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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 여행 Jan 24. 2018

몬테네그로 코토르 여행기

코스타 루미노사 몬테네그로 코토르 정박

코스타 크루즈 여행에서 가장 기대가 컸던 곳이 몬테네그로 코토르였다. 구 유고연방 중 잘 알려지지 않았던 몬테네그로는 2006년 독립한 작은 신생국이다. 하지만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럽에선 뜨고 있는 휴양 관광지이다. 세르비아어로 몬테네그로는 검은 산이란 말이다. 말 그대로 디나르 알프스가 전 국토를 감싸고 있는 산악국이다. 해안과 산악으로 이루어진 작은 나라 몬테네그로는 9세기 비잔틴 제후국 두클리아로부터 독립국 역사가 유래한다. 1077년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독립국 인정은 첫 국가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불가리아, 베네치아 공국의 지배 등 여러 민족의 지배를 받다가 2차 대전 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일원이 되었다. 몬테네그로는 티토의 사망 이후 다른 연방국의 독립에도 세르비아와 연방을 구성하던 국가였다. 마침내 2006년에서야 독립투표로 세르비아에서 완전 분리 독립을 이루게 된다.

코토르 구시가

이런 역사로 인해 베네치아 시절 가톨릭과 세르비아의 영향 하에 정교회의 2가지 종교가 비교적 평화롭게 공존하며 현재의 문화 유적을 유지시켰다. 고 유고 연방국 중 가톨릭의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 이슬람의 보스니아 등은 세르비아 중심의 정교회와는 다른 종교와 문화가 있었던 연방국 일부였다. 영웅이자 독재자 티토의 영향력은 다른 종교와 문화에도 연합국이란 정체성을 존재시켰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유고의 해체 및 독립전쟁 등 그동안의 민족적 갈등이 폭발되며 참담한 현대의 학살극이 벌어지는 현장이 되고 만다.

그러한 역사 속에서도 코토르는 지정학적 중요성과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채 수많은 관광객을 불러들이는 몬테네그로의 핵심 관광지였다.

코토르만으로 들어오는 배
배 유리창으로 내다보는 코토르만


배에서 찍은 코토르 전망

코토르는 고대 로마시대부터 번성한 도시였다. 로마 유스티니아누스 1세 때 지정학적 중요성으로 요새가 만들어지면서 도시로서 발전을 시작한다. 이후 베네치아 공화국의 오랜 지배로 인해 베네치아풍의 많은 건축물을 가진 도시로 변모되었다.

코토르 시가로 들어가기 전에 배를 전망대 삼아 아름다운 시가지를 눈과 사진에 열심히 담았다. 코토르에 도착하기 전 지나쳐 온 작은 마을들이 좀처럼 보기 힘든 색다른 경관을 만들어 낸다. 날씨는 비가 오며 산뜻하진 않았지만, 안개 낀 절벽과 마을들도 제법 운치가 있다.

배에서 아름다운 광경을 담고 있을 때 '암초 위의 마리아 교회'가 홀연히 나타났다. 어느 어부가 성모가 그려진 성화를 발견한 곳이 성지가 되었다는 신비한 교회이다. 1630년 이곳의 시민들이 이 암초에  돌과 바위로 인공섬을 만들어 그 위에 교회를 만들었다. 다만 이곳에 가려면 코토르에서 다른 배로 들어가야 하는 가기 쉬운 곳은 아니다. 다행히 배 위에서나마 멋진 교회를 감상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암초 위의 마리아 교회

코토르 항구에서 내려 몇 분만 걸으면 구시가로 들어가는 서문에 도착한다. 이 문을 통과하면 코토르의 과거 속 여행이 갑작스럽게 시작된다. 바로크, 르네상스 등 다양한 교회와 건축물들이 좁은 구시가를 가득 채우고 있다.

맨 처음 나타나는 중앙광장 시계탑

구시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중앙광장엔 몇몇 교회 건축물들이 서있다. 1602년에 건설된 시계탑이 있다. 이 시계탑은 두 번의 대지진으로 기울어져 있다. 시계탑 근처엔 이 곳을 지배하던 가문들의 다양한 궁전이 있다. 보통 이런 곳은 대부분 호텔, 식당, 관공서 등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가장 알려진 것이 베스쿠카 비잔티니 궁전으로 15~18세기 이 가문의 저택이었다. 파마 가문의 궁전도 찾을 수 있는데, 화려한 대역사를 가진 다른 나라의 왕족 가문엔 비할 수 없지만, 소박하고 이 곳과 잘 어울리는 경관의 일부가 되어 코토르를 빛내주고 있었다.

 

코스타 루미노사가 궁전 뒤로 보인다.

