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비된 여행 Sep 10. 2016

해고의 추억

한국적 권위에 저항한 유럽인 

"이런 Warning Letter를 받느니 당장 그만두겠어요!"

"내가 그동안 회사를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이런 대접을 받는 건 참을 수 없네요."

"역시 한국 회사엔 오는 게 아니었어..."


"하지만 당신은 이런 이런 실수를 했고, 최고 경영자를 무시했어요."

"내가 당신과 함께 계속 일하고 싶더라도, 최고 경영자는 어떻게든 당신을 내보낼 겁니다."

"당신이 나가겠다니 어쩔 수 없군요." 하지만 "당신이 원한 것이니 이건 해고가 아닌 자발적 퇴사입니다."


그다지 기억하기 싫은 추억이지만, 내 부하직원과 내가 했던 대화이다.

퇴사를 결정하기 직전에 나누었던 대화 내용이다.



체코나 슬로바키아 회사는 일 년 안에 동일인에게 3번의 Warning Letter를 발부하면 노동법상 해고를 확정 지을 수 있다. 물론 이 경고의 사유는 객관적이고 입증 가능하여야 할 것이다.

자발적인 퇴사는 회사와 합의만 되면 언제라도 나갈 수 있다. 하지만 해고의 경우는 근무기간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2개월 간의 고용과 근무기간에 따른 몇 달치의 급여를 주어야 한다. 즉시 해고를 하려면 기간을 계산하여 최고 6개월분의 급여를 주어야 가능하다. 이런 경제적인 목적 때문에 그의 자진 퇴사를 유도한 것이었다.


내가 이 직원에게 첫 번째 Warning Letter를 날릴(?) 생각을 했을 때, 이미 나는 이 직원이 이렇게 나오리라 예상했었다.

이 직원은 회사 창립 멤버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던 직원이었고, 입사 2년 차까진 촉망받는 직원으로 승진까지 한 사람이었다. 경찰 출신으로 성격이 강직하고 자존심이 강한 직원이었다.

이 직원과 최고 경영자 사이에 문제가 발생한 것은 사소한 이유에서였다. CEO의 지시를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일을 처리한 사례가 시작이었다. 처음엔 상황상의 사유도 타당하여 CEO에게 충분히 소명이 되었다.

두 번째 트러블은 최고 경영자의 권위를 무시한 듯한 그의 행동 때문이었다. 일반적으로 주차하지 않아야 하는 곳에 업무상 자신의 편의를 위해 주차를 했고, (사유는 빠른 업무 처리를 위해서였다고 해명했지만..) CEO는 당장 시정을 지시했으나, 급한 일이 우선이니 일이 끝나고 차를 빼겠다고 항명한 것이다.

통상 유럽이라도 CEO의 지위는 현지 비간부급 유럽인이 쉽게 범접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었는데, 이 직원은 업무상 합리성이 권위에 우선한다고 나름 판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의 철없던 생각엔 당연히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CEO와의 트러블이 생기면서, 나는 어쩔 수없이 (일을 잘하더라도) 필연적으로 향후 비슷한 문제가 계속 생길 수밖에 없음을 느끼고 내보낼 준비를 시작하였다.

태도에 대한 문제는 그의 성격상 쉽게 바뀔 성질이 것이 아니라는 판단이 섰던 것이다. 

물론 여러 번 CEO에게도 그의 다른 장점들에 대해 설득해 보았으나 쉽사리 마음을 돌릴 것 같지 않았다.


내보낼 핑계를 찾아야 하는 나는 사소한 그의 실수를 적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냉혹했지만, 회사의 평화를 위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준비를 한 것이다. 몇 가지 사소한 실수들이 모여지자 그에게 Warning Letter를 날린(?) 것이었고, 그는 역시 참을 수 없어했다. 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낸 것이었기 때문에.. 


지금 그를 추억해 보면,,

'정말 자기 일엔 열심인 친구였고, 개인기가 많은 친구였는데, (자기가 만든 광고 카피로 자신의 목소리로 회사 라디오 광고도 직접 녹음한 적도 있었다.)

그 성질을 조금만 죽이고, CEO에 맞추었더라면 회사에서 크게 성공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한국문화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최고 권위에 대항한 첫 번째 유럽인이었고, 처참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퇴사해서도 나와 관계가 나쁘지 않았으므로 계속 연락하며 지냈는데, 회사를 그만두고는 미국과 티베트 등지를 여행하며 나와는 지속적으로 이메일을 교환했었고, 돌아와선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은 부동산 회사를 차려 사업을 잘하고 있단 소식이 들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절대평가 vs 상대 서열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