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성 평등과 조직문화
이번 주제는 제목을 정하기가 쉽지 않다. 유럽 여성의 직장에서의 역할과 지위에 대한 내용을 남성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성에 따른 직장 내 차별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연적 여성성과 관련한 구분은 존재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조차 모성을 존중하고 차별하지 않는, 심지어 배려하는 법적 제도적 정비가 잘 되어 있는 곳이 유럽이다. 적어도 EU의 구성원인 국가는 그렇다.
물론 채용 시 업무에 따라 고려되는 사항에 따라 성별 차이는 존재할 수는 있겠다. 흔하진 않지만, 물리적 힘을 더 많이 필요로 하는 특수한 작업의 경우 라든가 말이다.
채용에서부터 대부분 유럽 회사들은 성의 차별을 염두에 두지 않지만, 일부 경우는 급여의 차이가 존재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마다 급여가 다른 연봉제이므로, 비교하기가 애매하지만, 국가 통계적으로는 여성의 임금이 남성보다 낮은 국가가 많다.
채용이 된 후엔, 업무 분장이나 평가 등에서 차별을 두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렇지만 기혼 (혹은 아직 결혼을 안 했더라도) 여성은 출산이라는 과정을 대부분 거치게 되므로, 출산과 육아를 위한 휴직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남성도 육아 휴직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통상 2년 정도의 휴직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휴직 기간이 끝나고 본인이 원하면 돌아올 수 있으며,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다. 유럽 대부분 국가의 노동법은 여성의 육아로 인한 직업상의 불이익을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회사의 경우도 출산과 육아휴직 기간 동안 자리를 대체할 계약직 인력을 채용한다. 돌아오는 것을 보장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휴직을 2번 이상(2명의 아이를 차례로 출산하고 돌보는 경우) 사용한 사례로 흔하게 볼 수 있다. 육아로 인한 여성 인력의 경력 단절이라는 말은 한국에선 일반적 일지 모르지만, 유럽에서는 본인이 자발적으로 육아에 전념하기 위해 직장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은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특히 중부 유럽 지역처럼 과거 사회주의 체제를 경험한 국가들에서 여성의 노동력은 국가 경제의 중요한 동력이었다. 일하지 않은 여성을 찾아보기란 굉장히 쉽지 않다. 결혼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대부분의 여성이 직장을 가지고 있다. 특히 북유럽이나 서유럽에 비해 임금 수준이 낮은 중동부 유럽의 국가는 외벌이로는 가정을 이끌어가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경제적인 이유로도 여성이 직장을 가지는 것은 일반적이다.
여성이 직장에 나가지 않는다는 의미는 한편으로 부인이 일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남편의 급여가 굉장히 높다든지, 부유한 자영업자의 경우라고 보는 인식이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맞벌이 가정이 대부분인 유럽의 사회는 당연히 법적, 제도적으로 육아 휴직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어야 하고, 육아시설도 잘 구비되어 있는 편이다. 아이들이 어린 경우 보통은 육아시설에서 아이를 찾아오는 것도 부부 공동의 몫이다. 이런 사회환경으로 인해 가사노동도 부부가 공평하게 하는 경우가 많으며, (하지만, 유럽이라도 연령층이 높은 가정일수록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이 좀 더 큰 편이다.) 남자가 요리를 하거나 집안일은 하는 것은 흔한 모습니다. 하지만, 가정에서의 노동에서도 집의 수리 등 힘이 더 들거나 하는 일은 남자(보통은 남편과 아들)의 몫이다.
전통적으로 유럽의 가정은 잔디를 관리하거나 집을 관리하는 일을 중요한 가장 혹은 남자의 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집의 관리에 직업적인 서비스를 부르는 일은 드물다. 집을 관리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템을 잘 갖추고 있는 대형 DIY샵(건축자재에서부터 각종 집안관리를 위한 소품에 이르기까지)에서 구입한 재료로 직접 집안을 가꾸는 것이 일반적인 가정에서의 남편의 모습이다. 이런 전통은 대를 이어 이어져서 아들에게로 기술이 전수된다. 전형적인 유럽 중산층 가정에서의 남자들의 노동은 보통 이런 모습이다.
