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의 한국인과 유럽인의 문화적 차이_번외
요즘 한국 대기업들의 조직문화 개선에 대한 논의가 조직 내외에서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한국 경제의 거시적 위기상황과 맞물려 혁신이나 변화라는 단어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다.
치열한 속도 경쟁에서 그간 성공을 거둬온 한국 대기업들의 성공 방정식에 틈이 가기 시작한 것으로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기업 수뇌부로부터의 혁신에 대한 주문이나 변화에 대한 요구는 항상 있어 왔지만, 요즘처럼 직접적이고 강한 어조로 조직 혁신에 대한 필요성과 실천방안이 발표된 적은 드문 것 같다.
왜 하필 지금 조직문화 변화에 대한 요구가 물밀듯이 밀려오게 되었을까?
그것은 한계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방식으로는 중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맞서기 힘들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 선도기업들과의 시간 싸움이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현재의 비즈니스 경쟁구조는 과거와 달라졌다.
한국인 특유의 근로의욕(?)으로 많은 시간을 일터에서 보내며 많은 기획을 하고 많은 보고서를 만들며, 그 기획들의 세부 실천방안들을 열심히 만들어 보지만, 뭔가 달라지지 않는다.
더 많은 회의가 필요하게 될지도 모르고 더 많은 대책이 만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어떤 기획안의 예를 들어 보자.
중요한 것은 기획안의 양이나 이를 만드는데 들어간 시간이 아니다.
양질의 기획안 만들어져야 하는 것과 그 안이 실현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양질인지 아닌지는 물론 보고를 받는 사람이 결정할 몫이 될 것이다.
아무리 좋은 기획안도 중간관리자의 손에 의해 거부될 수 있다.
또는 중간관리자가 상위 보고자에 맞추기 위해 수정할지도 모른다.
우리 현실에서 진정 자신있는 양질의 기획안일 경우라도 상사가 반대할 때 과감히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을 보고자가 얼마나 될까?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직장인이 한국의 조직사회에서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까?
수평적 조직문화가 되기 위해선, 보고자는 확신이 있을 경우, 충분히 자신의 주장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보고를 받는 사람은 그 안을 받아들이지 못할 경우, 충분히 합리적으로 보고자에게 설명을 해 주어야 한다.
아니, 설득을 해야 한다.
상사를 위한 보고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자신의 주장이 담긴 보고서를 만들어야 한다.
오직 상사만을 바라보는 조직문화에서 어떻게 창의성이 구현될 수 있을 것인가?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직원들의 일에 자신감과 성취감을 부여해 줄 수 있는 회사가 경쟁력을 갖춘 회사이다.
이런 조직원들로 구성된 조직은 성공하는 조직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 대기업 조직문화의 문제점을 말할 때,
상명하복식의 군대문화나, 상사의 의견을 거스를 수 없는 문화를 예로 들곤 한다.
조직의 장(의 후환)이 두려워서, 'NO'라고 말할 수 없는 조직에선 수평적 조직문화를 구현할 수 없다.
위에서 내려오는 지시만을 행한다면, 정말 군대와 다를 바가 없다.
명령에 따라야 하는 군대문화를 창의적인 조직문화로 표현하기는 힘들 것이다.
창의성은 강제성과 반대편에 있는 개념이 아닐까?
그래서, 편안한 복장을 조직문화 개선의 필수 목록으로 여기고, 직급의 호칭을 없애려고 노력한다.
강제성을 인위적으로 제거하기 위함이다.
억제된 상황에서 보단 자유로운 상태에서 창의성은 당연히 발휘되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발휘된 창의성이 중간 관리자 혹은 그 상위 관리자에게 막혀버리지 않도록, 관리자들의 창의성을 북돋우는 많은 노력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회사의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시스템이나 프로세스에 의한 것이라면 좋을 것이다.
평가제도의 개선도 항상 나오는 주제이다.
업무역량과 성과를 공정하게 측정하는 평가 툴의 개발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평가툴을 활용하는 평가자가 정확히 이 툴을 이해하고 활용하고 있는지 또한 굉장히 중요하다.
회사의 평가는 로봇이 아닌 사람의 몫이므로, 많은 감정개입의 요소가 있다.
이런 평가의 주관성을 남용하는 평가자가 나와서는 안된다. 그래서, 평가자에 대한 평가 또한 상당히 중요하다.
제대로 된 평가자를 양성하는 것도 수평적 조직문화를 만드는데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조직문화의 개선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일까?
조직의 특권층부터 특권을 내려놓고, 조직원의 의견을 자유롭게 청취할 수 있는 것으로부터 시작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조직문화에서 최상위 리더로부터 조직문화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히 전달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조직원이 최상위 계층까지 의견을 전달할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더 중요한 것은 중간관리자 계층의 의식변화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충분한 동기와 보상(또는 처벌)이 뒤따를 때 변화의 움직임이 시작될 수 있다.
변하려고 하지 않는 중간관리자를 어떻게 변화시키느냐는 리더들의 가장 큰 과제일 것이다.
방법은 조직의 프로세스나 시스템을 통해 변화하지 않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다.
내가 유럽인들에게서 배운 동기부여의 방법은 합리적으로 만들어진 규정이나 프로세스로 이 틀 내에서 사람들이 움직여지게 하는 것이었다.
굉장히 세부적이고 상호 합의된 업무분장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다.
최고위층 리더의 역량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중간 관리자는 잘 짜여진 변화를 위한 프로세스 내에서 성실한 관리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자신의 조직을 변화하도록 스스로 변하여야 한다.
여기에 적응을 못하거나 변화를 거부하는 중간 관리자는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조직문화는 조직원의 의식의 변화에서 시작하고 마무리되어야 한다.
조직원의 의식 변화를 능동적으로 이끌어 낼 효율적인 시스템과 평가의 툴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의식의 변화는 최고위층에서부터 강력한 의지로 시작되어야 하며, 중간관리자 층의 변화가 성공의 열쇠가 될 것이다.
변화나 혁신은 과감함이 필요하다.
또한 이를 끈질기게 이어나갈 수 있는 인내와 동력이 조직 내부에서부터 축적되어야 한다.
조직문화의 변화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갑자기 한국인이 유럽인이 될 수도 없고, 미국인이 될 수도 없다.
한국기업이 갑자기 미국식 조직문화를 받아들이고 미국 회사처럼 되기 힘들다.
피부로 느끼는 변화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변화의 웅덩이에 온전히 빠뜨려야 한다. 물론 최고위층에서부터 말단부까지 모두 이 웅덩이에 빠져야만 한다.
한 발만 넣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일부만 들어가 있다고 바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 변화의 웅덩이에서 제법 오랜 시간을 견디고 성공적으로 빠져나오면 또 다른 웅덩이로 갈 수 있는 새로운 동기가 이미 모두의 의식 속에 생겨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조직은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