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의 한국인과 유럽인의 문화적 차이 ⑭
"이 결정은 당신이 상사라 해도 결코 따를 수 없습니다."
"그래도 위에선 이렇게 하라고 지시하는데 방법이 없을까요?"
"저로선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조직 내에서 직장인이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 누구나 자신만의 소신과 원칙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철학과 원칙을 지켜나가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지만, 때로는 상사의 강한 지시(특히, 이를 거역했을 경우, 불이익이 뻔히 보일 때)나 조직원 개인의 한순간의 욕심 등으로 이런 원칙이 쉽게 무너져 버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어떤 직장인은 비양심적인 행위로 인해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물론 양심의 잣대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므로 죄책감을 느끼는 정도도 다를 것이다.
한국에서의 내 경험으론 평소엔 죄책감을 잘 느끼지 못하다가도, 다른 사람도 그 행위를 알게 됨으로써 본인이 느끼게 되는 감정인 수치심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즉, 자신의 양심은 용납하지만, 타인의 시선에선 비양심적이지 않은 사람이어야 하는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에 있어 유럽인들이 느끼는 감정은 죄책감이 수치심보다 우선될 것 같다.
자신의 양심이 상사의 지시 불이행으로 인한 불이익보다 항상 앞서 있는 것이다.
매년 국가별 투명성 지수라는 것이 발표되고 있고, 이런 결과들을 보면, 북유럽이 전체 유럽에선 가장 앞서있고 동유럽보단 서유럽이 좀 더 투명한 사회라고 보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다른 한편으론 이런 도덕적인 문제는 문화적인 현상이라기 보단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 다르다고 보는 것이 더 중요하고 옳은 분류일지도 모르겠다.
조직문화적 시각에서 일반적 차이를 굳이 따져 보자면, 유럽 사람들이 업무를 처리하는 데 있어 한국인보다 유연성이 덜하고 고지식한 것은 사실이다.
이런 고지식함이 도덕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훨씬 투명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권력자의 어떠한 압박에도 비양심적인 방법으론 자신의 일을 수행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고지식함이 때론 진정 필요한 법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 가능한 상황에서) 자신의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최소한 행위에 동조하게 만드는 듯한 모호한 업무지시는 유럽인들에겐 금물이다.
유럽인과 일하다 보면, 가급적 크게 문제가 안 생기게 알아서 어떤 조치를 취해주면 좋겠다고 아무리 기대를 해 보아도 잘 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가 될 것 같은 일은 처음부터 하지 않으려 하고, 공적인 상황에서 자신의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은 결코 하지 않는 사람들이 유럽인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만일 법률 위반이나 도덕적 문제에 결부되는 건이라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세밀하게 따지고 들 것이고, 그들은 단호하게, 일말의 여지도 없이 거부할 것이다.
이런 유럽인들의 도덕적 고지식함과 원칙 준수가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보단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