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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비된 여행 Sep 26. 2016

실수엔 관대, 고의적 행동엔 무관용

직장에서의 한국인과 유럽인의 문화적 차이 (21)

첫 번째 사례,

경찰이 내 차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뭐가 잘못되었을까, 혹시 주차해 놓았던 차가 도둑이라도 맞았나?'

보자마자 달려가서 경찰에게 물어보니, 주차한 곳 주변에 사는 주민이 신고한 것이란다.

'내가 주차를 잘못한 것인가? 분명 주차 티켓을 사서 넣었고, 주차해도 문제가 없는 곳이었는데...'

신고한 사정을 들어 보니, 내가 뒷좌석 창문을 올리지 않고 차를 떠나버렸던 것이다.

인근 주민이 혹시 차가 도난을 당할까 봐 경찰에 신고한 것이고, 경찰이 내 차를 보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차에 연락처 같은 것이 붙어있지 않았으므로, 내가 돌아올 때까지 계속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은 내 차에 없어진 것이 있는지 확인하게 했고, 다행히 없어진 물건은 없었다.

그 경찰관에게 몇 번이고 고맙단 말을 하였다. 그리곤 그 도시 사람들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다시 출발했다.

내가 오스트리아의 어느 도시를 여행하며 겪었던 일이다.


두 번째 사례,

체코에 살 때 일이다.

어느 날씨 좋은 주말 가족과 함께 동물원에 있을 때였다. 방송으로 계속해서 어떤 차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체코 말로 방송이 나와서 잘 들리지도 않았고, 처음엔 별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계속되는 방송을 자세히 들어보니 내 차 번호가 방송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었다. 제법 큰 동물원이었으므로 주차 구역에 잘 주차를 해 놓았었는데, 무슨 문제가 있는지 걱정이 되었다. '혹시 내차를 누가 들이받았나? 내가 주차를 잘못했나?' 많은 걱정을 하며 정신없이 동물원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이번에도 내 차 주변에 경찰관 2명이 있었다.

경찰관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운전석 유리창이 반쯤 내려와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주차를 하면서 창문을 내렸던 것을 잊어버리고 그냥 주차장을 떠나버렸던 것이다. 동물원에 주차하던 다른 손님이 차 창문이 열린 것을 보고, 경찰에 알린 것이었다. 오스트리아 때와 같은 프로세스로 차에 없어진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고, 경찰에게 사인을 해 주었다. 경찰관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다시 동물원을 계속해서 여행할 수 있었다.


위 두 사례 모두 내가 한 실수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관용을 베풀어 신고를 해 준 고마운 일들이었다. 내 일이 아니므로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들은 차 주인인 제삼자를 걱정해 준 것이다. 내가 경험한 유럽인들은 직장 안에서건, 다른 공공장소에서건 (그리고 실수를 한 사람이 외국인인 것과 상관없이) 타인의 실수에 관대한 편이다. 자신이 그 실수로 인해 큰 피해를 보지 않는다면 관용을 베풀고 배려를 해 준다.

직장에서도 신입사원이 모르고 저지른 사소한 실수나 동료나 부하직원의 고의성 없는 실수 등에 한국인 보단 훨씬 너그러운 편이다. 심지어 잘못을 지적하거나 가르치려 들지도 않는다. 동일한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간접적으로 힌트를 주는 정도이다. 때론 정말 배려심이 많아 보인다.


하지만, 한국인이 생각할 때 정반대의 사례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즉, 한국인의 시각에선 그냥 넘어가 주거나, 그렇게까지 정색하고 표현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과하게 표현한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

이런 일은 공공질서를 위반한다거나 사회나 직장에서 일반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행위를 했을 경우에 나타난다.

특히, 그 상황으로 인해 크건 작건 자신이 피해를 볼 수 있을 땐 더욱 강하게 표현된다. 관용 베풀않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소위 '얌체족'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어떠한 행동을 했을 때 흔히 볼 수 있다.

공항이나 관공서에서 줄을 서야 하는 경우 등 모두가 불편을 감수하여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에게만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돌리려 할 때 유럽인들은 참지 못하는 것이다.


최근에 내가 목격한 사례는 프랑스에서였는데, 기차역에서 표를 사기 위해 줄 서는 문제로 어느 중년 부인과 청년이 심하게 10분 넘게 말다툼하는 것을 보았다. 경찰을 부르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였다. 그냥 표를 사고도 남았을 시간이건만 그들은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했다. 그들은 표를 사고도 흥분을 가라 않히질 못했다. 청년이 줄이 중간에 나눠지는 것을 보고 뒤에 있다가 달려 나와 앞에 서려고 했다 발생한 일이었다.

유럽인 중에서도 감정 표현을 좀 더 잘하는 프랑스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랬었겠지만, 독일인이라 해도 시간은 짧았겠지만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볼 때 무관용과 관용의 가장 큰 차이는 사전에 알고도 어떤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인가, 아니면 모르고 저지르는 실수인가의 차이이다. 또 다른 요소는 자신에게 피해가 미치는가 아닌가 이다.

어느 문화권이건 어느 정도의 실수는 인정되고, 타인의 피해를 유발하는 고의적인 행위의 경우 비난을 받지만, 유럽문화권은 한국보단 훨씬 (직장에서의 경우도 포함하여) 실수엔 너그럽고, 고의적인 행위엔 관용을 거의 베풀지 않는다.



유럽 사회는 계약이나 법률이 중시되는 (혹은 법이 아니더라도 모두가 인정하는 도덕적 기준이나 서로 간의 약속) 사회이다.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어느 문화권보다 뿌리 깊은 계약 사회가 되었다. 서로 간의 보이지 않는 사회규범이나 도덕에 민감하고, (물론 법률이나 규칙 등은 말할 나위 없다.) 이를 어기는 사람은 도덕적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에 비하면 한국 사회는 정실주의나 학연, 지연 등 인맥에 의한 관계가 아직까지도 중요한 사회이다.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의 고의적인 실수나 비도덕적 행위도 어느 정도는 인정될 수 있으나, 관계가 없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 잣대가 너무 혹독한 것은 아닐까?

그것이 고의적 행동이 아닌 사소한 실수였을 때조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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