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조직원끼리의 갈등 - 사례중심 ②
S과장은 평소와 다름없는 자신감 있는 태도로 회의실에 들어왔다. 나는 어젯밤 고민고민하며 생각해 두었던 방식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요즘 회사에서 당신에 대한 평을 좀 들었다.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다른 사람들의 의견도 경청할 줄 알아야 올바른 관리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급적 중립적인 부드러운 말투로 S과장의 생각을 청취하고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으나, 상황은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한 사람이 L대리와 M대리 아닌가요?"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하는 업무는 못하면서 항상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미루는 사람들이에요."라며 이미 뭔가 알고 있다는 듯 L대리와 M대리에 대한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지적하기 시작했다. (S과장은 대화에 있어 항상 자신감에 차 있고, 그래서인지 목소리도 크다. 또한 법률지식이 해박하고 논리적이라 타인에 대한 설득력이 좋은 사람이다. 이런 그의 장점을 살려 회사에선 업체와 계약할 때나 난관에 봉착한 관공서와의 업무에 그의 능력을 활용해 왔다. 이런 점이 회사의 어려운 문제에 대한 '해결사'로서의 그의 입지를 굳건히 했고, 법인장이나 고위 한국인 관리자의 신임을 받는 주요한 원인이었다.)
M대리는 L대리보다 입사가 빨랐고 실질적으로 L대리를 회사에 소개해 준 직원이었다. M대리는 전문 프리랜서 출신으로 L대리보단 할 말 다하는 강한 성격이었고, 본인의 업무에선 경험과 자격증 등으로 이미 입증된 회사에서 신뢰하는 직원이다. 그리고 다른 아래 직급 사원들과 사이가 좋고 평판이 좋은 직원이다.
(어떻게 보면 이 둘은 입사 전부터 알던 사이로 회사에서 맘이 잘 맞는 친구와 같은 존재이며, 이번 사건에 있어서는 같은 배를 탄 셈이었다.)
나는 빨리 이 혼란을 정리하고 예전과 같은 평온함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누가 과연 맞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나에겐 이 대리들과 S과장 모두 필요한데...'
이번엔 M대리와 L대리를 동시에 불러 S과장에 대한 생각을 듣기로 했다.
L대리가 이야기하지 말라고는 했지만, 이미 S과장이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이젠 이 갈등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음을 나나 L과 M대리 모두 느끼게 되었다.
L & M대리가 이야기하는 S과장의 가장 큰 문제는 전문지식이 부족하면서도, 너무 오만하여 대화하기가 힘든 사람이고 상사로서 이제 더 이상 인정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었다.
S과장이 예측한 대로 의외로 L대리가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이었을 뿐 M대리도 완전히 같은 생각이었던 것이다.
내가 이들(의 표현방식이나 평소의 태도)을 잘 이해하고 있었더라면, 애당초 이런 일도 사전에 방지를 할 수 있었겠지만, 이미 처음부터 이들은 거리감이 있었고, 내가 조금만 더 이 들의 표현에 익숙했더라면 금세 알아차릴 힌트가 항상 있었다.
그것은 '호칭'이었다.
이젠 너무도 잘 아는 상식적인 사실을, 그 당시 나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냥 무심코 흘려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팀 내 직원들이 S과장을 부를 때, 모두 Mr. S라고 호칭하였다.
이게 뭐가 문제인가 싶지만,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도 그렇고, 전 회사 다른 부서 내에서도 보통은 그런 호칭으로 자기 나라 상사를 부르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체코나 슬로바키아 내 회사 내에선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사장이 아닌 이상,) 서로 이름을 부른다. (사장이라도 서로 친밀감을 느끼고, 상대방이 받아들이면 이름을 부르는 일도 흔하다.)
물론 외국인 상사, 특히 동양권에서 온 상사를 부를 땐 Mr. 나 Ms. 뒤에 성을 붙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우리 팀 모든 직원들이 그를 부를 때 Mr.S란 호칭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그만큼 S과장과 직원들 간엔 (조직의 장인, 그러면서도 외국인인 내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던 사이에) 틈이 벌어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유심히 관찰하게 된 결과 알게 된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은, 우리 부서를 제외하고 다른 부서 직원들은 Mr.S라고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에서처럼 이런 갈등엔 술이 필요해. 술 한잔 같이 하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날려 버리면 되지 않을까? 그래! 같이 만나게 하는 기회를 마련해 보자.'
평소에도 매달 이들은 꼬박꼬박 같이 회식을 하긴 했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심도 있게 갈등을 풀 기회는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회식자리에서도 이들의 분위기가 그리 썩 좋지만은 않았다. 좀 서먹서먹한 느낌이랄까? 내가 이들의 상사였으므로 대화를 이끌며 같이 했었지만, 직접적으로 S과장과 L대리가 서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눈 적이 별로 없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 당시 내가 간과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들은 '한국인'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술 한잔 하며 또는 같이 뭔가를 즐기며 동질감을 갖게 하고 회포를 풀면, 이들이 다시 화해하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던 것은 내가 이들의 문화와 감정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단 것을 후에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