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의 한국인과 유럽인의 문화적 차이 (22)
회사 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한국과 유럽의 시각차가 있다.
유럽은 (보이건 보이지 않건) 계약에 기반한 사회이므로 회사 간의 재화 판매나 용역 계약에 있어서도 정해진 계약대로 거래가 진행된다. 그 이상이나 그 이하도 아니다. 한국에서 사회문제가 되었던 '갑을관계'라는 용어는 유럽에서의 회사 간 관계에서는 적용해 보기 힘들다. 물론 한국에서 '갑'이라고 부르는 회사가 '을'의 재화나 용역을 사거나 이용하겠지만, 그러한 갑과 을의 서열을 평등한 계약에 기초한 유럽의 회사 간에는 적용하기 부적절하다는 말이다.
사람뿐 아니라 회사 간에도 관계보단 계약이 우선이다.
유럽에서도 물건을 사주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회사가 우월적 위치에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이러한 한국식 표현의 '갑'회사가 받는 것은 계약에 근거한 (한국식 표현을 빌린) '을'회사의 정당한 상품과 서비스일 뿐이다. 물론 계약엔 기간이란 것이 존재하고 그 기간 동안 정당한 거래를 하는 것이다. 계약이 연장되지 않거나 다시 재계약되지 않을 우려가 존재함에도, 그것조차 새로운 거래에 대한 정당한 계약이 시작되거나 종료되는 행위로 인식함이 유럽적 시각에 더 부합한다.
한국에선 계약의 연장 시에 '갑'의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횡포를 염려하여, '을'은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하도록 노력하기도 한다. 때론 '을' 스스로 낮은 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정당한 서비스와 상품을 제공함에도 스스로 당당하지 못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 것이다. 서열화된 관계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한국 회사들의 단면이다.
만일 '을'과의 서열관계만을 생각했던 한국의 '갑'회사가 유럽식 '계약에 근거한 정당한 서비스 또는 재화를 제공하는 회사'를 마주한다면 정말 건방진 '을'이라고 바로 폄하하고 거래를 중지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유럽의 '갑'의 지위를 가진 회사들은 결코 관계만으로 거래를 하지 않기 때문에, 정당한 계약을 존중하고 정당한 가격의 서비스와 물건을 공급받으면 그만이다. 그것도 그 계약에 한해서만 말이다. 물론 만족할만한 품질과 가격의 서비스와 재화라면 다시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오직 계약 내용 안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더 이상의 것은 필요치 않고 요구되지도 않는다.
평등한 계약관계로 공급자와 공급받는 자가 계약의 내용 안에서만 최선을 다하는 선량한(?) 계약만 존재한다면 '갑과 을'이라는 서열이 없어질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