코토르의 종교적 관용은 두 가지 양식의 교회를 모두 허락하고 있는데, 가톨릭 교회와 세르비아 정교회가 바로 그것이다.

성 트뤼폰성당은 코토르의 대표적 가톨릭 성당으로 1166년 지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이다. 코토르의 수호성인인 트뤼폰을 기리기 위해 만든 성당이다.

성 트뤼폰 카톨릭 성당

성당 내부엔 성 트뤼폰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데 이스탄불에서 옮겨 온 것이라 한다. 내부에 제단과 금은으로 만든 부조가 있다. 아치 형태의 장식엔 프레스코화와 종교 작품들이 있었다. 2층 전시실에도 유물들이 잘 보존 전시되고 있었다.

성 트뤼폰 성당 내부
성 트뤼폰 성당 2층 전시실

 높이 35m에 달하는 두 개의 종탑은 809년에 최초 건축되었다. 하지만 1667년과 1979년 대지진으로 손상되었고 최근에 다시 복구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두 개의 종탑엔 서로 모양이 달랐는데 1166년과 가장 최근에 복구된 연도인 2016년이 적혀 있다. 어디서도 볼 수 없던 재미있는 발상이다. 최초 설립 때와 최근의 수리 연도가 같이 적혀 있으니 과거와 현대가 이어지고 있단 강한 느낌을 받는다.

구시가지 중앙광장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성 루카 광장이 나온다. 이 곳엔 세르비아 정교회 2곳이 존재하는데, 성 루카 교회와 성 니콜라스 교회이다. 성 루카 교회는 1195년 처음 지어졌을 땐 베네치아 공화국의 지배기로 가톨릭 교회였다고 한다. 하지만 17세기 세르비아의 영향 아래 세르비아 정교회로 바뀌어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다른 건물에 비해 아주 오래돼 보인다. 지진으로 손상되지 않아 원 상태가 비교적 보전되어 있어서라고 한다. 현재 몬테네그로 주민은 대부분 세르비아 정교회를 믿는다고 한다. 최근 역사는 세르비아와 같이 하므로 그도 그럴듯하다.

성 니콜라스 교회, 세르비아 정교회이다
성 루카 교회 - 세르비아 정교회로 사용
정교회 내부

코토르 성벽을 오르려 했으나 강한 우박이 떨어지는 추운 날씨라서 과감히 포기했다. 배 위에서 이미 보았던 코토르의 전경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크루즈를 여행하는 관광객은 도착이나 출발 직전, 높은 배의 장점을 살려 손쉬운 전망대로 사용하는 것도 커다란 장점이 될 수 있다.

배 위에서 힘들이지 않고 경치를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코토르 성벽은 비잔틴 시대에 처음 기반을 닦았고, 불가리아 지배 등을 겪으며 19세기까지 계속 증축되며 1200m 에 달하는 광대한 벽이 만들어졌다. 1350개의 계단을 오르면 해발 260m의 높이에서 코토르를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바다에 면한 큰 피오르드식 절벽을 가지는 코토르만은 날씨 변화가 심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비가 많이 내린다. 그날 코토르에서 자연현상에 대한 특별한 경험이 생겼다. 하늘에선 지름 1cm는 넘어 보이는 우박을 10여분 이상 들이부었다. 우박이 물건에 부딪히는 소리도 굉장했다. 눈과 달리 빠르게 떨어지는 얼음조각들이 강과 길바닥에 떨어졌다. 이 우박이 만들어내는 파장과 물방울을 빠져들 듯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강을 건너는 다리 문 바로 앞에서 우박을 맞았으므로, 다리 지붕 아래서 강으로 수없이 떨어지는 우박을 보는 (흔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강한 우박 소리와 빼곡한 강물의 출렁임 속에 코토르라는 신비한 곳이 우리를 이곳에서 영영 빠져나갈 수 없게할 것 같다는 상상을 해 보았다. 그때를 회상하며 지금은 일상으로 돌아와 있지만, 어디선가 그런 우박이 다시 강물 속으로 떨어진다면, 그 당시의  코토르로 다시 돌아가 있을 것 같은 그런 환상이 느껴진다.

그 밤의 우박 떨어지는 코토르는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나의 뇌 속 어딘가에 오랫동안 남겨질 것 같다.

처음엔 비로 시작했다.
우박으로 점차 변해간다
길가에 우박으로 떨어져 내림
온통 우빅으로 덮인 코토르 구시가


따뜻한 느낌을 주는 코토르 주택
밤이 된 코토르 구시가
코토르 성벽이 보인다
코토르의 상징이라는 고양이가 역시 낯설지 않다
짧은 선물 같았던 코토르 여행
코토르에서 코스타 루미노사로 돌아 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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