지배가 가장 큰 영향을 끼침)
2. 슬로베니아 피란은 '베네치아 느낌'이다.(이탈리아는 도시마다 색깔이 가지각색이다.)
3. 크로아티아 풀라는 '로마' feel 이다. (이 느낌은 스플리트와도 유사하지만, 비교하기엔 너무 규모가 작다.)
4. 크로아티아 리예카는 그냥 세르비아 '현대 도시' 같다.(유고슬라비아 시절 영향)
이런 순진한 직관이 어느 정도 맞았을지 나중에 구체적인 도시들의 역사를 공부해 보고 싶다.
피란은 파란 하늘을 만나야 빛을 발한다. 파란 바다도 마찬가치. 비취빛이라기 보단 바다가 깊어 파랗게 보임.
바닥이 대리석으로 쫙 깔린 반질 반질한 광장.
이렇게 바닥이 반질반질한 광장은 처음이다. (대리석 바닥은 비가 오면 미끄러지기 쉽다.)
피란 출신 국민 음악가 주세페 타르티니 동상이 있는 시청 앞 광장이다.
오스트리아 말고는 광장 한 중앙에 음악가 동상이 있기가 쉽지 않다.(?)
대부분 유럽 도시 광장엔 왕이나 정치사적 중요한 인물이 중앙에 위치하는데 피란은 뜻 밖이다. 내가 피란 시민이었더라도 어느 왕이건 정치가건 지겨울 것 같다. 아마 내가 100년 전 피란에 살았다면 어느 민족이란 느낌이 있었을지, 내 나라는 어느 나라가 맞는지 헷갈렸을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그런 생각조차 없었겠지! 어찌 보면 일반 하층민의 삶은 '그놈이 그놈'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현재의 피란은 아담하고 깨끗한 기념품 가게들과 카페, 아이스크림 파는 가게가 더운 여름 관광객들을 불러들인다.
타르티니 광장을 지나 계단을 올라 성벽에 오르면 바다가 보이는 확 트인 전망이 나타난다. 이 전망대에서 이탈리아도 보인다고 한다. 실제로 이탈리아와도 그다지 멀지 않다.
슬로베니아 코페르에 사시는 어느 한국분이 자녀를 이탈리아 트리에스테에 있는 학교에 보냈다고 하는 기억이 난다.
피란의 골목길은 여느 지중해 휴양지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이탈리아 바닷가 도시보다 약간 더 낡은 느낌이랄까?
음식이나 기념품 등 관광물가는 이탈리아와는 비교가 안될 만큼 좋은 가격이다.
유독 슬로베니아는 구 유고슬라비아의 나라들 보단 젊은이가 눈이 많이 띤다. 피란도 마찬가지였다.
슬로베니아는 젊고 역동적인 나라라는 느낌이 든다.
피란은 예쁜 조그만 항구도시이고, 고기잡이 배도 많이 눈에 띈다.
해변엔 주로 동네 주민이 이용할 것 같은 조그만 모래 해변가도 있고, 가족단위로 해수욕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띈다. 아이들은 바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싶다고 안달이지만, 리예카에서 하루 종일 바닷가에 있기로 했으니 피란은 패스.
풀라는 생활의 긴장을 '풀라'는 도시이다.
로마 못지않은(?) 멋진 고대 원형 경기장이 존재하고, 맛나고 저렴한 지중해 음식이 넘쳐나며, 아무리 걸어도 지치지 않을 재미난 밤거리가 존재하는 PULA에서는 모든 여행자는 마음의 짐을 풀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종류의 잘 요리된 해산물을 (너무 알려진 관광지인 크로아티아 다른 휴양도시보다) 양껏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나에겐 '맛'으로 기억되는 도시다.
'아뿔싸! 먹는 즐거움에 집중하다 보니 사진을 놓쳤다.'
풀라는 무엇보다 비교적 잘 보존된 원형경기장으로 유명한 도시이다. 가끔씩 오페라와 같은 공연도 열린다고 하고... (이탈리아 베로나의 원형경기장에서 아이다 공연을 꼭 보리라 다짐했었는데, 이곳에서도 풀라 원형경기장과 약속만 하고 오늘은 그냥 이 건축물 자체를 느끼자~)
원형경기장 규모도 만만치 않고, 로마시대 중요한 행정 도시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원형경기장에서 풀라의 구시가 중심인 포룸 광장으로 가는 길엔 관광객을 호객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어느 식당이건 모두 사람으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의 저녁식사는 정말 흥겹고 즐거울 것 같다.