나는 직접 자신의 집을 짓는 유럽 남성을 여럿 본 적이 있다. 물론 집을 짓는 데 건축업자의 도움은 필수적이지만, 아이들 방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만든다는지, 선반이나 책장을 짜 맞춘다든지, 지하에 와인 등 저장공간을 만든다든지 하는 것을 직접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실제로 완성된 새집을 방문한 적도 있었는데, 기술이 전문가 수준이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함께 그런 일들을 자주 했었고, 별 거부감이나 어려움이 없이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부러운 모습이기도 하다. 아들과 함께 집을 꾸민다는 것이 힘들면서도 가족의 유대감이나 부자의 정을 키우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직장에서의 퇴근시간이 일정하고, 일반적인 퇴근시간이 한국의 작장인 보단 빠른 편이므로 육아나 가정생활에 충실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다.
간혹 직장에서의 모임 등 참석으로 늦어질 수 있으나, 항상 배우자와 가정에의 역할이 미리 잘 조율되어 있다. 어떠한 모임이건 밤늦게까지 가는 경우도 드물다. 물론 금요일은 아주 늦은 밤까지 날을 잡아 편하게 즐기는 경우도 있을 수 있으나, 대부분 가족에게 미리 양해가 된 경우라고 보면 된다. 이러한 경우라도 하더라도, 택시를 타지 않는 이상(택시를 부르는 경우는 그다지 흔하지 않다.) 대부분 술에 취한 남편이나 부인을 데리러 오는 사람은 배우자일 경우가 흔하다.
여가를 즐기는 방법도 밖에서 하는 경우는 일찍 끝나고, 아주 늦게까지 담소를 하거나 술을 마시는 경우는 대개 주말 저녁에 친구나 친척을 자신의 가정에 초대하는 (남편 만의 손님이 아닌) 가족의 손님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럽의 남성들은 한국 직장인이 보기엔 굉장히 가정적으로 보인다. 맞벌이를 하는 가정의 남편으로서 가사 노동을 분담해야 하고, 밤의 (유흥) 문화가 거의 발달되어 있지 않은 곳에 사는 유럽의 남자들은 가족과 함께 여가시간과 저녁을 보내는 것이 당연한 일상적인 모습이다.
자신의 직장에서의 지위 향상이나, 자신의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직장의 동료, 상사 또는 고객과 늦은 밤까지 함께 보내고 늦게 귀가하는 상황은 경쟁적인 한국의 수직적 사회가 만들어낸 독특한 모습이 아닐까 싶다.
맞벌이가 가정 경제를 꾸려나가는 데 필수적인 유럽의 사회구조에서 육아휴직이 보장되어야 하고 육아를 위한 사회적 기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사화적 결과물이다. 또한 양성 평등이 실현되어서 인지는 모르지만, 가정에서의 가사 노동 분배가 적절히 이루어지고, 가정에 충실하여야 하는 구조, 그러기 위해 적절한 퇴근시간이 보장되어야 하고, 직장이나 사회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구조를 가진 유럽 사회가 부럽기만 한 것일까? 노동시간이 짧아 퇴근이 일정하므로 가족과 함께 하는 여가문화나 개인 스포츠가 잘 발달되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부러워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편으로 밤에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정확히는 업소가 거의 없어 굉장히 심심하고 밋밋한 생활을 살아야 하는 도시의 삶이 건조할 수도 있다.
유럽인의 직장과 가정에서의 모습은 나의 모습과 다를 뿐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일상의 직장 생활이, 지금의 삶이 나에게 만족스럽고, 자식 세대들에게도 자랑스러운 모습일지는 생각하며 살아가고 싶다.