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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 여행 Sep 16. 2016

장황한 이메일을 조심하라

직장에서의 한국인과 유럽인의 문화적 차이 ⑮ - 유럽인의 연역적 사고

"그래서 어떻게 된단 말인가요? 결과만 말해요. 시간 없으니 답만 달라고요."

"하지만, 이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셔야만 좋은 대책이 나옵니다."


유럽인들과 일하는 한국인 상사가 흔하게 겪는 상황이다.

직장에서 주어진 시간마저도 쪼개 써야 하는 항상 바쁜 한국인에겐 유럽인의 장황한 배경 설명이나 과정 소개는 딱 질색이다. 구두 보고나 직접 대면하는 상황에서조차 이럴진대 오프라인 문서나 온라인 이메일이면 오죽할까?



유럽인들에겐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이나 배경에 대한 이해도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그 결과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는데 상당한 보고의 시간을 할애한다. (때론 중단시키지 않고 계속 듣고 있다 보면, 이런 과정이나 배경을 설명하는 것을 이 사람이 지금 굉장히 즐기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내 관점에서 볼 땐 중부 유럽인은 본질적으로 귀납적인 사고를 하므로 결과부터 바로 나오지 않는다.

처음 중부 유럽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문서 작성해 온 것을 보면 너무 답답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순서나 번호는 잘 찾아보기 힘들고, 긴 문장체로 나열해 오는 데다,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결과 부분은 항상 뒤쪽(어쩌다간 두 번째 장에 나오는 수도 있음)에 나오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문서를 본 첫 느낌은 정확히 이랬다. "이 지루한 긴 문장들을 다 읽어야만 원하는 답이 나오는 건가?"   

물론 내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이었으므로 내 입맛에 맞춘 한국식 보고서를 만들어 오도록 계속 교육시키고 한국식 보고서 방식에 대해 기초부터 가르치긴 했지만....(내가 상사라서 내가 보기 편한 보고서가 중요한 게 아닌가라고 설득해서 시키긴 했지만, 내 뜻대로 잘되진 않았다. 그리고 계속 들어오는 모든 직원들에게 계속 같은 일을 반복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상사나 선배로부터 "모든 보고서는 결론부터 설명되어야 하고, 일목요연하게, 그리고 번호 등을 사용하여 가급적 짧게 요약하여야 한다."라고 배웠다. 또한, 그런 류의 보고서를 잘 쓴 보고서라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보고서 쓰는 실력이 형편없구먼."이란 생각을 꽤 오래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한국인의 눈에 잘 들어오는 보고서가 잘 쓴 보고서인지? 지금의 나로서는 결론을 내리기가 어렵다.

물론 내가 상사이면 내 눈에 잘 들어오는 보고서가 잘 쓴 보고서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유럽인 상사에게 한국 방식의 보고서를 쓴다면 그것이 그의 눈에 잘 들어오는, 잘 쓴 보고서 일지는 의문이다.


왜냐하면 한국적인 사고와 유럽인의 사고의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한국인의 사고체계가 귀납적 사고에 가까운지, 연역적 사고에 가까운지 깊게 고민해 본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한국인의 보고서 체계만큼은 연역적 사고를 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내 생각은 한국인이 연역적으로 보고하는 방식을 가지게 된 것도 서양에서 들어사고체계가 아닐까 싶다.

래서 이런 사고체계가 비즈니스에 효율적이라고 느끼고, 어떤 모범 인양 느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유럽인들이 이메일을 쓸 때, 귀납적 사고체계가 가장 잘 드러난다.

보통 이들의 이메일은 한국인이 볼 때는 무척이나 장황하단 느낌이다.

가뜩이나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이 보기엔, 처음에 중요한 메시지(결론)가 없으면 별 의미 없는 이메일이라고 무시해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쓴 이메일의 길이가 길면 길수록 중요한 사안일 확률이 높다.   


기록을 중시하고, 업무상의 과정을 중요시하는 유럽인은 항상 근거를 가지고 있다.

문제가 생길 경우, 유럽인들을 질책해 보지만, 이미 이메일을 보내는 등 뭔가 조치를 했던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인보다 일찍 퇴근하여야 하는(정규 근무시간 준수) 유럽인들에게 항상 바빠 보이는 한국인 상사에게 매번 구두 보고를 할 시간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기록이 남는 이메일을 선호한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라도 이메일로 보고를 했다거나 문제를 지적했으면 할 일을 다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더 이상은 언급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중에 문제가 발생되어 지적하다 보면, 이메일을 이미 정확히 몇 월 며칠 보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들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안건에 대한 이메일은 정확히 잘 기억하고 있다.(한국인에겐 메일을 보냈는지 여부며, 메일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대도 말이다.)

심지어는 왜 (과거의) 그때 자신의 이메일 보고나 혹은 의견을 무시했었느냐고 되묻는 경우도 있다.

"이메일을 내가 다 보느냐? 중요한 건이면 보내고 나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고 다그쳐 봐도 이미 때는 늦었다. 그들은 이미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이메일을 무시해 버린 내가 잘못한 것이 돼 버린다.   


유럽인의 장황한 이메일을 그냥 무시해 버리면 나중에 큰 일을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




유럽인들과 일을 할 땐, 단순히 결론만 말하지 말라.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결론이 나온 과정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필요하다.


한국인인 나에게 시간낭비처럼 느껴지는 토론을 유럽인들끼리는 참 많이도 한다.

결론이 정해졌으면 됐지, 왜 그러한 결론이 나왔는지 과정이나 왜 그게 결론인지에 대한 토론을 열심히 하는 것이다.  

 

유럽인들에게 업무지시를 할 때에도 왜 이 업무가 필요한지에 대한 설명이 꼭 필요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해야 하는 절차이다.

단순히 이렇게 하면 된다가 아니라, 이러이러한 목적으로 이 업무가 필요하다는 설명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만 정확한 답이 나오며, 질적으로도 만족한 말한 성과가 창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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