광장의 분위기는 크로아티아적(내 느낌상 크로아티아는 여유로운 넓은 해변과 섬들 그리고, 이를 이용해 많은 관광객을 상대하는 상인들의 덜 상업적인 웃음과 분주함으로 대비되는 곳)인 여유로움과 젊은이들의 시끌벅적함으로,,, 그리고 풀라만의 향기도 내뿜고 있었다.
하지만, 아우구스투스 신전이 일부분밖에 남아 있지 않아 안타까웠다. 생각보다 거대했던 원형경기장에 놀랐던 나는 이곳에서 풀라는 '이탈리아가 아님'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포룸 광장의 시끌벅적한 지중해 음식의 향기는 아직도 나의 뇌리에 풀라만의 맛과 향으로 남아있다.
리예카는 항구도시다.
관광지라기 보단 대도시 느낌이다.
이 반도에서 상주인구가 14만 명은 넘으니 고만고만한 도시는 아닌 것이다.
그리고 자유도시(였)다. 1920년부터 4년간 유고슬라비아와 이탈리아가 아닌 피우메 자유국이었다.
앞서 설명한 복잡한 역사처럼 4년간의 도시 자유국이었다니, 그 당시 통치자들과 시민들은 그 짧은 역사상 최초이자 최후의 자유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지금 크로아티아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리예카 시민의 자존심은 남다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난 이런 독특한 자존심(?)을 다음날 몸소 체험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그다지 좋은 경험만은 아니었다.
이게 리예카 시민의 자존심인지 배타성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과감하게 관광지라고 보기엔 좀 어색한 리예카의 한 바닷가를 찾았다. 주변에 큰 수영장(알고 보니 국제대회도 열리는 크로아티아에서도 제법 규모가 큰 공영 수영장 시설이었다.)도 갖춰져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다양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구글 지도로 미리 살펴본 결과, 우리 가족이 묶고 있던 아파트먼트에서 아주 가까웠다.
무엇보다 해변도 넓고 주변에 나무가 많아 우리 가족이 해수욕을 즐기기엔 안성맞춤이라고 생각했다.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루 종일 있을 생각으로 해수욕 짐을 챙겨 바닷가에 도착했다.
하지만 아침부터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고, 나무 아래 빈자리도 별로 없었다.
암튼 자리를 잡고 아이들은 바로 물로 향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감지되는 것은 주변 사람들의 계속 적인 쳐다 봄(신기해 한다기 보단 뭔가 불만에 찬 듯한 불편한 느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엔 크로아티아인처럼 보이지 않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었다. 크로아티아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으므로 뭐라 하는지 몰랐지만, 왜 여기서 물놀이를 하는지 모두 의아해하는 것 같았다.
'관광객들이 오지 않는, 우리 시민들의 휴식처에 왜 저 이방인들이 들어와 있지?'하는 느낌이랄까?
물론 크로아티아는 바다에 접한 나라이므로 해변이라면 갈 곳이 무척이나 많다. 그렇다고 우리가 못 올 곳에 온 것은 아니다.
물론 입장료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럴만한 대단한 편의시설(샤워장 등)이 갖춰진 것도 아니었다.
오랜 유럽 생활에 익숙해져서 인지, 간혹 아시아인들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더라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대다수 사람은 그러진 않으니깐...(그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래서 잘 안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리예카 시민들도 앞으로 더 많은 아시아인들을 보게 될 것이고, 그들에게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자신들의 휴식처를 내줄 마음이 생겨야 할 것이다.
어차피 크로아티아는 풀라에서 본 것처럼 아직까진 덜 상업적인 웃음을 가진 관광대국이고, 계속 관광으로 먹고살아야 할 나라가 아니던가?
리예카가 4년간의 자유도시였던 자존심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리예카의 성 비투스 교회는 길가에 있는 덩그러니 큰 교회였다.
만일 내부를 보았다면 그 느낌이 달랐을 것이라 확신하지만, 뜬금없이 홀로 대로변에 있는 것은 맞다.
문이 잠겨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는데, 어느 기독교 단체에서 온 듯한 일본인 관광객들도 교회 안을 볼 수 없음에 무척이나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렸다.
내가 본 이스트라 반도 여행,
복잡한 역사만큼이나 각자의 색깔을 가진 도시들.
나라는 다르지만 이스트라 반도라는 뭔가 동질감이 있는 도시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